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인 연애와 사랑 이야기

연애소설의 여왕 야마다 에이미의 <공주님>

등록 2005.05.29 23:52수정 2005.05.3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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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에이미. '연애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작가. 그만큼 연애소설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도발적이면서도 감수성을 자극하는 그녀만의 색깔은 에쿠니 가오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녔다. 게다가 '쿨'하기까지 하다.

특히 문학적 수식없이 수다를 떨 때나 쓰는 문장들을 그대로 사용해 '새로운 구어체 작가'라는 별명을 얻은 일본 문학의 신세대 남자 대표주자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야마다 에이미는 여자 대표주자 격으로 그녀의 감수성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쿠니 가오리와 비견될 정도다.


게다가 에쿠니 가오리가 사랑의 슬픔을 그리고 있다면 야마다 에이미는 껌을 씹다 단물이 빠져 툭 하고 뱉어내는 듯한 느낌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거기에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닌 실험적이고 격렬한 세계가 여전히 있어 그저 심심풀이 땅콩용으로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이 정도면 일본 신세대는 물론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그녀의 소설에 열광할 만 하지 않은가. 그녀의 그 '쿨'한 느낌의 소설이 바로 <공주님>이다. 이 작품은 그녀만의 독특한 색깔이 잘 드러났다.

이 소설집은 사랑과 죽음을 모델로 한 시뮬레이션을 묶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풋풋한 설렘과 기대로 시작되는 첫사랑을 다룬 ‘샴푸’, 뜨거운 욕망의 숨결로 저 혼자 무르익는 짝사랑 ‘피에스타’ 등 이 책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사랑만을 지상목표로 두고 서로 각축을 벌이는 연애소설은 아니다. 여기에는 삶과 죽음, 이성과 욕망, 욕망과 자존심, 남성과 여성 등과 같은 대립적인 항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그런 관계에 처한 나와 너, 그리고 그와 그녀가 서로 이끌리고 밀어내고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연애와 내가 미치도록 읽고 싶은 연애소설. 난 언제나 그런 소설을 쓰고 있다.”-야마다 에이미

표제작 <공주님>의 남녀 주인공은 섹스, 가사 등에서 남자가 주도권을 갖는 일반적인 남녀 관계의 문법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다. 여주인공은 항상 존대말을 쓰며 쩔쩔매는 남자 주인공에게 피어싱을 해준다며 느닷없이 귓바퀴에 구멍을 뚫는가 하면, 기습적인 따귀 세례, 엉덩이 걷어차기 등으로 남자를 괴롭히며 쾌감을 느낀다.


강간 같은 섹스, "정액은 10㏄면 충분하다"는 도발적인 진술 등 거부하고 강간하는 대상은 다름아닌 둘 사이의 사랑일 것이다. 서로 끌리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거부하는 삐딱한 이 둘은 결국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지만, 새로 생긴 애인의 품에서 벗어나 옛 애인을 찾아가던 여주인공은 전동차 플랫폼에서 발을 헛디뎌 사망한다. 두 남녀 간 긴장과 밀고 당김, 애증의 동학이 인상적이다.

'메뉴'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외삼촌댁에서 길러진 남자 주인공이 친남매처럼 지낸 이종사촌 여동생과 관계를 맺는 근친상간이 소재다.

남자 주인공은 유치원에서 돌아올 때마다 간식으로 요구르트를 내놓는 어머니가 싫어 요구르트를 맛없어 하다가 하루는 목매달아 자살한 어머니를 발견하고는 죽은 어머니가 공중에 매달려 흔들리는 그 밑에서 비로소 요구르트의 맛을 음미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친자식처럼 길러준 양부모에 대한 상식적인 도의를 거부하는 남자 주인공은 이종사촌형과 결혼을 앞둔 자신의 캠퍼스 단짝 친구를 형이 술에 곯아떨어진 사이 겁탈한다.

그녀가 그린 작품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면 쿨함이 무관심, 초연함이 아닌 관심과 집요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연애와 연애가 유발하는 감정에 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10대고 실제로 연애라는 모험을 만끽하는 것은 20대 정도가 아닐까?

야마다 에이미가 다른 많은 나이든 작가들처럼 원숙함과 안정감을 더욱 갖추게 된다면, 그 후엔 과연 어떤 글을 쓰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야마다 에이미의 매력으로 거친 긴장감과 날카로움을 꼽는다면 꼭 '유함'따위가 필요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120%의 '쿨'함을 꿈꾸는 작가에게 40대의 관조를 요구하지는 말자.

공주님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민음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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