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세웠다 해서 죄 씻어지는 것 아니다"

[현장] 고대서 열린 '친일진상 민간법정'... "박정희 친일은 유죄"

등록 2005.05.28 19:29수정 2005.05.2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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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친일파 진상규명을 위한 대학생 민간법정'에서 대학생 검사단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을 밝히고 있다.
28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친일파 진상규명을 위한 대학생 민간법정'에서 대학생 검사단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을 밝히고 있다.오마이뉴스 유창재
대학생 검사측 : "피고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40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만주제국육군군관학교)에 자발적으로 입대해 만주군 보병 8단에서 활동하면서 항일 독립 세력 토벌에 나섰다. 또 광복 후에는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독도문제 등 한일 과거사에 미해결의 숙제를 남겼고 우리 과거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겨 이에 전민족의 이름으로 기소한다."

변호사측 : "박 전 대통령이 일본군의 장교였다는 것은 분명 인정하지만 일본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라고 단정짓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반민특위에서 선정한 친일파에 피고는 포함되지 않았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처음 거론됐다. 피고의 친일 행적은 경미한 것으로 무엇보다도 박 전 대통령은 한국 사회·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공(功)과 과(過)는 명확하게 구분돼야 할 것이고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친일행위는 부정돼야 한다."


28일 오후 고려대 4·18 기념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친일파 진상규명을 위한 대학생 민간법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소한 대학생 검사단과 변호인단의 기소 내용과 변론 중 일부이다.

이들 '친일파 진상규명을 위한 대학생 민간법정추진위원회(위원장 김민석 중앙대총학생회장·이하 추진위)' 주최로 낮 12시 40경부터 진행된 이날 민간법정에서 대학생 검사단과 변호인단은 1시간이 넘도록 열띤 공방을 벌였고, 방청객 배심원단의 토론을 거쳐 민간법정 재판부는 선고에 들어갔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공과 과를 내세우는데 죄를 지은 사람이 후에 공을 세웠다고 해서 그 죄가 씻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떤 공을 세웠어도 그 전에 지은 죄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고 과거의 진실한 반성과 평가 속에서 새로운 미래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판결을 하도록 하겠다"고 전제했다.

이어 재판부는 "일본군에 장교로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개인적 행위를 천편일률적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친일행위를 했다고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피고가 일본군 장교가 된 것은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됐고 이후 성적도 최고일 정도로 충실했다는 사실이 그의 친일성은 명확히 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한일협정은 결코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내용으로 하는 조약이 아니었으며 일본의 우리민족에 대한 역사적 부채를 푼 돈과 맞바꿈으로서 사과를 받아내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 민족의 아픔을 보상받는 통로를 원천봉쇄한 치욕적인 조약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재판부는 "한일협정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보상받는 통로를 원천봉쇄한 치욕적이고 반민족적이고 굴욕적인 조약을 맺게 된 것은 피고의 굴욕적인 친일외교에서 비롯되었다"며 "경제적 부분의 공에 대해서 아직 논란이 많고 설사 경제 발전과 관련해 피고의 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민족 전체에 대한 범죄 행위가 심각하다면 그로써 면죄부를 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재판부는 "피고가 민족 역사를 바로 세우고 상처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를 팔아넘김으로써 실현시킨 경제발전이라면 그것을 공으로 인정하는 것도 부당할 것"이라며 "제출된 증거들에 기초해 신중히 판결한 결과 피고 박정희의 기소행위 사실 모두가 친일행위라 할 것임으로 유죄가 인정된다"라고 선고했다.


이날 추진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성수 고려대학교 설립자,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총장, 현제명 전직 서울대 음대 창립자, 이병도 전직 서울대 교수, 임영신 중앙대 설립자 등 6명을 대학생 검사단에 고발했다. 이날 민간법정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만 심판대에 올려 심리를 진행했다.

한편 이날 민간법정 판사단은 한상렬(목사) 통일연대 상임대표와 유선희 민주노동당 최고의원, 박효진 고대 법대 학생회장이 맡았으며, 검사단은 이문희 서울대과 이혜진·최규태·정순용 고려대 학생 등 4명, 변호사단은 박지원 경북대 법대 부학생회장과 이동진 서울대·이만재 고려대 학생으로 구성됐다. 또 배심원단은 이날 민간법정에 참석한 100여명의 방청객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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