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빨간불에서는 멈춰야 돼!"

등록 2005.06.09 20:54수정 2005.06.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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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동차 대신 어제 산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마 시골에 가거나 먼 길을 가지 않는 이상 자동차를 탈 생각이 없으니 어쩌면 오늘이 내 삶에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줄 새로운 날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평범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저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날이니 오늘 자전거 타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습니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생전 처음 보는 저의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온 식구가 총 출동해 저를 마중해 주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딸아이가 쪼르르 달려가 눌러 준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오늘은 아파트 입구까지 모두 나와 저를 배웅해 줍니다.

자전거 사고 난 후 첫 번째 행복이 나를 찾아 온 순간입니다. 그렇게 밖에까지 나와 주니까 기분이 좋더군요.

지각할 것 같은데, 딸은 한번만 태워달라고

제가 아파트 복도에서도 좀 타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타보고 하니까 우리 딸 세린이, 아빠만 혼자 탄다면서 자꾸만 태워달라고 조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니 아무래도 자동차를 타고 출근할 때보다는 늦을 것 같아 조금 일찍은 나왔지만 그래도 한 번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 적이 없어 늦을까봐 불안한데, 거의 울먹이다시피 자전거를 태워달라고 조르니 할 수 없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한 번 태워줬습니다.


a 디지털카메라를 빌려 쓰는 관계로 아침에는 사진을 찍지 못해 저녁에 태워주면서 찍을려고 했는데, 퇴근해서 보니까 이렇게 잠을 자고 있네요.

디지털카메라를 빌려 쓰는 관계로 아침에는 사진을 찍지 못해 저녁에 태워주면서 찍을려고 했는데, 퇴근해서 보니까 이렇게 잠을 자고 있네요. ⓒ 장희용

재미있다며 연신 웃어대는 딸의 모습을 보니,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들떠있는 저는 더욱 더 신이 납니다. 아내도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니까 신기하게 보이는지 싱글벙글 웃고 있네요. 두 살 된 둘째 놈도 타고 싶은지 자전거를 가르치며 ‘우우’하네요.

“자, 세린아 이제 그만 내려요. 아빠 출근해야지.”
“이잉~ 한번만.”
“안 돼 세린아. 아빠 늦는단 말야. 이 따 퇴근하고 와서 많이 태워줄게. 알았지?”
“이잉~ 한번만, 한번만.”
“알았어. 그럼 진짜 딱 한번만이다.”


딱 한번만이라는 딸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 답례로 평소에는 받을 수 없는 찐한 뽀뽀세례를 받은 후 막 페달에 발을 올려놓습니다. 아내가 시장바구니 속에 들어 있는 도시락 가방을 다시 한 번 똑바로 세워놓습니다. 자전거가 털털거려 혹시나 떨어질까봐 그런가 봅니다. 아내가 도시락을 만지면서 회사에 도착하면 꼭 전화하라고 하네요. 걱정된다면서. 내가 무슨 애냐고 말하긴 했지만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았다면서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우리 딸 특유의 큰 목소리로(우리 딸 목청 무지 큽니다.) 제 뒤에서 소리칩니다.

“아빠, 빨간불에서는 멈춰야 돼. 파란불에 건너. 알았지!”

순간 저는 뒤를 돌아다봅니다. 아빠와 엄마가 딸의 안전을 위해 시시때때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 준 말인데, 거꾸로 다섯 살 딸한테 그 말을 들으니 귀엽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갑자기 무슨 생각에서 저러나 싶었는데, 아내가 제 궁금증을 풀어주네요.

“그건가 보다. 자기 회사 가고 가끔씩 세린이 세발자전거 타고 낮에 시장 갈 때 신호등 앞에서 내가 몇 번 그런 말 해 준 적 있었거든. 아빠도 자전거 타고 가니까 같은 자전거라고 그 생각이 났나봐.”

아내의 말을 듣고 나니 더욱 더 요놈이 귀여워져서 페달에 올려놓았던 발을 다시 내려 딸아이한테 가서 꼭 안아봅니다.

“알았어. 장세린. 세린이도 빨간불에서는 꼭 멈춰야 돼.”
“나 그렇게 하는데. 빨간불에서는 멈춰요. 그쵸 엄마.”

웃음으로 화답해 주는 엄마를 보며 쪼르르 엄마 곁으로 다가가 엄마 손을 잡습니다.

자, 이제 출발이다

자, 이제 가야겠습니다. 너무 시간을 지체했네요. 아파트 입구를 나와 이제부터 도로입니다. 초보 운전자라 감히 길 좋은 도로로 가지 못하고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로 올라왔습니다. 원래 이 길로 가야 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길이 안 좋으니 저절로 차도에 대한 미련이 생깁니다. 툴툴거려 자전거가 혹시나 어디 다칠까봐 하는 아이 같은 걱정도 생기구요. 옛날에 꼬까신 사면 혹여나 흙 묻을까봐 조심하던 생각이 문득 나네요.

“앗! 어떡하지.”

첫 번째 사고입니다. 바지 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이 페달을 밟다 보니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와 ‘툭’하고 땅에 떨어집니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그 장면을 쳐다보는 이 없건만 괜히 얼굴 빨개져 얼른 가 주워옵니다.

조금 지나니 자전거 도로 같지 않은 자전거 도로가 나옵니다. 그래도 보도블록 인도보다는 한결 수월하네요. 그런데, 약간의 고민이 생깁니다. 바로 신호등입니다. 차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 나닐 때 신호등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좀 이상한 게 자전거를 타니까 왠지 신호 무시하고 쌩하니 건너가면 될 것 같은 유혹이 생기네요. 나만 그런가?

