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염으로 불편한 다리를 뻗고 콩나물을 다듬는 어머니한성수
나는 아들과 함께 마당에 내려섭니다. 마당에는 어머니의 지팡이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어머니! 못 보던 지팡인데 어디서 났어요?”
“응, 너희 작은 형님이 요번에 여행가서 지팡이를 사 왔는데, '부모에게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네 이모에게 주었단다. 그래서 네 이모가 짚던 지팡이를 가져온 거란다.”
나는 어머니의 불편함을 보조하는 저 지팡이보다 못한 아들은 아닐는지요.
“막내야! 카메라 가지고 다른 사진 찍지 말고, 내 만 리 갈 때 쓸 사진 하나만 찍어라. 저번에 찍어서 액자에 넣어놓은 사진은 한복을 입지 않아서 좀 그렇다.”
어머니는 서둘러 한복을 꺼내어 입습니다.
“어머니, 다음에 시내 나가서 찍읍시다. 카메라도 좋지 않고, 지금은 어머니의 얼굴이 붉게 나오는데 화장도 하셔야겠습니다.”
“괜찮다. 한복만 입고 찍으면 된다.”
어머니는 풀썩 마당에 주저앉습니다. 나는 사진을 찍는 시늉만 합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사진을 이렇게 찍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한밤중에 나는 아들의 일기를 보고 있습니다. 제목은 ‘반성문’입니다.
"오늘 할머니 댁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무척 혼났다. 내가 커서 아이를 낳아서 내 아이가 나를 만나지 않으려고 하면 나도 아버지처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들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더 아프고 죄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한 것처럼 아들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습니다.
겨우 보름에 한번 어머니를 찾으면서 반찬 몇 사가는 것으로, 매일아침 받지도 않는 전화 한통으로 효도를 다했다고 스스로 우기는 이 못난 아비의 서러운 초상을 잠든 아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늙어 꼬부라진 그 어느 날, 나는 찾지 않는 아이들에게 어머니와 달리 서운해서 펄쩍펄쩍 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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