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초'가 '혐연자'가 되기까지

등록 2005.05.30 11:26수정 2005.05.3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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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처럼 끊기 쉬운 것은 없다. 나는 하루에도 열 번 이상 담배를 끊는다.”


대범한 유머를 즐겨 구사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매년 5월 3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금연(禁煙)의 날’이다. WHO가 ‘연기없는 사회(smoke-free society)’의 실현을 목표로 창립 40돌을 맞은 지난 1987년 5월 총회에서 한 결의에 따른 것이다.

인간의 기호품 중 담배만큼 애증(愛憎)이 교차하고 논란에 휩싸이는 물건이 있을까? 위해성과 효용성을 놓고 의견이 갈리고, 흡연권(吸煙權)과 혐연권(嫌煙權)을 싸고 대립하기도 한다.

폐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 유발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경고 앞에서도 애연가들은 ‘자연(紫煙)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러면서 재기와 익살이 넘치는 ‘끽연의 변(辯)’으로 자신들을 미화한다.

프랑스의 상징파(象徵派) 시인 말라르메는 “세계와 나 사이에 연막(煙幕)을 치기 위해서” 담배를 피운다고 했는가 하면, 세계정부를 제창하기도 했던 자유주의자인 중국의 문사(文士) 린위탕(林語堂)은 “파이프는 현자(賢者)의 입을 열고, 어리석은 자의 입을 닫게 한다”면서 자신이 얼마나 어진 사람인가를 과시하고자 했다.


현재 전세계의 흡연인구는 줄잡아 13억 명. 담배값을 대폭 올리고 담배갑에 엽기적인 사진을 부착하는 등 각국의 강력한 금연정책과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이 숫자는 좀처럼 줄지 않을 전망이라고 하니 인류의 담배사랑은 그리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담배와 관련되어 한때 유행하던 어느 코미디언의 표현 대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고2때 정학을 맞은 것이다(모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바 요즘엔 ‘정학’이라는 처벌규정이 없어지고 ‘봉사명령’으로 대치되었다고 한다).


물론 객기와 일종의 반항심이 복합된 일탈이었다. 정학사건은 나로 하여금 개과천선의 계기가 아니라 본격적인 흡연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하루 두세 갑을 태우는 골초가 되었다.

‘골초’라는 표현 대신에 애써 ‘체인 스모커’로 불러줄 것을 고집하고, 위에서 인용한 말라르메의 말을 나의 특허인양 읊조리고 다니는 치기(稚氣)도 함께 내뿜으면서….

그런 내가 단연(斷煙)을 결심하고 실행한 것은 지난 1980년 1월 4일이었다. 이 날은 내가 처음 아버지가 된 날이다. 나는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

금연은 뚜렷한 명분을 세워 결행할 때 성공확률이 높다는 것이 경험에서 얻은 나의 지론이다. 담배와 인연을 끊은 지 25년이 흘렀다. 이제는 7~8미터 밖에서 풍기는 냄새에도 민감해져 재빨리 피할 정도로 ‘혐연가’가 됐다.

히말라야 산록에 자리잡은 작은 왕국(王國) 부탄이 연전(年前) 세계 최초로 ‘금연국가’를 선포했다고 한다. 부탄에 입국하기 위해선 휴대품에서 담배는 빼지 않으면 안된다. WHO가 이상(理想)으로 삼는 ‘연기없는 사회’의 모델이 만들어진 것이다. ‘연기없는 지구촌’은 언제쯤 실현 가능한 것일까?

담배끊기의 지난(至難)함을 역설적으로 꼬집은 마크 트웨인의 풍자가 마음에 걸리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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