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을 넘어선 생명 존중의 세계

공지영의 신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등록 2005.05.26 18:37수정 2005.05.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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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숲

참으로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적지 않은 소설들을 읽어왔지만, 이런 경험은 내게 드문 편이다. 소설을 분석하여 글을 쓰거나 대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지라, 웬만한 경우에는 마음 놓고 감동을 느끼지도 않게 된다. 작품의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서 항상 연필을 쥐고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까닭이다.

그런데 공지영의 신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 숲, 2005)을 읽으면서는, 작품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 작품의 주제에 빨려들고 말았다. 행복하게 휩쓸리며 소중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나누고자 이 글을 열게까지 된 것이다.

처음부터 빠져든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며 한때는 인기를 끈 여가수였고 현재는 화가이자 대학교수인 미혼여성 주인공의 이력과, 그녀의 고모가 봉사를 업으로 하는 늙은 수녀라는 인물 설정, 이들과 사형수가 만나게 되는 구성방식 등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간접적이긴 하지만 뚜렷이 감지되는 교훈적인 내용 구도 또한 다소 빤한 작품이 아닌가 의심하게 했다.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계몽적인 소설들은 그만큼 감흥이 덜하게 되고 문학성 또한 떨어지게 마련인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나의 비평가적인 감식안과 학자로서의 분석 능력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작가의 바람대로 이 소설은 ‘진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포즈나 제스처에 의지하지 않는다. 식자연하는 현학이나 자료 냄새가 가시지 않은 설익은 지식에 기대지도 않는다. 엄연한 현실을 돌보지 않는 주관적인 소망으로 독자의 눈을 가리지도 않는다.

이 작품이 무언가 기대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생명에 대한 존중의 마음’ 바로 그것뿐이다. 이러한 자세가 현실적인 무게를 지니고 있기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앞서 말한 여러 혐의에도 불구하고 진한 감동을 준다. 비평가이기 이전에 생명의 의미 앞에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한 사람의 독자로 나를 돌려놓는 것이다.

위악을 떠는 조카에게 건네는 모니카 수녀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녀는 위선자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기 때문이다. 해서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까지 한다. 수녀가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설득력이 있다. 우리를 돌아보게 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친다면 딱히 이 작품이 감동적이라 할 이유가 못 되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말, 좋은 생각이 우리 주변에 모자라서 크고 작은 잘못이 행해진 적은 사실 없지 않은가.

모니카 수녀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위악을 떠는 자들’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아무 기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꼽으면서, 이른바 상대주의나 개인주의가 적용될 수 없는 경우로 ‘사람의 생명’을 든다. 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라는 자명한 사실에서 그녀는, ‘죽고 싶다’는 말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것은 다시, ‘잘 살고 싶다’는 것이라는 데로 생각을 밀고 나아간다. 해서 이렇게 된다.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종교를 갖지 않은 경우라 해도 생명에 대한 이러한 존중은 십분 공감할 만하다. 이 생각을 근본으로 하여 세 종류의 이야기들이 짜인 결과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이루어지기에 더욱 그렇다.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점을 인정하자는 알베르 카뮈의 제안에서부터 구약성서의 말씀이나 괴테, 도스토예프스키, 박삼중 스님 등의 생각으로 이루어진 경구들이 각 절의 처음을 장식한다. 그에 이어, 세상에서 원한을 배우고 끝내 사형수가 되나 사람들의 사랑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참회하게 되는 사형수의 일생이 기록된 <블루 노트>가 나온 뒤, 세 명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행복한 시간’이 전개된다.

이러한 세 가지 이야기는, 사형제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와 사형제 존폐 문제의 현황 및 그 해결 방향을 풍성하고도 명확하게 제시한다. ‘생명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야만적인 복수를 넘어서는 길’이 바로 사형제 폐지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알려주는 것이다.

스토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역사를 바꾸었듯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우리 사회를 보다 인간적이게 만드는 데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북매일신문(2005.5.23)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경북매일신문(2005.5.23)에도 실렸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해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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