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아이랑 놀아줄 친구가 없어요

굳이 시골을 고집하는 게 정말 잘하는 것일까

등록 2005.06.08 01:39수정 2005.06.0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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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현충일까지 내리 사흘 유치원에 가지 못했던 딸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 오늘은 유치원 가는 거지? 나는 유치원 가는 날이 제일 좋아" 합니다.


유치원 가는 게 얼마나 좋았으면 오늘 아침엔 굳이 궁둥이를 두들겨 깨우지 않아도 새벽같이 눈을 떴습니다. 시키지도 않았건만 사흘간의 그림일기를 손수 챙기고 가방을 정리하고 딴에는 몹시 들뜬 듯했습니다. 그런 딸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노라니 왠지 딸아이가 안쓰럽기까지 하였습니다.

지난 금요일(4일) 오후.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저를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월요일에도 유치원 안 간대. 그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3일 동안이나 뭐하고 놀지?"

아이의 말이 똑 떨어지자마자 명쾌한 대답을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었지만 선뜻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아이가 이 엄마로부터 듣고 싶은 대답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럼으로 그 대답을 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빠랑 놀이동산 갈까?"


아마도 아이가 바라는 대답은 바로 그것일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꼭 제 아빠랑 놀이동산을 가고 싶어서가 아니란 것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그렇게 물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3일이라는 긴 시간에 대한 두려움 그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을 이 엄마가 미리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절실함.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살이라는 것이 백이면 백 다 채우고 살수는 없는가 봅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 저의 일상이 지극히 만족스럽다고 느끼며 사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부와 명성을 내 두 어깨에 걸머지고 살아서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저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을 다 복이라고 생각하고 살다보니 자연히 제 삶이 만족스러워졌습니다.


아직은 건강하신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기에 그것도 복이며,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매사에 성실 하나로 묵묵히 가장 노릇에 충실한 남편도 복이며, 태어나 지금까지 감기 서너 번 걸린 것 빼고는 그 흔한 잔병치레 한번 없이 씩씩하게 자라주는 딸아이도 복이며, 또한 굳이 농사를 짓지 않음에도 이 시골마을에서 그들의 이웃사촌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도 복이며…

이렇게 제가 가진 복을 나열해 보면 결코 부와 명예가 그리 부럽지 않습니다.

삼시세끼 밥 먹고 사는 것은 이 세상 어느 누구나 다 똑같은 법. 결국 행복이란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그 모든 것에 얼마나 만족하고 사느냐의 문제라고 늘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뭐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저의 일상이건만 금요일 오후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그래도 제가 백 가지를 다 채우고 사는 줄 알았는데 결국 한 가지가 빠진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토요일 일요일 동안 함께 놀 친구가 없는 딸아이의 몸살 나게 심심한 시간들 때문입니다.

이 시골마을이 딸아이가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고 구르며 자라게 하고 싶은 엄마 마음으로는 더없이 좋은 천국이건만 딸아이에겐 또래 친구들이 없다는 점에서 그저 더없는 천국이라고 마구잡이로 치부할 수만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여 저희 부부는 아이 때문에 한때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또래들이 많은 도시로 나가는 것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남편이나 제가 아이의 친구가 되어 주는 수밖에 없다는 미봉책으로 해결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미봉책이란 것도 알고 보면 온전히 제몫으로 남는 일이었습니다. 남편이 하는 일이 주로 백화점이나 상가 일이다 보니 토요일 일요일에 일이 거의 집중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아이가 유치원을 가지 않는 토요일 일요일에는 제가 아이의 친구가 되어 줄 수밖에 없었고 이번 사흘간의 연휴 기간 동안 저는 아이와 놀아주느라 입에선 단내가 폴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소꿉놀이, 시장놀이, 책읽기, 숫자놀이, 레고놀이, 인형놀이, 숨바꼭질, 비누방울놀이 등등….

김정혜

김정혜

그런데 참 이해 못할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 모든 놀이를 결코 한 시간을 채우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엄마와 하는 놀이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소꿉놀이를 하든 시장놀이를 하든 친구들과 하면 재미가 있는데 엄마와 하면 시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그런 투정을 들을 때면 나름대로는 재미있게 놀아주려 노력했던 제 노력이 헛된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고 신나고 재미있게 마음껏 놀지 못하는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놀이에 한 시간을 못 넘기는 딸아이가 유독 오래 하는 게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자전거타기였습니다.

김정혜
자전거를 타고 마음껏 달리는 일은 아마도 굳이 친구들과 이 엄마가 별 차이가 나지 않는지 하루 종일 자전거만 타자고 졸라댔습니다.

김정혜
자전거를 타며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할 땐 아이의 기를 세워주느라 일부러 제가 뒤처져 주는 게 그리 신나는지 따가운 햇살에 얼굴이 발갛게 익는 줄도 모른 채 딸아이는 내내 자전거만 탔습니다.

하여 이번 사흘 연휴 내내 저는 딸아이 덕분에 다리에 알이 배기도록 자전거를 신물 나게 타야 했습니다.

김정혜
저녁. 곤하게 잠든 아이의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습니다. 사흘을 내리 햇살 따가운 밖에서 자전거를 탔으니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것은 당연한 일. 가을볕엔 딸을 내보내고 봄볕엔 며느리 내보낸다고 했다는데 혹여 오래 쬔 봄볕이 딸아이에게 해나 되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에 아이의 양 볼을 가만히 어루만져 봅니다.

그리고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숨겨놓은 풀지 못한 숙제를 또 끄집어냅니다.

'굳이 시골을 고집하는 내가 아이를 위해서 정말 잘하는 것일까.'

이 어려운 숙제는 아마도 이 밤이 하얗게 다 새도록 결국 풀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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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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