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수십그릇으로 얻은 '배둘레햄'

짧아진 목과 불어버린 몸... '밥이 보약이다'

등록 2005.05.27 00:00수정 2005.05.2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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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이다. 신이 나에게 세상을 다시 창조할 수 있는 권능을 주신다면 나는 기필코 여름과 겨울이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당근, 나는 봄과 가을만 좋아한다. 그리 복잡한 이유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일 수밖에 없지만 나는 유난히 땀이 많고 유난히 추위를 타는 체질이기 때문이다(내가 생각해도 참 여러 가지 한다).

그냥 여름이나 그냥 겨울 정도는 무난하게 지낼 수 있지만 한 여름이라느니 한 겨울이라느니 하는 시점이 오면 나는 그저 백약이 무효한, 참으로 보잘것없는 비루한 인간이 돼버리고 만다. 특히 한 여름에는 맥을 못 춘다.

이 정도 이야기 하면 사람들은 나의 체질이 참 독특하거나 아니면 성격이 독특하다 생각할 것이다. 그도 저도 아니면 도저히 지구와의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나를 기특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지구인인 나는 이런 경우 다른 지구인들이 그렇듯 이 환장할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아주 세세한 노력들을 경주해 보았다. 주위에 나보다 지구에서 더 많이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도대체 이 빌어먹을 체질을 변화시킬 만한 아주 획기적이고 기똥찬 방법이 정말 없는 겁니까? 땀을 많이 흘리니까 당최 힘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지척에서 보고 들은 바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열심히 예를 들어 가면서 설명해 주고는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마치 자기 일처럼 심각하게 이야기 해주었다(정말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기가 짝이 없다).


그러나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노라면 경우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음을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장황한 설명 끝에 보통 내리는 결론은 '뱀'이나 '개' 이기가 십상이었고 아니면 고양이·자라·물개·장어·가물치·잉어·붕어·염소 등이었다.

천상 A형인 물컹거리는 돼지비계를 씹는 것조차도 고역인 내게 이런 동물들을 기르라는 것도 아니고 먹으라는 사람들의 처방은 차라리 한 여름에 더워 죽을망정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한참은 펼쳐야 할 장구한 내 인생의 한 여름 동안의 내 처지를 생각하니 '까짓 못 먹겠으면 뱉어내면 되겠지' 라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것이 서른 초반 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발등을 찍어도 열 번은 찍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 때 무슨 객기가 그렇게 방자하게 작용을 했는지 어쨌든 나는 회사 선배의 강권과 서푼어치 인생의 오만함에 이끌려 사철탕 집에 들어서고 말았다. 그 때 나는 165cm의 키에 58kg으로 아주 아담하지만 이상적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철탕 집을 들어서기 전까지 말이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보신탕
'보글보글' 끓고 있는 보신탕정현순
의외로 사철탕은 입맛에 맞아 주었고 생각이 앞섰는지는 몰라도 그걸 먹는 날엔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는 턱없는 말들을 흘리고 다녔다. 어쨌든 나는 그 날 이후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사철탕 집 문턱을 다반사로 넘나들었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몸으로 매번 백반보다 두 배는 비싼 사철탕 집을 드나든다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결국 그 해 여름이 다가기 전에 나는 돈 앞에 무릎을 꿇고 힘이 세지기 위해서는 돈도 필요하다는 이치를 깨닫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해 겨울이 가기 전 나는 직장을 옮겼다. 전 직장에서 상사로 모시던 분이 사업체를 차리면서 소위 말하는 스카우트를 내게 제의했고 그 제의를 받고 나는 지방 소도시보다 더 작은 도시로 거처와 직장을 옮긴 것이다.

문제는 다음 해 여름이었다. 이제 과장님에서 사장님으로 불러야 하는 그 양반은 한마디로 사철탕 하면 깜빡 죽는 사람이었다. 그 양반 처갓집에서는 매년 누렁이 한 마리를 그 양반 몫으로 갖은 정성을 들여 먹이고 키워낸 후 여름이 닥치자마자 매 끼니마다 내놓는 것이었다.

아직 결혼 전이었던 나는 그 직장 근처에 자취를 얻어 세끼니 모두 그 집안에서 해결했는데 그 전 해에 돈 앞에 굴복했던 사철탕 순례를 굳이 돌아다니지 않고도, 굳이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고 또 먹어 주었다.

그런데 그 해 겨울을 앞두고 목욕탕 저울에 올라 선 나는 질겁하고 말았다. 순전히 사철탕만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지는 몰라도 다른 뾰족한 이유도 없었다. 그 새 내 몸은 63kg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근 십년 정도를 유지했던 58kg의 몸무게가 불과 몇 달 사이에 5kg 증가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키는 1cm도 자라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쩐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서부터 와이셔츠의 맨 위 단추가 쉽게 끼워지지 않고 벨트 구멍이 조금씩 끝을 향해가고 있는 것을 알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사철탕이 내게 맞는 음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에 맞는 음식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한 마리를 둘이 먹었으니 혼자 반 마리를 먹고도 그 중 5kg의 살덩이가 빠져 나가주지 않았다는 계산이다.

정작 문제는 몸무게가 불으니 땀을 더 많이 흘리고 살이 오르니 행동이 전보다 훨씬 둔해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환장할 일은 머리마저 돌아가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없는 살이 생겨 따라오는 부작용치고 심각한 피해였다. 그래도 아담했지만 날랜 몸매에 빠른 순발력으로 세상을 헤쳐 왔는데 나에게서 가장 자랑할 만한 무기들이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사철탕으로 인해 다른 얻은 것이 있다면 억울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살만 얻었을 뿐 한 여름엔 여전히 비루먹은 개처럼 눅진한 몸을 끌고 다녀야 했고 한 겨울엔 천적을 만나 옹송그린 쥐며느리처럼 삭풍 앞에 주눅이 들어 있어야 했다.

달라진 것이라곤 짧아진 목과 불어버린 몸이었다. 나는 여전히 더위를 못 견뎌했고 추위를 참아낼 수 없었다.

나는 몇 해 뒤 결혼을 하였고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이 '장가가면 살찐다'는 통념에서 예외일 수 없었으며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이 줄지 않는 몸피에 한 숨을 달고 산다.

나는 아직 165cm 키지만 몸무게는 72kg을 위태롭게 유지하고 있다. 오늘도 그래서 슬프다. 제발 부탁이다. 남들이 권해주는 좋은 음식을 다 믿지 마시라. 어른들 말씀대로 '밥이 보약이다.'

불행한 사실 하나, 아직 신은 나에게 지구를 바꿀 수 있는 권능을 주시지 않았다. 이제 한 여름은 금방이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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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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