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황해도 해주.
“끙-, 넨장헐”
뒷간에서 대꼬챙이로 항문을 후비던 또판개(又板介)가 투덜거렸다. 연일 소나무 껍질을 벗겨 삶아 먹으니 도통 풀기만 어려서 똥이 엉겼다. 며칠 째 큰일을 보지 못해 얼굴이 부연했다. 그나마 풀죽이라도 제대로 먹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딸린 자식이 많은 판개(板介) 형님네는 아이들 먹이기에도 모자라 당신은 정작 풀죽조차 삼순구식(三旬九食)하는 형편이었다.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꼭 맞는구먼. 이러다 남아나는 똥구멍이 하나도 없겠다. 에잇, 이놈의 인생은….”
결국 똥 파내기를 포기한 또판개가 대꼬챙이를 내 던지며 괴춤을 추슬렀다.
무슨 수를 내야 한다. 이러다간 정말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이다.
‘마름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여 볼까?’
정말이지 네 마지기 땅을 부쳐 소작료로 소출의 7할을 바치는 것은 해도 너무했다. 남은 3할이라도 온전히 건지면 내 것이나 되련만 급할 때 꾸어먹은 환곡의 이자를 대기에도 벅찼다.
‘참 퍽도 들어주겠다. 지주나 마름이나 바늘로 찍어도 피 한 방울 안 날 놈들인데.’
마름을 찾아가 소작료 율을 조절해 달랄까 하다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지금 임금이 등극하고 대원군이 나선이래. 토지소유자에게 세금을 물리는 정책을 쓰려한다고는 하지만, 없는 이들에겐 정작 나아진 것이 없었다.
“험. 아우야, 또판개 있니? ”
또판개가 뒷간을 나서 마당에 내리는데 삽짝 편에서 찾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형님 어쩐 일이셔요?”
또판개가 반갑게 맞았다.
“아침은 먹었고? 어허 참, 정신도, 요즘 같은 때 그럴 리가 없지.”
판개가 마당으로 들어서며 또판개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다가 말을 거두었다.
“저는 형님이 더 걱정입니다. 노모까지 모시는 분이….”
“그거야 뭐, 저 말이다. 어제 관아의 병방이 다녀갔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 두 놈까지 군적에 올려놓고 군포를 내라 하더구나. 내 군포도 내지 못해 걱정인데 자식 놈들까지….”
“아니, 그런 썩을 놈을 봤나. 그래, 그 놈을 그냥 두셨수?”
판개의 말을 들은 또판개가 격앙되게 소리를 높였다.
“별 수 있겠느냐. 그러잖아도 돌아가신 아버님도 군적에서 빼 주지 않아 애를 먹지 않았잖니. 그걸 빼는데도 얼마를 고생했는데 어찌 막 대할 수가 있겠누.”
“에이, 더러운 놈의 세상, 빌어먹을 놈들!”
또판개가 이를 악물었다.
“너도 모아 놓은 돈은 없겠지?”
판개가 힘없이 물었다.
“제가 그런 돈이 어디 있겠수, 형님.”
또판개도 풀이 죽어 대답했다.
“그래,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냥 갑갑한 마음에….”
“죄송합니다 형님. 힘이 못 돼서.”
“무슨 말을, 네 나이 스물 셋에 연즉 미장가인데도 명색 형이나 되어 도움 한 점을 못 주는 주제에 괜한 소릴 했어.”
“형님 전 장가 따윈 관심 없습니다요. 제 한 몸도 못 추스르는데 딸린 식솔이 웬 말이겠습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린 하질 말어. 음양이 합환하는 게 사람이 정한 이치인 줄 알아? 난 이러고 지내는 네 생각만 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지금, 장가가 문제가 아니잖습니까요 형님. 우리…, 올해는 넘길 수 있을까요?”
“….”
“다시 배를 탈까요?”
“어머님이 길길이 뛰시는데 그게 당키나 하겠느냐. 아버님을 바다에서 잃고 그리도 끔찍이 자식이 배에 남아 있는 걸 싫어해서 남의 땅 부치며 우리가 이리 살고 있는 것 아니냐. 그리고 배를 탄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나, 우리 배가 없는 한 뼈 빠지게 일해 선주 배나 불릴 일이지 그게 어디 우리 몫으로 오기나 하더냐. 땅뙈기 부쳐 지주에게 퍼주나 고기 잡아 선주 배불리나 그게 그거지. 차라리, 구월산에 들어가 녹림당이나 차릴까.”
“형님! 아무리 시절이 하 수상키로서니….”
“또판개야.”
“예, 형님.”
“난 더 이상 기력이 없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살기가 싫다. 요행수로 올해를 넘긴들 내년일랑 또 무엇으로 버텨낸단 말이냐.”
판개의 말에 고개를 숙인 또판개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형님, 정 그러시면, 저희 광산으로 가지요.”
“광산으로?”
“예. 평안도 쪽엔 노임을 꽤 후하게 주는 광산이 있다 들었습니다. 황주에 있는 동무 하나도 광산에 간다 하더니 반년이 안 돼 솔거하여 갑디다.”
“군포도 못 내고 환곡도 갚지 못했는데 이 고장을 뜨게 해 줄까?”
“그러니 몰래 떠야지요.”
“이 식솔들을 다 어찌하고?”
“그야 물론 데려 가얍죠. 인근 마을에 맡기는 한이 있더라도 여길 떠나야지 여기 남겨지면 그 뒷감당을 어찌 하겠습니까.”
“그래. 깜냥이 정해졌으면 주저할 게 없다. 오늘 밤 뜨자꾸나. 해시쯤 해서 네가 우리 집으로 오렴.”
“예. 대신 세간을 단촐히 해서 짐을 줄이세요.”
“언제는 세간이라는 게 있기나 하였느냐.”
판개가 총총 울 밖으로 나섰다. 또판개도 방안으로 들어서며 나름으로 짐 꾸릴 차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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