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저 물레에서 운명의 실이' 표지문학사상사
나는 딸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남자와 여자에 대한 확실한 구분 없이 자랐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우리 집에서는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남자인 내가 빗자루를 들고 방 청소를 하고 누나가 마당의 멍석을 치우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환경으로 인해 좋은 점도 있었지만 가끔씩은 누나와 치고받고 싸우는 일도 생기곤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탓에 나는 여자에게는 그에 맞는 말을 사용해야 하고 배려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여자도 남자와 같이 일하고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배려를 몰랐던 시기
이런 생각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초년병으로 회사에 취직을 했을 때까지도 변함없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안정된 직장을 잡고 배치된 부서에는 수백 명의 여사원들이 근무하는 곳이었지만 남자는 열 명도 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사회 경험이 전혀 없는 나와 함께 일하는 여사원만도 수십 명은 족히 되었다. 그런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누구도 여성과 일할 때의 주의사항 같은 것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자라면서 해 온 행동들을 그대로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어떤 여사원이 '오늘은 와이셔츠가 참 잘 어울립니다'라고 말을 걸어오면 '감사합니다. ○○씨의 머리도 달라졌군요'라고 대답을 하면 좋을 텐데 '아침부터 쓸데없는 말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라며 분위기를 깨 버리는 것이다.
나의 이런 말을 들은 상대는 며칠씩이나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상대의 기분도 모르고 남을 배려하지도 않으면서 생활을 하다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하는 곳의 분위기가 나빠지면서 실적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구타를 하다
그러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날 무슨 잘못을 저지른 여사원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툭툭 쳤는데 그 여사원이 구타를 당했다며 고향에서 부모님을 불러 온 것이었다. 누나와 싸울 때는 그보다 더 심하게도 싸웠지만 누나로부터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랬지만 시골에서 올라오신 여사원의 부모님을 뵈니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서 다른 변명 없이 진심으로 사과했다. 여사원의 부모님도 딸이 구타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험상 굳은 사람을 상상하며 올라왔는데, 큰절을 하며 사죄하는 나를 보고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하시며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