친숙한 존재, 낯선 부엌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등록 2005.05.24 02:03수정 2005.05.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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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를 세상에 출연시킨 작품 <키친>. 지금도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는 베스트셀러, 바나나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일본열도를 뒤흔들던 바나나. 그녀는 어느덧 중견 작가가 되어 일본 3대 여류 작가로 꼽히고 있으며, 전세계 두터운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 그녀가 23살 때 쓴 것으로 만화를 좋아했다는 바나나의 독특한 꿈 같은 이야기다. 우리 나라에서도 바나나는 <키친>으로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외국 언론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도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꿈결이야기'라고 평했다.

단 한 권의 책으로 여자 하루키라 불리며 전 세계에 두터운 독자층을 지닌 바나나. 이 작품은 그가 지금가지 써온 모든 작품의 토대가 되어 아직까지 그 색채가 이어져오고 있다. 또한 그 색채는 점점 더 진해져 우리들로 하여금 외로움과 상처 치유라는 두 명제로 다가왔다.

<키친>은 우리네 일상에서 빚어지는 사랑 이야기가 주테마이다. 만화적인 가벼움을 지녔을지 몰라도 그것이 우리들의 일상과 닮아 있기에 그것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모든 연애소설이 그렇듯 사랑이란 테마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거리이자,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네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하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의 상처도 만들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모습이 각양각색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슬픔과 비극도 만들어 내지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에서는 사랑을 ‘상처깁기’로 매듭짓는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너무 시들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바나나만의 특유한 매듭은 색다른 헤피엔딩을 선사해준다.

소설 <키친>은 키친이라는 제목 하에 키친, 만월(키친2), 달빛그림자. 이렇게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세상의 단 하나의 혈육인 할머니를 잃은 주인공 미카게. 그녀는 할머니와 단 둘이 생활하는데, 그녀의 위안을 주는 것은 부엌이라는 장소이다.

그렇게 단촐한 삶을 살던 그녀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방황하게 된다. 그 사이 유이치라는 남자와 점점 더 가까워져 그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인 키친에서는 미카게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간다. 그리고 만월에서는 다시 아버지이자 동시에 어머니와 함께 삶을 사는 유이치. 그 또한 아버지이자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슬픔에 빠지지만 미카게와 함께 살면서 사랑을 하게 된다.

이 두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불행에서 희망을 찾기를 반복하는 것과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하는 달의 습성이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 달빛그림자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로 잃고 그 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츠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바나나는 누구나 가슴에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차라리 하나의 행복으로 만드는 것이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녀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아 상처 치유하는 거…'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녀의 주요 테마는 늘 상처를 지닌 두 영혼이 서로 만나 사랑으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용이니 말이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항상 누군가와 있어야 한다. 때론 정신적 고독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정신적 고독을 통해 한 인간의 성숙함을 고양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인간은 홀로됨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결국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음으로 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장을 해간다.

바나나는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언제나 그는 비관적인 삶에서 긍정을 바라보며 결론을 짓는다. 그리고 때론 저자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그녀의 독특한 색깔로 남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게이바의 주인인 유이치의 어머니 아니 아버지의 분위기,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도 모르지만 이상하리만큼 끌리는 우라라의 분위기와 백년만 일어난다는 환상 아니 환영 등 이미 몽환적인 색채가 현실과 조우할 때 빚어지는 색다름을 선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부엌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통하여 인간의 내밀함을 좀 더 그려 내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친숙하지만 그 친숙함에 눌려 몰랐던 것을 우리에게 말해보고자 했음을. 우리 주위의 친숙함을 한 번 생각해보고 그 친숙함을 다시 한 번 새겨보자. 친숙함에서 낯설음을 느낄지도.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민음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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