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구미는 정말이지, 밉살스러운 여자애였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티티새>

등록 2005.05.26 12:42수정 2005.05.2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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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그녀의 이름은 부드럽고 달콤한 느낌을 준다. 물론 본명이 아닌 예명이다. 그래서 일까. 그녀의 문체는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바나나를 닮아 있다. 만화적인 상상력과 그녀의 부드러운 문체는 언제나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작품이 나온다면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 정도로 치부되며 평가가 절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기에 그녀의 문학은 순문학으로 취급받게 되었으면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바나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자. 그럼 그녀의 작품을 옹호해보기로 하자. 그녀는 일괄적으로 늘 같은 소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전혀 다른 등장인물과 전혀 다른 스토리로 말이다. 데뷔작 <키친>에서 홀로 된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 짚기를 통해 사랑을 하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로 발표된 작품이 늘 '상처 짚기'의 결말을 두고 있다.

이번 소개할 작품 <티티새> 또한 마찬가지이다.

"츠구미는 정말이지, 밉살스런 여자애였다."

역시 바나나다운 시작이다. 츠구미는 신경질적이고 제멋대로인 여자아이다. 그런 츠구미는 몹시 병약하다. 그녀의 사촌이자 이 소설의 화자인 마리아는 그녀 이모네 집, 즉 츠구미네 여관에 엄마와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소설집 <키친> 이후 두 번째 작품이자 첫 장편소설인 <티티새>는 츠구미와 마리아, 두 열 아홉 소녀들의 여름을 그리고 있는 성장기다.

그녀의 특유의 몽환적인 색채에 상처받은 영혼들의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더 포근함 속에 그려지고 있다. <티티새>의 츠구미 또한 증오와 열정 모두 잃어버린 채 사경을 헤매는 상징적인 죽음을 통해 새 삶을 시작한다. 바나나가 그리는 상처와 죽음은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준다.


이번 책에서는 주인공 츠구미는 우리 청소년기의 나이기도 하고 내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학교에 있던 하얀 백엽상을 도깨비 우편함으로 만들어 노는 일은 우리 모두 어린 시절에 각자가 가진 특별한 비밀장소를 생각나게 했을 것이고 쿄이치와의 만남, 첫사랑의 설렘 역시 모두가 간직한 공통된 추억거리가 아닐까 싶다.

조금은 엉뚱하고 괴팍한 모습으로 묘사된 츠구미가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까지 유머를 잃지 않고 마리아에게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는 모습은 끝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게 했다.


10년 이상을 가족과 함께 해변가를 찾아 고즈넉한 바캉스를 보내는 가정에서 자란 그녀. <티티새>의 탄생도 그런 배경으로 쓰여졌다고 말한다. 온건한 생각을 하고 남들이 다 바라는 행복을 원하는 그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성장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이는 온통 자기를 매몰하는 꿈을 꾸지만 평온했던 이는 자유롭게 열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상상의 수첩을 편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무나 엉뚱하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다고.

그런데, 느닷없는 질문이지만, 첫사랑, 기억하고 있나요? 그 사람과 내가 함께 걸을 수만 있어도 만사가 순조롭게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을. 그 청순한 에너지를. 이 소설에는 그런 시절의 세계관, 우주관이 담겨 있습니다. 담기에 아주 어려웠던 저 아름답고 동그란 특유의 풍경. 그리고 어린애가 처음 사랑을 할 때, 그 오만한 마음에 비로소 진짜 자연이 스미기 시작합니다.

그렇다. 그녀의 문체는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녀가 '쓸쓸하다'라고 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진부하다고 거부했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정말 쓸쓸하기 때문에 쓸쓸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바나나 그녀는 자신의 엉뚱함과 외로움들을 책에서 여지없이 표출하고 있으며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어 내가 이렇게 감상적인 기분에 빠져들어도 괜찮은 걸까. 세상이 이렇게 예쁠 수도 있는 걸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민음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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