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에 먹는 '수리취떡' 미리 맛보실래요?

등록 2005.06.08 12:59수정 2005.06.1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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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수리취를 넣어 만든 절편.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수리취를 넣어 만든 절편.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 김선정

지난 주말, 조용하던 보리소골이 들썩거렸다. 꿩, 고라니, 뻐꾸기들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모처럼 친정 식구들이 다 모여서 즐거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보리소골이 들썩거리다

엄마의 84번째 생신을 보리소골에서 치르기로 하고, 이 구석진 강원도 산골짜기까지 오빠, 언니들을 초대했다. 모두들 귀찮아하지 않고 어려운 걸음을 해 주어서 우리 부부는 행복했다. 엄마는 막내딸네 식구가 주말마다 와서 농사짓는 텃밭도 보시고, 사위가 열심히 가꾸는 야생화들도 구경하시며 좋아하셨다.

"내가 언제 또 보리소골에 와 보겠니? 오늘 아주 구석구석 다 구경해야겠다."

엄마는 집 뒤란까지 샅샅이 살펴보시고, 흐뭇해 하셨다. 언제 또 올 수 있겠냐는 말씀에 나는 기분이 묘했다.

노인이 된다는 것, 아마도 그건 살아온 날들 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애틋하고 안타까워진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지내고 싶으신 게다.


a 수리취 한 양푼 담아놓고 떡을 기다리다.

수리취 한 양푼 담아놓고 떡을 기다리다. ⓒ 김선정

저녁이 되자, 우리 가족들은 마당에 모여 앉아 안흥 막걸리 맛에 취하고, 건너편 산그늘, 그 고즈넉한 풍경에 취해서 8남매가 뛰어 놀던 시절, 어릴 적 이야기, 요즘 살아가는 얘기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친정식구 손에 쥐어준 떡봉지


일요일 아침, 서울로, 천안으로, 원주로 다들 집으로 향하는 친정 식구들의 손에는 떡 봉지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엄마 생신에 꼭 맛보시게 하려고, 전날 밤 12시에 취를 삶아 내어 새벽에 방앗간에서 뽑아 낸 취떡이 든 봉지였다.

a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뺀 수리취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뺀 수리취 ⓒ 김선정

예전에는 단오 무렵에 꼭 취떡을 해 먹었었다. 흔히 떡취라고 불리는 이 수리취는 나물로 먹는 취가 아니고, 오직 떡을 해 먹었는데, 잎사귀 앞면은 초록색이고, 뒷면은 하얗다.

취떡은 색도 곱고, 떡이 잘 굳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잘 쉬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쑥과는 또 다른 풍미가 있어 예전 어머니들은 쑥떡보다 취떡을 더 높이 쳐 주었다. 요즘은 떡취가 잘 나지 않는데다가 찾는 이가 없어서 더 귀하다.

손님들이 다 가버리고 우리도 짐을 챙기는데, 냉동실을 열어본 남편이 떡취 삶은 것을 왜 남겼냐고 묻는다.

"큰 누님 생각이 나서. 이틀 있으면 생신이신데, 취떡 좀 해드리고 싶어서."

내 대답에 남편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사과농사에, 밭일에 언제 오실 줄 알고…."

'그래도 언젠가 틈나면 오시겠지.'

나는 속으로 그런 말을 주워 삼킨다.

a 씻어 담아놓은 수리취가 산더미(?) 같다. 그래도 삶아 놓으면 양이 푹 줄어든다.

씻어 담아놓은 수리취가 산더미(?) 같다. 그래도 삶아 놓으면 양이 푹 줄어든다. ⓒ 김선정

남편에게 큰 누님은 어머님 같은 존재다.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기도 하지만 시어머님이 들에 일하러 가시면 막내인 남편을 업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하면서 집안일을 도왔단다.

또 시집을 한 동네로 가셔서 남편과 네 살 차이 조카를 낳았으니 삼촌 조카가 마치 형제처럼 같이 자랐다고 한다.

취떡 좋아하는 큰누님

그런 큰 누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취떡이다. 내가 시집온 이듬해였던가, 큰 누님 생일이 다가오자 어머님은 산에 가셔서 취를 뜯어다가 취떡을 해 오셨다. 큰 딸이 좋아하는 취떡을 만들어 주려고 산에 들어가서 여기 저기 헤매면서 취를 뜯으셨을 어머님. 떡을 맛있게 먹는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머님. 이제는 다시 뵐 수 없는 모습이지만 딸을 생각하시는 어머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일 큰누님께 전화 좀 해요. 나보다 당신이 하면 더 좋아하시잖아."

