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죠. 그 글자를 남긴 의미는 오직 강명사형 한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 그 글자는 분명 강명사형에게 남긴 것이죠. 백부님은 그 자가 올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그 자에게 남긴 것도 아니죠."
"혹시 흉수가 고의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아무 말도 않고 있던 등자후가 나직이 물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그들이 혼동했듯이 담천의를 노린 짓일 수도 있었다. 운령은 그의 지적에 이미 생각해보았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그런 가정을 해보았어요. 그런 것을 노렸다면 무서운 자 들이예요. 하지만 아닌 것 같아요. 천정이 뚫리는 바람에 눈이 들이치고 바람이 불어 흔적이 섞이기도 했지만 주위의 핏자국으로 보아 백부님이 스스로 움직였다고 보여 지더군요."
죽은 시체를 끌어 움직이는 것과 스스로 움직이는 것과는 흔적에 차이가 있다. 그어진 한일자의 형태가 중간 중간 핏덩이들이 몰려 있는 것은 스스로 움직였다는 증거였다. 죽어가면서도 온 힘을 다해서 천천히 움직였다는 의미였다. 만약 누군가가 끌어서 한일자를 썼다면 처음과 끝은 핏덩이가 몰려 있을 것이고, 중간은 흐릿했을 것이다.
그녀의 추리는 합리적이고 정확했다. 차라리 그 자가 백부님을 죽였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꿰맞추려 했지만 아무래도 들어맞지 않았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했을지 모른다. 대사형은 웃지는 않았지만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다시 모든 사태를 정확히 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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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세시진이 지나도 아직 꺼지지 않고 있었다. 허연 연기를 군데군데 피어올리고 있었지만 강중장군의 시신이 있던 곳이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아직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너무 강렬하게 타올랐기 때문인지 암자의 이전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주춧돌로 놓았던 몇 개의 돌만이 시커멓게 그을린 채 남아있었다.
강명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너무 오래되어 화석으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하지만 내려갔던 사형제들이 올라오자 그는 오랫동안 나누었던 부친과의 대화를 멈췄다. 이미 부친의 혼령은 어딘가 떠돌고 있을 터였다. 모신 아미타불이 있는 그곳으로 갔으면 좋으련만 그거야 살아있는 사람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부친의 유골을 수습해 어찌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직 재가 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물에 씻기고 바람에 깎이어 이곳을 적실 터였다. 그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의 눈물은 말라붙어 자국을 남기고 있었지만 그것을 감추지 않았다 해서 부모의 상을 입은 자에게 욕될 것은 아니었다.
"운령…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올라온 사형제에게 가볍게 예를 표하고 한 강명의 말이었다.
"어떤 것이라도 말씀만 하시면…."
"담천의… 그 아이를 찾아라. 반드시 찾아보아라. 되도록 빨리…."
그 말에 운령을 비롯한 사형제는 얼굴을 굳혔다. 운령은 조심스럽게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형 마음은 알지만 백부님을 살해한 자는 그 자가 아니라…."
강명이 그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안다. 그 아이가 살해했다면 선친께서 돌아가시면서도 그토록 천(天)자를 남기시려 노력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오히려 흔적을 없애려 했을 것이다. 스스로 자살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온다면 스스로 목숨을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던가? 그런 분이 자신을 살해한 자가 그라고 흔적을 남겼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왜 백부님께서 천자를 남기셨을까요?"
"이제부터 알아보아야겠지. 선친께서 마지막 남긴 말씀이니 그것을 풀어야 하는 것도 자식 된 일이다. 여러 가지 가능성은 많지만 생전에 선친께서 말씀하신 것을 되새겨봐야 할 것 같구나."
대사형이 이미 재가 되어 꺼져버린 향로에 다시 새 향을 폈다. 그리고 다시 지전을 꺼내 태우며 삼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형제가 번갈아 가며 향을 올리고 지전을 태우며 절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이 떠날 시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이십여일을 남겨 둔 춘절은 그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이번 춘절에는 정식으로 성화대전(聖火臺展)이 열릴 터였다. 그 동안 되찾지 못했던,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상을 당한 강명이 되찾아온 완전한 성화령(聖火令)으로 불을 점화할 것이고 그들 모두 모여 그동안 준비했던 일을 시작할 것이었다.
천하를 위한 대계는 그래서 한해를 시작하는 춘절부터 본격적으로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었다. 이미 다른 사형제들이 가 있을 그곳으로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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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천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를 찾는 곳은 많았지만 그의 종적은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마지막 모습을 보인 곳은 개봉 외곽의 조그만 사찰인 용화사였다. 춘절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폭설이 내리던 그 날 이후로 그는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소문이 은밀하게, 그렇지만 너무나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고의로 소문을 내지 않으면 절대 돌지 않을 소문이었다.
- 담천의가 강중장군을 살해했다!
(제 5권 完, 제 1 부 尾)
덧붙이는 글 | - 애독해 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부 후기는 게시판에 게시해 놓았습니다(게시판은 초기화면 오른쪽 아래에 <단장기 바>를 클릭하시면 연재횟수가 나열되어 있는데, 아래로 계속 내리시면 보입니다. 연재기사 란에서 단장기를 클릭하셔도 같습니다). 의도했던 내용이 완전하게 표현되지는 않은 것 같아 나름대로 불만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된 것은 모두 독자분들의 덕이라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독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2부를 시작하기 전에 일주일 정도 쉬고자 합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1부를 다시 되돌아 보는 기간으로 괜찮을 듯 싶습니다. 따라서 2부는 6월 15일부터 게재될 예정입니다. 2부는 좀 더 재미있고, 좀 더 치밀하게 구성해 빠르게 진행되도록 할 예정입니다. 언제든지 독자 분들의 격려와 호응, 그리고 따끔한 비판과 질책에 귀를 열어 놓도록 하겠습니다. 2부에서 더욱 적극적인 호응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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