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60년... 자료전 개막

홍대 앞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26일부터 6월 4일까지

등록 2005.05.26 22:48수정 2005.05.2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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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자료전 :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주최로 26일 오후 막을 올렸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자료전 :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주최로 26일 오후 막을 올렸다.'연대회의' 제공

일제 때 한 것은 독립운동으로 평가받지만 대한민국에서 하면 반국가범죄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이 찍힌 일이 있다. 이 일 때문에 할아버지·아버지·손자까지 3대에 걸쳐 푸른 수의를 입어야 했던 집안도 있다.(옥지준씨 일가)

어디 그뿐인가. 이 일 때문에 한 젊은이는 3년이 넘는 옥살이를 마친 뒤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겨보기도 전에 다시 똑같은 이유로 4년 더 수의를 입어야 했다. 이 젊은이는 이 일 하나로 도합 7년10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정춘국씨)

이 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다. '사람 죽이는 법을 익힐 수 없다'는 신념을 지키려다 구타당해 하나뿐인 생명마저 잃은 이들이 이 땅에는 엄연히 존재해왔다.(김종식, 이춘길씨)

이 일은 다름 아니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다.

26일 오후 홍대 앞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자료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 막을 올렸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상임대표 이해동)가 주최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대표 효림 스님. 이하 연대회의)가 기획한 이 자료전은 다음달 4일까지(매일 낮 12시~저녁 7시. 월요일 휴관) 계속된다. 감옥에서 쓴 수기와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다.

60여 년의 수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어떤 길을 걸어온 것일까?

이 땅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1939년 일제 때부터 시작됐고, 입영 거부, 입영 후 집총 거부, 침략전쟁 거부(2003년 현역 군인 신분으로 이라크 파병 반대를 선언했던 강철민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그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중에는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와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2001년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오태양씨를 시작으로 모두 16명(현재 수감 10명, 출감)이 반전평화주의나 생태주의 등 종교적 이유 이외의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택했다.

일제 치하에서 뿐 아니라 한국전쟁 기간 중에도 병역을 거부한 이들이 있다. 전시였던 2차 대전 당시 미국에서만 1만여명이 병역을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양심에 따라 총을 들지 않을 권리를 요구했던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짐은 너무도 무거웠다. 수감, 구타, 같은 사안에 대한 반복 처벌 등 만만치 않은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1939년 일제에 체포된 여호와의 증인 38명을 시작으로 60여 년 간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인해 수의를 입어야 했다. 2005년 5월 현재 1077명이 수감돼 있다. 또한 구타로 인해 군 훈련소와 사단 영창에서 2명이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구타 후유증으로 고생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탄압은 국가 전체를 병영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에 더욱 강화됐다. 박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고(1972년) 전국을 군화발로 짓누르던 1973년에 '병무행정 쇄신지침'이 만들어지면서 병역거부자가 짊어져야 했던 짐은 무거워져만 갔다.

"총 들지 않을 권리도 인정해달라는 것"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7년 10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국내 '최장기 수형자' 정춘국씨가 전시된 자료를 보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7년 10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국내 '최장기 수형자' 정춘국씨가 전시된 자료를 보고 있다.'연대회의' 제공
국가의 형벌 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그동안 '병역을 거부하면 양심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양심적이란 말이냐'며 따갑게 바라보는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특정 종교인들만의 비상식적 행동'으로 곡해돼 이른바 '정통파'가 병역거부 집단을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일도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이 군 입대자를 비양심적 행위자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바라는 건 '양심에 따라 총을 들 권리를 인정한다면, 또한 양심에 따라 총을 들지 않을 권리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총을 들지 않는 대신 소외된 계층과 함께 하는 등 다른 방식(대체복무)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정통'과 '이단'의 구분도 부적절할 뿐더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이른바 '이단'으로 규정된 특정 종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침해될 수 없는 내면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말해왔다.

대체복무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 계류 중... 해결책은 언제 나올까

국가의 강력한 힘과 시민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외로이 견뎌내야 했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인권 문제는 지난 2001년 오태양씨가 거부 선언을 하고 그 이듬해 36개 인권·시민단체가 '연대회의'를 결성한 것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4년 5월 이정렬 서울남부지법 판사가 군 입대를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고무시켰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26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는 26일 병역법 88조 1항 1호(종교나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의무를 기피하는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에 대해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제는 이전과 달리 더 이상 무관심 속에 파묻히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경우 군사훈련을 면제하는 대신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현역병 근무기간의 1.5배 기간 동안 대체복무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지난 3월 17일에는 해방 후 최초로 국가기관인 국회 국방위원회 주최로 병역법 개정안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26일 막을 올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자료전 :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은 그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며 언제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을 것인지를 우리 사회에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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