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봉에 올라 망망대해를 보다

부산 가덕도 연대봉 등반기

등록 2005.06.01 08:59수정 2005.06.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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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향목 산악회의 향기는 연대봉 봉수대 위를 나른다

향목 산악회의 향기는 연대봉 봉수대 위를 나른다 ⓒ 정근영

가덕도. 그 섬은 내게는 가까운 섬이다. 지금도 창문만 열면 눈앞으로 다가오는 아주 가까운 섬이다. 1978년도에 녹산에 터잡고 살면서부터 낙동강 하구에 사는 지금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가덕도 연대봉을 바라보며 살아온 셈이다.

하지만 가덕도 연대봉은 오늘로 딱 두 번째 찾는다. 그동안 몇 차례 가덕도를 방문한 일도 있기는 했지만 연대봉에 오르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멀리서 가덕도를 바라보노라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산 위에 우뚝 솟은 바윗돌이다. 멀리서 짐작하기로는 '저것이 봉수대인가보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녹산의 뒷산 봉화산은 한 여인이 웅크리고 엎드려 누워있는 모습이다. 그 산 기슭엔 여근굴이 있다. 요즘 들어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아니면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녹산에 저렇게 큰 음굴이 있어 여자들의 바람기가 세다는 말도 돌아다녔다. 그래서 가덕도 연대봉에 남근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닌 듯 연대봉 바윗돌은 엄청나게 큰 바위들이 어깨 걸고 손잡고 서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연대봉에 올라가기 위해 가덕도에 들어갔다. 하지만 겨울철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이라 산불 감시원과 실랑이만 하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뒤에 두류산악회를 따라서 연대봉에 한 번 올라갔고 이번에 향목산악회를 따라 두번째 오르게 되었다.

2005년 5월 29일. 일기예보와는 달리 하늘은 참 맑았다. 바다처럼 푸른 하늘,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 어디부터가 바다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모를 지경이다. 산불방지 입산 금지 기간이 해제되고 처음 맞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녹산 선착장은 가덕도를 찾아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a 녹산 선착장, 가덕도로 가는 등산객으로 붐빈다

녹산 선착장, 가덕도로 가는 등산객으로 붐빈다 ⓒ 정근영

녹산 선착장에서 가덕도를 바라보면 바로 코앞이다. 얼마나 가까워 보이기에 초등학생조차 배 기다리는 시간에 헤엄쳐서 건너가자는 우스갯소리를 할 것인가. 한참을 기다려 배를 타고 한 십 분 맑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니 어느새 가덕도 선창이다.

선창. 배의 창문인가. 아님 배를 대고 떠나는 곳인가. 그래서 선창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류다. 선창은 땅이름이다. 선창은 가덕도의 관문으로 그 옛날 수군의 군항지였다는 것이다. 선창은 한자로 仙倉으로 쓴다. 신선이 머무는 곳인가. 전설이 있을 듯 한 데 알 수가 없다.


천가초등학교에 이르렀다. 교문 안에 버티고 선 하늘을 뒤덮은 은행나무가 있다. 큰 둥치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가덕도가 남해 바다 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섬만은 아닌 것 같다. 가덕도는 부산에서 가장 큰 섬이다. 인구 40만을 포용하는 영도보다 더 큰 섬이다. 넓이 20.78평방킬로미터, 해안선 길이 36킬로미터로 중종 39년(1544)에 가덕진, 천성 만호진을 설치했다고 한다.

은행나무 그늘 아래에는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원군 척화비가 서 있다.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로 힘을 얻은 대원군은 제국주의 침략을 막기 위해 기세를 올린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의하는 것이다.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대원군은 서슬이 퍼래서 서양 오랑캐의 침범을 경계했지만 그가 편 쇄국정책은 이 나라를 침체의 늪에 빠뜨린 것으로 역사는 평가한다.

a 대원군의 척화비, 오랑캐와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일(?)

대원군의 척화비, 오랑캐와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일(?) ⓒ 정근영

가덕도는 이름 없는 작은 섬만은 아닌 듯하다. 가덕도 섬을 타고 서양의 문물이 들어왔는가 보다. 그래서 이 작은 섬에 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운 것이리라. 2009년 가덕대교가 완공되면 가덕도는 이제 더 이상 섬이 아니다.

