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곳에 온 것은 확실하지?”
전월헌의 말이었다. 그들은 이미 모든 조사를 마쳤다. 담천의의 행적도 뒤쫓고 있었고, 개봉의 난전에서 여섯 명이 죽은 일도 그가 한 짓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홉째 사제 정운학이 보내온 전서구에 의하면 그가 소리 없이 신검산장을 벗어난 이유가 섭어른과 신검산장에 있는 한 노인네의 말을 듣고 난 후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 강명장군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사람은 섭어른 뿐일 것이다. 역혼기에 접어들어 정신을 잃고 있는 그 분의 말을 들었다면 상황은 더욱 확연해 질텐데 그 분의 말을 들으려면 한 달이란 기간이 지난 후일 것이다. 왜 그 어른이 담천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을까?
그가 죽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곳을 무사히 빠져 나오기 위하여 그와 거래를 했던 것일까? 자신들이 아는 한 섭어른은 그런 거래를 할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가르쳐 준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다.
“백부님께서 돌아가시면서 까지 남겨 놓은 천(天)이란 글자는 담천의, 그 자를 가리키는 것이겠지? 그 자가 흉수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전월헌이 자신에게 묻고 있음을 모를 운령이 아니었다. 이미 대사형이나 등사형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도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갈등하고 있었다.
그 자를 죽이겠다는 미몽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그 자가 존재함으로 해서 닥쳐올 위험까지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들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존재는 분명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그 자가 보일 최선의 방법은 방관이었다. 방관만이라도 해 준다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과연 그 자가 방관하고 있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한 불확실한 상태가 운령으로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안했다. 차라리 죽일 수 있다면 죽여야 했다. 그러면 깨끗해질 것이었다. 불확실함도 제거가 되고 과거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었던 그 인물이 남겨 놓은 흔적까지 걷어 버리는 게 될 터였다.
“…!”
그녀는 대사형을 바라보았다. 대사형의 퉁방울 같은 두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리숙해 보이는 저 눈은 그 크기만큼이나 세상을 넓게 보고 있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저 눈도 피할 수는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탄식을 불어냈다. 사형제들마저 속이면서 일을 진행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닐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잘레잘레 흔들었다. 그녀의 뜻밖의 대답에 그들은 모두 의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자가 살해했다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여러 가지 있어요. 우선 천왕문에 있는 죽은 시체를 설명할 길이 없어요. 더구나 명이는 두 명의 악귀가 이곳의 스님들을 죽였다고 했어요. 그들이 그 자와 한패라면 백부님을 살해한 자가 그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하지만 천왕문의 시체는 스님들을 살해한 장본인이거나 아니면 그들의 동료죠.”
“명이는 백부님 시신 앞에 족자에서 나온 귀신이 있었다고 했지 않느냐? 그것은 그 자가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아.”
전월헌의 말에 운령은 고개를 끄떡였다. 이미 그 족자에서 나온 귀신이란, 더구나 아이가 확신하고 있는 족자 귀신은 그 초상화와 닮은 사람일 것이었고, 그것은 이 세상에 담천의 밖에 없었다.
“아이가 본 그 귀신은 그가 분명해요. 그는 분명 여기에 왔어요.”
그녀는 전월헌의 반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대사형의 얼굴에 기이한 호기심이 비치고 이었다. 그 역시 다시 상황을 정리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가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자가 백부님을 살해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백부님께서 남기신 천의 의미도 깊이 고려해 볼 의미가 있어요.”
그녀의 두뇌는 정말 영민했고, 보지 않은 가운데 상황을 보고 파악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사형제들 간에도 이견을 달 수 없었다. 이미 한두 번 그녀의 놀라운 능력을 본 것이 아니다.
“이곳에는 그 보다 먼저 들이닥친 자들이 있었어요. 흔적을 보면 모두 네 명에서 다섯 명 정도로 추정되죠.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나 개봉의 옷가게에서 죽은 자들과 한패임이 분명해요. 그리고 그들에게 살수 냄새가 난다는 것도 의심스럽죠.”
“대두자와 수조자가 살수라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이곳 주지를 살해한 자가 사용한 방법은 전형적인 살수의 수법이죠. 또한 백부님의 암자에 은신했던 그 자 역시 살수가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수법이예요. 이미 그들의 내력에 대해 조사를 시켜 놓았어요. 그 결과가 나오면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담천의란 자를 노리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또한 왜 이곳에서 이런 끔찍한 살겁을 저질렀는지도 알 수 있을 거구요.”
살수의 수법이라 하면 전월헌만큼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는 사영천을 관장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종리추가 사영천의 천주이기는 하나 그 역시 전월헌의 지시를 받는 존재. 그는 흥미를 느꼈다.
“하여간 그들이 이곳에 있는 사람 모두를 죽였어요. 백부님까지도요.”
“살수들의 냄새는 분명히 나지. 하지만 그들이 백부님까지 살해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어.”
“그것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세 가지나 있어요. 그냥 지나쳤을 뿐이죠.”
그녀의 머리에는 이미 모든 것이 정리된 모양이었다.
“첫 번째는 천왕문에 있는 시체죠. 그들은 이미 이곳에 와 모든 일을 마치고 그를 기다렸다는 뜻이에요. 두 명이 기습했지만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도망쳤죠.”
아예 그 상황을 본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대웅전에 발자국이 두 개 있었어요. 하나는 매우 미세했고, 하나는 너무나 분명했죠. 미세한 흔적은 주지를 죽인 자의 것이고, 분명한 것은 그 자의 것이에요. 그 자는 천왕문에서 기습을 받고 대웅전을 먼저 들렀을 거예요. 그리고 주지가 살해된 것을 알고는 급히 선방으로 가 보았을 테고 스님들의 시신도 보았겠죠.”
그리고는 강명장군이 있을 곳을 살폈을 것이다. 결론은 암자였고, 그곳으로 갔을 것이란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곳에 백부님의 시신을 보았겠죠. 하지만 그곳에도 그를 노리는 인물이 있었어요. 천장이 뚫어진 것이 제가 말한 두 번째 이유예요. 그는 지붕에서 자신을 노리던 인물을 알아채고 공격을 했겠죠.”
“그것이 두 번째 근거가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오랜만에 대사형이 물었다.
“만약 그 담천의란 자가 백부님을 살해했다면 지붕 위에 있었던 자를 쫓아가지도 않았겠죠. 그 자는 자신의 부친이 누구에게 살해되었는지 알려고 온 자예요. 백부님은 그 자가 오면 모든 사연을 털어 놓겠다고 생각하셨던 분이에요. 그 사연 속에 설사 그 자의 부친을 백부님께서 죽였다고 고백해 그 자가 백부님을 살해했다면 굳이 쫓아가 돌아오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그제서야 사형제들은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는 죽어있는 강중의 시신을 보고 그가 온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붕 위에 있던 자를 잡는 것만이 뭔가를 알아낼 수 있는 단서라 생각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명이의 말이에요. 명이는 그 자가 피 묻은 칼을 들고 서 있었다고 했어요. 백부님의 시신 역시 변함이 없었구요. 하지만 백부님은 등에 칼을 맞았어요. 그리고 등으로 기어 한 일자를 썼죠. 사연을 알고 싶은 자가 무조건 기습을 했을까요? 또한 그 자가 손을 썼다면 그러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담천의란 존재에 대한 그들의 관심사는 그 어떠한 중요한 일에 못지않을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 대해 조사를 했고, 그를 만난 적이 없어도 그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여자였다.
“그렇다면 천(天) 자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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