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의 체사피크만의 바다 위 다리박도
거기서부터는 금세 산세가 달라진다. 산세도 험하고 산림도 훨씬 우거진다. 강원도 횡성군서원면이라는 팻말이 나온다. 우리 국토 가운데 상대적으로 청정지역은 강원도다. 강원도에 접어들면 공기도 확실히 다르고, 밤하늘의 별빛도 더 영롱하다.
개구리들의 대합창
지난 주, 예사 때와는 달리 서울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느지막이 출발했다. 아내와 함께 저녁놀에 물든 한강을 바라보면서 한적한 국도로 달렸다. 언저리 분위가가 아름다워서 비단에 수를 놓듯, 요한시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문득 듣고 싶었지만 차도 낡은데다가 테이프도 없었다.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갈운리 들길에서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산길로 접어드는데 그새 어둠이 짙게 깔렸다. 차창을 열자 한꺼번에 대합창이 들려왔다. 개구리 떼들의 요란한 합창이었다. 어느 음악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으랴. 밤하늘의 별조차도 우수수 쏟아지듯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겨운 대자연의 조화인가. 천국이 여긴가 싶었다. 차창을 한껏 열고서 개구리들의 대합창 속에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행복을 가득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날 우리들은 여름이면 개구리들의 합창 속에 살았다. 서울서도 미아리 고개만 넘으면 그 합창을 들을 수 있었다. 아니 경복궁 옆 삼청동 계곡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흔했던 개구리 합창을 웬만한 시골에서조차도 들을 수 없다. 들판에 개구리가 없기 때문이다.
온 들판에 농약과 제초제가 마구 뿌려지고 있다. 그 흔했던 메뚜기가 사라졌다. 메뚜기가 없자 개구리도 볼 수 없고, 그 개구리를 잡아먹던 뱀도 보기가 힘들다. 이러다가는 이 지구에는 야생동물들이 사람들 때문에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의 삶이 자본의 논리에 깊이 병들었다. 어린 영혼을 기르는 학교조차도 자본에 피폐되더니, 이제는 사람이 사는 어디든 구역질나지 않는 곳이 없고, 자연조차도 자본의 물결(개발)에 황폐화되고 있다. 세상이 온통 자본의 논리에 허우적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