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 핏빛 돼지
김화에서의 서전을 승리로 장식한 조선군은 진군을 계속하여 인근 백수봉 아래에 이르렀다. 척후를 보내어 조선군의 진격을 주시하고 있던 호서아와 소대여는 조선군의 군세가 대단치 않음을 보고서는 병사를 양방향으로 나누어 즉시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조선 땅에서의 마지막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이 기회에 전공을 세워 이름을 드높이면 장차 중원을 공략할 때 선봉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호서아의 호기로운 말에 소대여도 질 수 없다는 각오로 받아쳤다.
"어찌 자네만 그렇게 된단 말인가? 군사들을 반으로 나누었으니 적의 대장을 잡는 사람에게 공을 몰아줌이 어떤가?"
호서아와 소대여가 서로 어찌 공을 세울까에 대해 논하고 있는 사이 조선군은 그들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어 가고 있었다.
"적의 수는 많으며 우리는 적다. 포수와 살수들이 대부분인 우리 군이 적의 기병과 맞닥트린다면 행여 이긴다고 해도 그 피해는 녹녹치 않을 것이다."
"백수봉 아래 비탈이 가파른 둔덕이 있는데 그곳에 진을 치고 적을 받아 친다면 능히 당해 낼 수 있습니다."
윤계남의 말에 홍명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보았다. 너무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면 적은 우리를 포위해 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도 가도 못하는 형국이 되니 그곳이 적당하다."
이런 조선군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한 호서아와 소대여는 얼굴만 마주볼 뿐이었다.
"조선군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호서아가 앞으로 나서 조선군을 바라보니 짐작했던 바대로 그리 대단치 않아 보였다.
"저들이 어떻게 나오던 우리는 두 갈래로 나누어 가면 된다. 보아하니 놈들은 기병도 없지 않나! 기병을 돌격시킨 후 그 뒤를 보병과 궁수가 따르라!"
소대여가 호서아를 잡으며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저들이 무슨 뜻으로 저 곳에 진을 치는지 알아야 하네. 적을 끌어 들여 쳐부수는 것이 옳은 병법이 아닌가?"
호서아가 크게 웃으며 소대여의 소심함을 나무랬다.
"그거야 병력이 비슷할 경우가 아니겠나? 우리의 수가 세배는 넘을 테니 저들은 우리 공격을 막아내기도 급급할 터이네!."
소대여도 더 이상 신중론을 들이밀지 않고 순순히 병력을 나누어 병사들을 정돈했다. 조선군은 포수와 궁병들을 전열에 정돈 시킨 후 그 뒤에 칼과 창을 든 보병을 배치시켰다.
"적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장판수는 진지를 돌며 병사들에게 각오를 단단히 할 것을 주지시켰다. 윤계남은 한편으로 화약과 화살이 적은 것을 염려했다.
"병마사께서는 남은 병력을 데리고 병력을 시의 적절하게 교체해 주면서 뒤쪽을 엄호해 주시오. 적의 수가 많으니 한 무리라도 산을 돌아 내려온다면 우리 군이 큰 낭패를 당하게 되오."
홍명구는 싸움에 임하는 자세가 소극적인 병마사 유림을 후방으로 돌렸고 유림 역시 이러한 처사에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조선군의 진영이 완전히 갖추어 졌을 때 청의 기병이 힘겹게 비탈을 오르며 전진해 들어왔다.
"적이 백보 이내로 들어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윤계남이 그렁그렁 울리는 목소리로 긴장한 포수들에게 명령을 주지시켰다. 청의 기병이 겨우 비탈을 넘어 일렬로 돌격할 대오를 맞추려는 찰나 조선군의 화승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청의 기병들이 서로 엉기며 비탈로 굴러 떨어졌고 그 뒤를 이어 청의 보병들이 궁병의 엄호를 받으며 달려들었다.
"이거 보기보다 길이 좁아 병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들어갈 수 없지 않나!"
소대여가 낭패스런 얼굴로 밀려 올려가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애초 둘로 나누었던 청의 병사들은 막상 공격이 시작되자 한 덩이로 묶여 올라가는 모양새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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