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

"그대, 못난 내 사랑을 받아 주오!"

등록 2005.06.08 14:46수정 2005.06.0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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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가을날, 저녁 햇살을 받으며 우리는 시골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이었지요. 그 때 길 옆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가녀린 하얀 코스모스 한 송이를 꺾었습니다.


"그대, 이 꽃을 받아 주오."

a 수많은 별들이 박혀있는 또 하나의 우주, 코스모스

수많은 별들이 박혀있는 또 하나의 우주, 코스모스 ⓒ 한성수

길 옆에 그저 아무렇게나 핀 코스모스를 주는 것에 속상해 할 법도 한데, 그녀는 코스모스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어요. 아마 꽃을 건네주는 그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하얀 코스모스네. 참 예쁘네요."
"그래요. '코스모스'는 우주랍니다. 이 코스모스에도 우주가 들어 있어요. 꽃잎 사이를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테두리에 별들이 보이시죠? 다시 그 안을 보면 또 다른 모양의 수많은 별들이 들어 있어요."

그녀는 배시시 웃습니다. 우리가 만난 후 겪었던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코스모스 한 송이로 털어내고 있나 봅니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질서, 조화'를 뜻하지요. 마치 우주가 조화와 질서가 있어야 유지되는 것처럼 코스모스 속에도 완벽한 조화와 질서가 있어요."


그녀는 이제 코스모스 속의 별을 헤고 있습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환하게 밝아집니다.

"새롭게 보고 있어요. 코스모스를, 그리고 성수씨를…."
"바닷물을 한 컵 떠서 그 성분을 분석해 보면 그 한 컵의 물 속에 큰 바닷물의 모든 성분을 포함하고 있듯이 그대도, 나도 또 다른 하나의 작은 우주랍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같은 우주를 서로의 마음속에 담아 둡시다. 나는 지금 그대에게 하나뿐인 나의 우주를 드리고 있어요."


어제 점심식사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나는 동료들과 직장 주위의 주택가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빨간 장미, 노란 장미, 석류, 나팔꽃, 민들레 등 참 많은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집을 짓지 않는 빈 땅에 뒤늦게 고구마를 심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바쁩니다. 그녀의 등허리에도 6월의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연신 수건으로 땀을 훔칩니다.

a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창원 사파동 고산로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창원 사파동 고산로 ⓒ 한성수

'고산로(옛 고산마을이 있던 자리)'를 막 지나는데, 알록달록한 꽃동산이 보입니다. 연휴로 며칠 동안 찾지 않는 사이에 코스모스가 활짝 핀 것입니다. 동장이 세운 '어머니동산'이란 안내 푯말에는 빈 택지에다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 꽃동산을 조성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코스모스 옆에는 해바라기도 쑥 목을 빼어들었습니다.

a 어머니 공원 푯말, 동장님! 사실 봄 유채꽃은 별로 였어요.

어머니 공원 푯말, 동장님! 사실 봄 유채꽃은 별로 였어요. ⓒ 한성수

6월 초순인데도 지금 날씨는 봄을 지나 이미 여름입니다. 그런데 저 코스모스는 이미 가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만히 코스모스를 들여다 봅니다. 선홍색과 분홍색 코스모스에서 가벼운 흥분을 느끼고, 하얀색 꽃잎과 노란 꽃술에 경탄합니다. 가벼운 바람이 불 때마다 꿀벌과 나비가 놀라 날아오릅니다. 그런데 아뿔싸! 카메라가 없습니다.

a 꽃이 피면 벌, 나비가 날아드는 법

꽃이 피면 벌, 나비가 날아드는 법 ⓒ 한성수

오늘 아침, 아내는 시골에 모내기를 하러 일찍 떠납니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 빨리 집을 나섰습니다. 도청과 경찰청을 지나 첫 신호대에서 좌회전을 하면 진해(안민터널)로 가는 길입니다. 왼쪽으로 접어들면 왼쪽에는 테니스장이 있고, 오른쪽 주택가로 들어서면 고산로의 코스모스동산을 만나게 됩니다.

아내에게 코스모스를 바친 후 1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참 많이도 다투었지요. 그러나 그 부딪힘은 상처가 되기보다 잔잔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의 마음 속에는 공동의 우주가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작은 일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낍니다.

a 코스모스는 가을까지 쭈욱 계속됩니다.

코스모스는 가을까지 쭈욱 계속됩니다. ⓒ 한성수


'당신! 돈이 좀 없으면 어떻습니까? 좁은 아파트면 또 어떻습니까? 우리는 아직 건강하고, 우리를 닮은 소중한 딸과 아들이 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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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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