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97회

등록 2005.06.03 07:55수정 2005.06.0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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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왜? 어떻게 돌아가신 겁니까?'

'네가 알고 싶은 이유가 복수를 하고자 함이냐?'


'그렇습니다. 소자는 아버님만큼 그 분을 존경했습니다.'

'이 애비 역시 형제라 생각했다.'

'알려주십시오.'

'이 애비는 네 선택을 나무라지 않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네가 선택한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절대적인 악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주원장의 행위가 옳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신의 혈족이 대대손손 부와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피를 흘리며 같이 싸운 동료와 형제들을 죽인 그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변명이라도 해 주고 싶으신 겁니까?'


'물론 태조의 그런 행위는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저질러서는 안 되는 패륜적인 행위임에 틀림없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윤리의 잣대를 갖다 댄다면 그는 살아있을 가치도 없는 인간이지. 하지만….'

'……!'


'그가 왜 그런 패륜적인 잘못을 저질러야 했을까? 물론 네가 말한 개인적인 욕심은 분명 있었다. 권력의 맛을 본 자는, 더구나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력을 잡은 자라면 더욱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하여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곤 한다. 더 나아가 그런 자는 항상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그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 중원 전체를 놓고 본다면 그의 행위는 한편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 분명 그 절대적인 권력에 기생해 얻은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그것이 너무나 현명하고 단호한 결정이라고 열렬한 호응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들이 버러지보다 못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자신의 잣대에 맞지 않는 경우 인간이 보일 행동은 두 가지다. 그것을 바꿀 힘을 가진 강자는 힘으로라도 그것을 자신의 잣대에 맞추어 놓으려 한다. 허나 그것을 바꿀 힘을 가지지 못한 약자라면 언제나 그것을 비난한다. 비겁한 약자일수록 은밀하게,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아닌 양 비난을 퍼트리려 하는 것이다.'

'약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닙니까?'

'약자는 또 그렇게 자신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지. 그것 역시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주원장의 패륜이 정당화되겠습니까? 단지 나라를 위하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후대의 사가(史家)들이 그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 것 같으냐? 이 애비는 오히려 태조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쪽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태조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들, 한때 태조가 형제와 동료라 생각했던 그들에 대해, 네가 생각하고 있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비열하고 패륜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던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어렵게 중원을 회복한 대명(大明)이 어떻게 되었을까는 생각해 보았느냐?'

'그건 가정일 뿐입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비겁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렇다 해도 다를 것은 없다. 비난에 있어 가장 비겁한 비난이 대안(代案)없는 비난이다. 그저 비난을 퍼부을 뿐이지. 그것 역시 절대적인 권력을 움켜쥐고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려는 행위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절대적인 권력에 기생하며 어느 정도의 권력과 부를 누리는 자들은 또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 중 일부는 그 절대 권력에 열렬히 호응하며 자신의 부와 권력을 더 늘리고 유지하려 하지만 또 그 일부는 그 비난을 이용하여 자신이 그 절대적인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자신 역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 될 때 자신이 비난했던 그 자와 하등 다를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역대 권력자들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일찍이 공맹(孔孟)께서 하신 말씀을 절대적인 권력자들이 틀렸다고 생각했을까? 모두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은 공맹 말씀을 일부만 이용하여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켰을 뿐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권력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가 없다.'

'간혹이나마….'

'희귀한 예를 가지고, 아니 예외를 가지고 변명하려는 것이냐? 태조는 그들 형제나 동료에 비해 내세울만한 장점을 가지지 못한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정확한 안목과 대세를 읽는 그의 능력은 인정치 않으면서 그의 짧은 지식과 못생긴 외모와 잔혹한 성품을 얕보고 비웃었다. 그 주위에 있는 형제와 동료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

'저런 못난 인간도 중원을 움켜쥐었는데 더 용맹한 장수인 자신이, 또는 그보다 더 학식과 병법이 뛰어난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옹졸한 보이는 태조보다 인품이 정대하고 덕망이 높다고 회자되는 자신이 이 중원을 움켜쥐지 못하란 법이 있을까?'

'……!'

'태조의 행위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만족시키고 결과적으로 중원의 안정을 가져왔다. 만약 태조의 결정이 늦었고, 그래서 누군가가 그 절대적인 권력에 도전했을 때 이 중원이 어떻게 변했을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던 일입니다. 그는 그들을 죽이지 않아도 충분히 다스릴 수….'

'다들 결과만 보고 그렇게 말들 하지. 하지만 중원을 회복하기 위해 수십 년간을 끌어 온 전쟁으로 인해 이 중원은 황폐해지고 전쟁터에서 죽는 병사들보다 굶어죽는 민초들이 더 많았다. 겨우 핏자국을 지우고 땅을 일구기 시작한 그 때에 다시 내란이 일어났다면 이 중원은 회복할 수 없는 황무지가 되었을 것이다. 누가 승자가 되던 그 기간 동안에 더 많은 민초들이 죽어 나갔겠지. 더구나 북쪽으로 쫓겨 간 달탄이나 울량합이 그 기회를 가만히 보고 있었을까? 지금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 있지 않습니까?'

'이 전쟁은 그들 간의 전쟁이다. 숙부와 조카가 서로 창을 맞대는 골육상잔의 전쟁이지. 하지만 태조가 이미 모두 처리했기에 단지 숙부와 조카 간의 전쟁이 된 것 뿐이다. 만약 태조의 형제와 동료들이 살아 있었다면 더욱 위험하고 전 중원을 휩쓰는 전쟁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 중 누가 승리를 하던 변함은 없다. 지금 절대적인 권력에 도전하고자 하는 자들은 사라졌으니까… 그저 주씨 간의 전쟁일 뿐이다.'

정난의 변이 시작된 그 이듬해 자신은 마지막으로 부친을 뵈었다. 벌써 구년 전의 일이었다. 부친의 소식은 언제나 종륜과 항인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다시 찾아 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부친의 태도는 너무나 완강하여 어쩔 수가 없었다.

콰----르르---

한쪽 벽이 다시 무너져 내리고 지붕 전체가 주저앉았다. 하지만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암자는 일부 골격만 남았을 뿐 아름다운 그 풍경은 간 곳이 없다.

'그래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원장의 명을 받아 그 분에게 손을 쓰셨습니까?'

'그가 고향으로 내려갔을 때 우리는 모두 그가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자신도 그 사실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죽으려 했을지 모른다. 주위에서 그렇게 말을 해도 그는 전혀 대비도 하지 않았고, 도망가지도 않았어. 상황은 그가 죽어야만 했지.'

'그래서 아버님이 직접….'

차마 당신이 그 분을 죽였느냐고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친은 그 말의 의미를 짐작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부친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등을 돌리고 불호를 외고 있었다. 부친의 등은 너무나 완강하게 보여 더 이상 따질 수 없었다. 한쪽에 걸린 담명장군의 초상이 그를 나무라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식은 부모의 허물을 들추어 비난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따지듯 대들고 자신의 고집을 부릴 수는 있어도 부모가 가진 단 하나의 사랑마저 배신하면 안 된다. 고래로 부모의 마음을 아는 자식은 없다. 그저 아는 척 하는 것일 뿐….

그의 고개를 더욱 깊이 숙여지며 이마가 차가운 눈 위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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