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82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6.01 17:19수정 2005.06.0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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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사살 23명, 부상 7명, 생포 17명입니다. 생포자와 부상자는 해도로 이송할 예정입니다요."

흑호대 초관 점백이가 권기범에게 보고했다. 황당선 선창에서 꺼내온 은궤를 모두 선적하고 상황을 수습한 뒤였다.


"아군은?"

"우리 편은 흑호대원 1명이 전사했고 1명이 총상을 입어 중태이며 수군 소속인 수돌이가 위급합니다. 소포 부사수는 어깨에 가벼운 상처만 입었습니다."

"총상을 입은 자 둘은 살아날 가망은 있는가?"

"흑호대원은… 오늘을 넘기기 어려워 보이고 수돌이는 복부에 총상을 입었사온데 차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요."

"흠…."


보고를 받는 권기범의 표정이 어두웠다.

"노획한 물품은?"


"노획한 불랑기 포가 2문, 양총이 16정, 청 조총이 10정입니다요. 그 외 창칼이 다수이온데 쓸만한 물건은 아닙니다. 에, 또… 양식 거둔 것이 한달치 쯤 되옵고, 자세한 액은 세어봐야 알겠습니다만 은궤로는 스무 상자가 됩니다요."

"은자로 20만 냥은 족히 되겠군."

그렇다면 이 배의 은궤는 왕대인 측에서 준비한 인삼대금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이 자들은 뭔가? 왕 대인 측에서 수적(水賊)을 가장해 우리 물목을 노린 것인가, 아니면 그들도 피해자일 뿐인가? 권기범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시신은 어쩌지요? 배에다 싣는 건 위험한 짓입니다. 이 더운 날에 못해도 사흘 이상은 항해를 해야 하는데, 그 안에 부패하게 되면…."

이런 저런 생각에 골몰하는데 선장이 황당선 갑판 위에 널린 시신들을 보며 물었다.

"우리 쪽 흑호대원만 거적으로 말아 뱃전 외판에 달도록 하게. 나머지 수적들의 시신은 황당선과 함께 수장하도록 하고."

"예. 하오면 향후 진로는 어찌 할깝쇼?"

선장이 물었다.

"글쎄… 그것이 문제야. 흑호대원과 수돌이가 저 몸으로 해도까지 견딜 수 있을까?"

"시일을 지체하면 어려울 것입니다요. 벌써 피를 많이 흘린지라…."

권기범의 물음에 선장이 자신 없어 했다.

"저… 말씀 중에 외람됩니다만은, 평양에 총상에 용한 의원이 있다 들었습니다. 정 아무개라 하는데 지난 미리견 양선이 대동강에서 변을 냈을 때도 그 사람이 돌본 자들은 대개 목숨을 건졌다 들었습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개성 행수 서문길이 끼어들었다.

"평양에?"

"순풍을 만나면 예서 뱃길로 하룻길입니다요. 해도보다 하루 반 길을 줄일 수가 있습죠."

선장이 대략 짐작하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해주 쪽으로 돌아서지 말고 내처 해도 쪽으로 향하게. 서 행수와 일행은 송화에 내려 육로로 인삼을 가지고 다시 돌아가고, 우린 사후선과 함께 대동강 어귀에 내려주면 되겠어."

"하오면 대장님이 직접 내리시겠단 말입니까요?"

"천상 그게 제일 나아. 어차피 흑호대원들은 은궤와 함께 해도로 들어가야 하니 내가 평양을 경유해 본영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래도 그것이… 차라리 저희들이 가는 게…."

점백이가 석연치 않은 듯 말을 끌었다.

"아냐, 자네들은 자네들 나름으로 해도에서 할 일이 있잖나. 나도 내친 김에 평양에 볼일을 보고… 그리하도록 하지."

권기범이 웃으며 말을 맺자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 그리고 수영장에게 그 명령서를 전하고 차질 없이 지원하라 이르게. 장마가 사이에 끼긴 하겠지만 그래도 일은 진행되어야 우리가 운신하기 편할 게야."

"예, 알겠습니다."

권기범이 점백이에게 추가로 지시를 내렸다.

'수영장(水營長)에게? 저 치는 직급이 얼마나 되길래 함부로 수영장, 수영장이라 하누? 무슨 병무영장이라도 되는 게야?'

선장이 권기범의 말투를 예사로 넘기지 않으며 넘겨짚었다. 본영 호위대장이란 명목으로 처음 상면한 사이였나 하는 짓이나 자세가 예사 무장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해도 수군의 선장이면 대접받는 자리였으나 저 치는 도무지 발바닥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투였다.

"선장님, 준비가 끝났습니다요."

선원 하나가 항해 준비를 마쳤음을 고했다. 황당선에 남아 있던 마지막 흑호대원도 병조선에 올라탔다.

"점화했습니다."

늦게 올라탄 흑호대원이 점백이에게 아뢰었다. 선창 화약고로 연결된 화승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는 보고였다.

"자 노를 저어라! 어서 배를 빼 내라 어서."

선장이 힘껏 외쳤다. 돛이 한껏 바람을 받았고 노가 바삐 움직였다. 병조선이 황당선으로부터 급속히 멀어졌다.

[콰쾅, 쾅-]

화살 두 바탕 거리가 넘게 멀어졌을 무렵 황당선에서 불꽃이 터지며 엄청난 폭음이 들렸다. 병조선보다도 큰 황당선의 형체가 짓 뜯기며 조각조각의 널판으로 화했다. 몇 번의 유폭이 이어진 후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소음과 흔적을 삼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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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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