"쑥스럽게 무슨 전화."

남편은 누님을 엄마처럼 생각하면서도 애정 표현은 여전히 서툴다.

"당신이 전화해. 너무 무리하지 마시라고, 일 좀 줄이시라고 해. 그리고 언제 올라오시면 취떡 해 드린다고 그래."

남편도 누님 생일날 어머님이 해 주시던 취떡이 떠올랐나보다.

a 삶아 놓은 수리취. 예전에는 이 취를 넣어 직접 집에서 찧어 떡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저 이 상태에서 물기를 꼭 짠 후 방앗간에 가져가면 된다.

삶아 놓은 수리취. 예전에는 이 취를 넣어 직접 집에서 찧어 떡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저 이 상태에서 물기를 꼭 짠 후 방앗간에 가져가면 된다. ⓒ 김선정

며칠 있으면 단오다. 단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쇠는 명절이니, 동아시아의 공통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천중절(天中節), 수릿날, 중오절(重午節)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다섯 번째를 뜻하는 말이니, 단오는 초닷새 즉 초 5일이다.

원래 홀수는 양의 기를 상징하는데, 음력 5월 5일은 양의 기가 겹쳐 있는 날이라서 특히 기념하고 길일로 삼아왔다.

쑥떡 모양 수레바퀴 닮아 수릿날

또 단오에는 쑥떡을 해 먹는데, 이 쑥떡의 모양이 수레바퀴를 닮아서 수릿날이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다고 한다. 수리는 고(高), 상(上), 신(神)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라서 최고의 날이라는 의미로 수릿날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설도 있다.

a 싱싱하게 자란 창포.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것이 단오 풍습 중의 하나였다.

싱싱하게 자란 창포.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것이 단오 풍습 중의 하나였다. ⓒ 김선정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세시 풍속이나 명절은 농경 사회의 전통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단오 무렵이면 모심기와 같은 바쁜 일이 다 끝나고 한 숨 돌릴 철이다. 힘든 농사의 중간에 하루 마을 잔치로 한 숨 고르는 명절을 마련해 놓은 조상의 지혜가 단오에 오롯이 배어 있는 것이다.

단오에는 창포 뿌리를 잘라 비녀 삼아 꽂고 다니기도 했고,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도 있었다지만, 이제는 찾아 볼 길이 없다. 그저 삶길 염려 없는 창포만 화단에 무성하게 자라 옛 기억을 더듬을 뿐이다.

수리취로 떡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그네뛰기와 씨름으로 한바탕 신명나는 마을 잔치를 벌였던 농촌 마을도 이제는 노인네들만이 남아 단오를 그저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쓸쓸히 떠올린다.

a 봄에 핀 앵두꽃. 바알간 열매를 기다리는 꽃의 마음이 느껴진다.

봄에 핀 앵두꽃. 바알간 열매를 기다리는 꽃의 마음이 느껴진다. ⓒ 김선정


a 지지난해에 딴 앵두. 단오가 지나도 앵두가 익으면 앵두 화채를 만들어 먹을 생각에 벌써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지지난해에 딴 앵두. 단오가 지나도 앵두가 익으면 앵두 화채를 만들어 먹을 생각에 벌써 입 안에 침이 고인다. ⓒ 김선정

세월은 무상하게 흐르고, 수리취떡도 단오에 흔히 해 먹었다는 앵두 화채도 보기 힘들어졌다. 보리소골은 아랫녘과 기온 차이가 커 아직 앵두는 팥알만하게 달려 있을 뿐 익으려면 한참 멀었다. 그래도 앵두가 익으면, 단오 후에라도 앵두 화채를 해 먹어 봐야지 하며 나는 새삼 단오의 옛 풍습을 그리워한다.

취떡을 만들어 먹고, 온 마을이 흥성거렸을 옛날의 단오를 눈앞에 떠올리는 것은 내가 스러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사는 중년의 나이이기 때문은 아닐까?

수리취떡 만드는 법

1. 수리취를 깨끗이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없앤다.

2.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예전에는 소다를 넣었다) 잘 무르도록 삶아 낸다.

3. 삶아낸 취를 찬물에 여러 번 씻은 후 물기를 꼭 짜서 뭉쳐 놓는다.

4. 불려 놓은 멥쌀과 취, 소금 약간을 방앗간에 가져다 주면 취떡을 만들어 준다.
/ 김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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