가덕도는 임진년 조-일 전쟁 때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무찌른 곳이기도 해서 유서가 깊은 섬이다. 숭어, 청어, 대구가 많이 잡히며 특히 대항은 육수장망 숭어들이로 유명하다. 여섯 척의 배로 바다 밑에 그물을 깔고 그 그물 안으로 숭어떼가 들어가면 여섯 척의 배에서 그물을 걷어 올려서 숭어를 잡는다. 남해에 죽방렴이 있어 멸치 떼를 죽방으로 몰아넣어 잡는 것과 비슷한 원시적인 고기잡이법이다.

천성초등학교 뒤쪽으로 해서 산에 올라가니 하늘을 치솟은 탑이 나타난다. 1950년 '경인년 남북전쟁' 때 희생된 국군 스물 셋 용사의 무덤이다. 이 나라에 있는 국군의 무덤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의 무덤이라고 한다.

국립묘지 말고도 여러 곳에 국군의 무덤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나라 곳곳에 더러 국군의 무덤이 있는가 보다. 여기서 멀지 않은 가락에도 국군의 무덤이 있으니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도 '6·25를 잊지 말자'는 구호가 내걸리기도 하지만 이제 우리는 6·25의 상처를 딛고 6·15의 희망을 노래해야 하지 않을까.

a 연대봉 시원한 숲속 길을 간다

연대봉 시원한 숲속 길을 간다 ⓒ 정근영


a 파도에 맑같게 씻겨 빛이 나는 가덕도 해안

파도에 맑같게 씻겨 빛이 나는 가덕도 해안 ⓒ 정근영


a 가덕도의 명물, 연대바위

가덕도의 명물, 연대바위 ⓒ 정근영

가덕도 연대봉 오르는 길. 임도를 따라 오르는 길은 편하기도 하다. 임도를 벗어나 숲속을 걸어가니 시원하기도 하다. 하지만 해발 500m도 채 미치지 못하는 연대봉은 그렇게 만만한 산이 아니다.

대항과 연대봉으로 가는 갈림길 고개에서 연대봉으로 방향을 잡아 산에 오르는 길은 경사가 매우 급하다. 길가에 로프가 쳐져 있어 그것을 잡고 올라가는 이도 있지만 아직은 로프에 의지할 만큼 늙지 않았다. 하지만 땀방울은 쉬지 않고 솟아오른다.

연대봉 봉수대다. 복원한 지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이끼 하나 끼지 않아 옛 정취는 찾을 수 없다. 왜적이 침범할 적에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올리는 봉수대라고 한다. 저 봉수대에서 얼마나 연기를 피워 올렸을까. 그때마다 무지막지한 왜적떼들은 이 평화스런 바닷가를 피로 물들였겠지.

a 연대봉 산등을 타고 가는 사람들

연대봉 산등을 타고 가는 사람들 ⓒ 정근영


a 가덕도를 찾은 강태공들, 어린아이도 보인다.

가덕도를 찾은 강태공들, 어린아이도 보인다. ⓒ 정근영

2005년 5월 29일. 우리 향목산악회는 여기 봉수대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 올린다. 향목산악회. 부산 컴퓨터 과학고등학교 교직원과 그 식구들을 회원으로 조직된 단체다. 이날 마흔 명 넘는 식구들이 어울려 가덕도 연대봉에 올랐다.

일흔을 넘은 교장 선생님과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연대봉을 오른 사모님에서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노소가 한 몸이 되어 연대봉 높은 봉우리에 올라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본다. 망망대해, 그야말로 끝없이 맑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a 조심, 조심, 손녀와 할머니

조심, 조심, 손녀와 할머니 ⓒ 정근영


a 즐거운 회식시간, 입안에서는 군침이 돌고

즐거운 회식시간, 입안에서는 군침이 돌고 ⓒ 정근영

가덕도의 명물은 연대봉 아래 바다를 굽어보는 커다란 바윗돌이다. 녹산 사람들이 남근석이라고 했지만 이 바위는 굉장하다. 여러 개의 바윗돌이 쌓여 있고 그 바위 틈새로 수많은 나무들이 자라나 숲을 이루고 있다. 저 덩그런 바윗돌 위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라도 세워 왜국을 향해 호령하게 했으면 좋겠다.

가덕도를 나와 용원 횟집에서 상치 쌈에 한 입 가득 회를 씹는 것은 꿀맛이다. 가야국의 첫 임금 김수로왕이 인도 아유타국의 먼 나라에서 찾아온 아내를 맞이한 용원,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싱싱한 회를 찾아서 이곳을 찾는다. 용원의 생선회를 안주로 소주 한잔 기울이면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지고 새로운 활력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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