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자료전 :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주최로 26일 오후 막을 올렸다.'연대회의' 제공
일제 때 한 것은 독립운동으로 평가받지만 대한민국에서 하면 반국가범죄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이 찍힌 일이 있다. 이 일 때문에 할아버지·아버지·손자까지 3대에 걸쳐 푸른 수의를 입어야 했던 집안도 있다.(옥지준씨 일가)
어디 그뿐인가. 이 일 때문에 한 젊은이는 3년이 넘는 옥살이를 마친 뒤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겨보기도 전에 다시 똑같은 이유로 4년 더 수의를 입어야 했다. 이 젊은이는 이 일 하나로 도합 7년10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정춘국씨)
이 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다. '사람 죽이는 법을 익힐 수 없다'는 신념을 지키려다 구타당해 하나뿐인 생명마저 잃은 이들이 이 땅에는 엄연히 존재해왔다.(김종식, 이춘길씨)
이 일은 다름 아니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다.
26일 오후 홍대 앞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자료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 막을 올렸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상임대표 이해동)가 주최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대표 효림 스님. 이하 연대회의)가 기획한 이 자료전은 다음달 4일까지(매일 낮 12시~저녁 7시. 월요일 휴관) 계속된다. 감옥에서 쓴 수기와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다.
60여 년의 수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어떤 길을 걸어온 것일까?
이 땅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1939년 일제 때부터 시작됐고, 입영 거부, 입영 후 집총 거부, 침략전쟁 거부(2003년 현역 군인 신분으로 이라크 파병 반대를 선언했던 강철민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그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중에는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와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2001년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오태양씨를 시작으로 모두 16명(현재 수감 10명, 출감)이 반전평화주의나 생태주의 등 종교적 이유 이외의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택했다.
일제 치하에서 뿐 아니라 한국전쟁 기간 중에도 병역을 거부한 이들이 있다. 전시였던 2차 대전 당시 미국에서만 1만여명이 병역을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양심에 따라 총을 들지 않을 권리를 요구했던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짐은 너무도 무거웠다. 수감, 구타, 같은 사안에 대한 반복 처벌 등 만만치 않은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1939년 일제에 체포된 여호와의 증인 38명을 시작으로 60여 년 간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인해 수의를 입어야 했다. 2005년 5월 현재 1077명이 수감돼 있다. 또한 구타로 인해 군 훈련소와 사단 영창에서 2명이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구타 후유증으로 고생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탄압은 국가 전체를 병영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에 더욱 강화됐다. 박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고(1972년) 전국을 군화발로 짓누르던 1973년에 '병무행정 쇄신지침'이 만들어지면서 병역거부자가 짊어져야 했던 짐은 무거워져만 갔다.
"총 들지 않을 권리도 인정해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