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스 신이 심은하보다 예쁠까?

서재영의 산문집 <진다방 미스 신이 심은하보다 이쁘다>

등록 2005.06.01 11:09수정 2005.06.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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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진다방 미스 신이 심은하보다 이쁘다>

책 <진다방 미스 신이 심은하보다 이쁘다> ⓒ 부키

유쾌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토속적이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는 기분이다. 서재영의 산문집 <진다방 미스 신이...>는 아주 향토적이면서도 맛깔스러운 음식, 예를 들자면 전라도 식 밥상이라든가 충청도 식 산채 비빔밥을 먹는 기분이 드는 그런 책이다. 그만큼 토속적이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글 솜씨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서울 생활을 접고 농촌에 들어가 살면서 겪는 온갖 생활 이야기를 저자 특유의 넉살 좋은 입담으로 풀어나가는 데에는 빠져들지 않고는 못 배긴다. 농사는 제대로 짓지 않고 그저 한량처럼 세월을 보내는 듯 보이지만, 저자의 삶에는 농촌 특유의 진득한 삶의 깊이가 묻어난다. 그래서 일반적인 농촌 예찬론자들의 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강거리 마을회관에 가서 꽁고기 잘 먹었다. 꽁 두 마리 잡아서 통감자 넣고 도리탕으로 끓였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그런데 왜 꿩이 아니고 꽁이냐고? 그야 이쪽 사람들 귀가 잘못되었는지, 꿩이 날아오르며 내지르는 '꿩'하는 소리가 이쪽 사람들 귀에는 '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오랜 서울 생활을 접고 농촌에 살면서 그가 하는 일이란 콩 농사를 지어 청국장을 짓고 된장을 만들어 서울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그것도 상업적으로 달려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급자족의 궁핍한 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작은 판매를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백당'이라는 웹 사이트에 잡문을 쓰는 것으로 소설가가 되고자 했던 꿈을 펼친다.

그가 비록 소설 나부랭이를 성공적으로 출간하지 못했을지라도 그의 '잡문'은 잡문을 뛰어넘는 맛을 지니고 있다. 고향에서 생겨나는 소소한 일상을 그 나름의 독특한 문체로 전달하는 일. 그 일은 저자 자신에게 있어 적극적인 자기표현임과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시골의 정다움을 전하는 청국장과 같은 구수한 매력을 지닌다.

"시골에 산다는 것, 그것도 소재지가 아니라 깡촌에 산다는 건 불편한 삶이다. 아니지, 불편하다기보다는 뭐랄까, 참는 법을 배운다고 할까. 무얼 참는다는 건가. 이것저것 많겠지. 가슴에 손을 얹고 진실을 말하자면, 참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것도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본다. 시골에 산다는 건 세계를 넓게 이해하는 게 아니고 깊게 보고 깊게 사는 것이다. (중략)

애초에 시골에 산다는 게 불편하다고 한 것은 포장마차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도시적 습성이 남아 있는 저로서는 이처럼 술이 댕길 때 포장마차에 가고 싶은 것입니다. 자봉님이 양념 통닭을 먹는 사연에는 비할 수 없으나, 포장마차에서 낮선 이들과 술을 마시는 게 은근한 즐거움이었거든요."



서울에 사는 회원들과 대화하듯이 술술 써 내려간 글들은 읽는 이의 마음에 시골의 아주 사소한 일상을 일깨워 준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글이 결코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도시의 복잡한 삶 속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진득한 삶의 깊이를 전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 입가에 웃음이 머금음과 동시에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옛 선조들이 글을 통해 '해학과 골계미'를 전하였듯이 서재영의 글 또한 웃음을 통한 삶의 스트레스 해소와 성찰적 의미를 전하는 점이 독특하다. 책을 읽는 내내 우스워하지만 그 속에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삶의 가치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때로부터 팔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우리네 인생은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 고향에 돌아와 살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지금은 고향에 살고 있다. 그리고 고향에 와 살면서 이 고장에 도토리 묵밥을 파는 음식점이 여기저기 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팔 년 전에 향이와 함께 갔었던 그 묵밥집도 여전히 영업 중이다. (중략)

장소며 건물은 바뀌었으되 주인은 그대로니 그 맛이 크게 변했을 리 없다. 그래도 비닐 창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 불현 듯 목이 메여 오고, 도토리 묵밥에 섞인 작고 샛노란 좁쌀 알갱이가 슬픔처럼 점점이 혀끝에 박히던 그날의 맛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향이는 그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시작되었을 때 세상에서 떠났다."


초등학교 동창생 향이가 많이 아프다는 얘기에 마을에 사는 동창들끼리 찾아간 어느 날. 그녀는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라는 친구들의 말에 '음식점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가건물로 허름하게 지어진' 묵밥집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병마는 그녀를 그대로 두지 않고 세상 밖으로 데려가고, 저자에게 인생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하는 바람만이 세상에 남았다.

책 제목이 <진다방 미스 신이 심은하보다 이쁘다>가 된 연유는 다방에서 만난 한 여 종업원에 대한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TV를 보면서 그녀에게 "내 보기엔 미스신이 저 상것들보단 훨 낫구만"이라고 농담을 거는 저자. 그런 그의 입담 속에는 세상 모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비록 그녀가 세속적으로 천하게 취급받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한 사람 자신으로서 존중받을 만한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의 글들은 상스러운 듯 보이나 상스럽지 않고 가벼운 듯 보이나 가볍지 않은, 진짜 '살아가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세상만사의 오묘한 진리는 결국 우리 삶 속에 존재한다는 진실. 그 진실을 망각하고 있다면 이 '잡스러운' 글들을 읽으며 가볍게 깨닫기만 하면 된다. 어느 누구의 삶도 저자의 삶처럼 즐거울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즐거움 속에 결국 자신이 애써 찾고자 하는 진정한 삶의 의미도 숨어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서평 웹진 <리더스 가이드>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서평 웹진 <리더스 가이드>에도 실렸습니다.

진다방 미스 신이 심은하보다 이쁘다

서재영 지음,
부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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