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무능력'도 큰 죄악이다

[유창선 칼럼] 유전사업과 행담도개발, 현 정부의 뼈아픈 상처

등록 2005.05.30 07:55수정 2005.05.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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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에 이어 행담도개발 의혹이 노무현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사진은 행담도 휴게소 전경.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에 이어 행담도개발 의혹이 노무현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사진은 행담도 휴게소 전경. ⓒ 오마이뉴스 장재완

유전의혹사건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니 이제는 행담도개발 파문이다. 연이어 터져나온 두 사건은 몇가지 점에서 닮은꼴이다.

우선 역대 정권에서 있었던 '검은 돈'의 거래는 이 두 사건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무차별적인 의혹공세를 벌였던 몇몇 언론의 '기대'와는 달리, 비리에 관한한 거의 드러난 사실이 없다. 참여정부의 기본적인 도덕성은 그래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그같은 사실을 위안으로 삼고 있기에는, 또 다른 공통점의 내용이 너무도 뼈아프다. 두 사건 모두 현정부의 무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철도청 유전사업이라는 무리한 일이 졸속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과정, 동북아시대위원회가 신상조차 불확실한 한 민간인에 의존하여 행담도 개발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과정, 더구나 이러한 일이 진행되는데도 아무런 점검과 제동의 장치가 없었던 점은 노무현 정부 국정운영의 허술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되고 있다.

유전사업과 행담도개발, 현정권의 무능력 보여줘

노무현 정부는 잘못한 정도에 비해 너무 심한 매를 맞고 있다고 속으로 항변하고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동북아시대위원회 관계자들은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쳐왔다. 과거의 비리의혹들과는 성격이 다른, 좋은 일을 하려다 발생한 문제들인데, 마치 엄청난 비리의혹이라도 있는 것처럼 몰고간다는 것이다.

유전사업과 행담도개발에 대한 대다수 언론의 보도를 보면 이같은 항변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언론들은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의혹'이라는 편리한 용어를 사용하며 모든 일을 '의혹'으로 몰아왔다. 그 가운데는 정말로 의혹거리가 되는 내용들이 상당히 있었고, 반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내용이 또한 상당히 있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유전의혹 파문 속에서, 잘못한 것 이상의 책임을 추궁당해 왔는지 모른다. 철도청의 무리한 사업추진, 사업을 인지했던 관련부처들의 안이한 대응, 청와대의 연이은 보고누락... 그대로 넘길 문제는 분명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권의 도덕성까지 흔들릴 정도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연이어 터져나온 행담도 파문에 이르러서는 사안의 심각성이 다르게 느껴진다. 대통령자문기구의 월권적 행위가 동북아시대위원회를 통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고, 더구나 이 사업이 노 대통령의 상당한 관심 속에서 추진되었을지 모른다는 정황들도 발견되고 있다. 더욱이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사업이 역시 아무런 점검과 제동없이 추진되어 왔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개발독재시대의 관 주도경제가 아직까지?

쉽게 말해, 민간기업과 공기업 사이의 사업에 정부가 나서서, "청와대가 밀고 있는 사업이니 우리를 믿고 해라"는 식의 일을 벌인 셈이다. 개발독재시대 관(官)주도경제 시절의 모습 그대로이다. '시장의 힘' 이 아니라 '청와대의 힘'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려 한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 이르고 보니, 유전사업이나 행담도개발이나 모두 정권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소재가 되고 있다. 지난 정권까지의 의혹들에서는 '비리형 의혹'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면,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정오류형 의혹'이 새로운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 초반기에 그토록 의식했던 것이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남다른 태동과정을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덕적 자신감이 국민에게 밥을 먹여줄 수는 없었다.

'도덕'과 함께 국민이 요구했던 것은 국민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런 점에서 현정부의 무능이 드러난 유전사업과 행담도개발 파문은, 정권의 입장에서는 권력형 비리 만큼이나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일들이다. 이들 사건을 가지고 '권력형 비리'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은 민심의 소재를 제대로 읽지못한 소치이다.

청와대, 솔직히 사과하고 새로운 각오 보여야

청와대가 '부적절한 업무행위'를 인정하고 곧바로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었다. 청와대는 연이은 의혹파문을 향한 민심을 제대로 읽고, 더 몸을 낮추어야 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잘못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르다"는 식의 화법이 아니라, 명백한 잘못은 겸허하게 인정하고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한 모습이 될 것이요, 따가운 민심에 대한 집권세력의 예의가 될 것이다. 인정할 것은 모두 인정하여 국민의 용서를 구하고, 정권의 능력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지기 전에 새로운 각오와 계획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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