하지만 빨간불에는 멈추라는 우리 딸의 귀여운 목소리가 아직 귀에 생생해 유혹을 뿌리치고 녹색신호등이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머피의 법칙인지, 아니면 초보 운전자 시험에 들게 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 딸 더 생각하라는 건지, 자꾸만 빨간 신호등에 걸리네요. 그런 거 있잖아요. 차를 타고 가다가도 한 번 빨간불에 걸리기 시작하면 계속 신호등마다 빨간불에 걸리는 거. 꼭 그런 현상이 즐거운 제 첫 자전거 출근길을 자꾸만 멈추게 합니다.

a 이 길 멋있죠! 아침에 올 때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퇴근길에 잠시 차에서 내려 찍었습니다. 자전거 출근길에서 발견한 행복 중 하나입니다.

이 길 멋있죠! 아침에 올 때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퇴근길에 잠시 차에서 내려 찍었습니다. 자전거 출근길에서 발견한 행복 중 하나입니다. ⓒ 장희용

회사에 거의 다 와 갑니다. 시계를 봅니다. 이크, 22분이네요. 8시 30분까지 가야 하는데 자칫하면 지각할 것 같습니다. 열심히 페달을 밟습니다. 아, 그런데 이놈의 자전거가 20인치(7단)라 바퀴가 얼마나 작은지 페달을 밟은 발의 회전속도는 무지하게 빠른 데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왜 이렇게 더운 거죠? 하긴 요즘 날씨가 더운 편이네요.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지네요. 그나저나 벌써부터 이렇게 더운데 한 여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되네요.

차들에 대한 원망, 하지만 8년 동안 나도 공범자였다

“앗! 어떡하지?”

두 번째 사고입니다. 아니 사고라기보다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저는 좌회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1차선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차가 계속해서 오고 있으니 인도로 가고 있는 저로서는 1차선으로 들어갈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계속 뒤를 돌아다 보았지만 아침 출근길이라 그런지 차가 계속해서 오네요. 차가 조금 멀리서 온다 싶어 잽싸게 1차선으로 들어갈려는 시도를 2-3번 해보았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어휴, 쫌 양보 좀 하지. 뻔히 자전거 보이면서도, 뭐가 바쁘다고 저렇게 빨리 달리는 거여. 좀 천천히 좀 다니지.”

그 당시에는 내가 1차선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차들의 만행에 대해 무심코 그런 말이 나왔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지난 8년 동안 얼마나 많은 보행자와 자전거를 타신 분들이 저에게 저와 똑같은 말을 했을지.

할 수 없이 제자리에서 한참을 빙빙 돌다 신호에 차들이 멈췄을 때 겨우 통과해 회사에 갈 수 있었습니다.

a 저 앞 신호등에서 좌회전해야 회사로 갈 수 있는데, 차들이 많아서 결국 1차선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아내한테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신호등 앞에서 기다렸다 자전거 끌고 걸어가지 그랬느냐’고 하네요. 듣고 보니 그 방법이 있었네요.

저 앞 신호등에서 좌회전해야 회사로 갈 수 있는데, 차들이 많아서 결국 1차선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아내한테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신호등 앞에서 기다렸다 자전거 끌고 걸어가지 그랬느냐’고 하네요. 듣고 보니 그 방법이 있었네요. ⓒ 장희용


자전거를 주차(?)해 놓고 회사 엘리베이터로 뛰어가면서 아내한테 전화를 합니다.

“나 회사 다 왔어!”
“어때?”
“응, 기분은 좋은데 무지하게 덥네.”
“몇 분 걸렸어? 늦겠다.”
“응, 그러니까 아까 출발할 때가 8시 4분, 지금이 28분이니까 정확이 24분 걸렸네.”
“엘리베이터 문 열린다. 끊어.”

아내에게 무사히 도착했다는 짧은 보고를 하고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와 회사 출근 카드를 찍고 시간을 봅니다. 8시 29분. 아슬아슬하게 지각은 면했습니다. 지각 3번이면 한 번 결근으로 처리되는데.

“휴우~”

이제야 긴 숨을 들이쉽니다. 그런데 아차차, 시장바구니에서 도시락을 안 가지고 왔네요. 급해서 그랬는지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할 수 없이 오늘 고생한 다리가 한 번 더 수고를 해 주었습니다.

접이식 자전거 접지 못해 통째로 차 뒷좌석에

퇴근길에는 불가피하게 차를 타고 왔습니다. 어제 회사 남직원들 회식이 있어서 차를 회사에 놓고 갔거든요.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명이 접이식 자전거인데 도통 어떻게 접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길치에다가 기계치이거든요. 사실 이 자전거도 어제 낮에 택배가 온 후 아내가 조립해 준 겁니다. 아침에 아내가 접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기에 알량한 자존심에 나도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나왔는데……. 그나저나 왜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데 아무리해도 안 되네요. 혹시 제품에 문제가 있나? 10여 분간 실랑이 하다가 결국 접지 못해 차 뒤 자석에 통째로 싣고 왔습니다.

a 제가 생각해도 하도 어이가 없어서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아침에 아내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하도 어이가 없어서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아침에 아내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습니다. ⓒ 장희용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내한테 오늘 출근길과 퇴근길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신나게 풀어 놓았습니다. 아내의 재미없다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저는 혼자 일장연설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저의 첫 자전거 타기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쓰고나니 굉장히 분량이 많네요. 자전거 처음 타보는 설레임이 컸나 봅니다. 그나저나 자전거 타고 출근하니까 기분은 좋네요.

덧붙이는 글 쓰고나니 굉장히 분량이 많네요. 자전거 처음 타보는 설레임이 컸나 봅니다. 그나저나 자전거 타고 출근하니까 기분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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