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 위로 떨어진 것은 고양이였다?

사이먼 본드의 <죽은 고양이 사용 설명서>

등록 2005.06.10 10:31수정 2005.06.1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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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토끼>를 기억하는가? 우리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했던 자살토끼. 그 뒤를 이어 <돌아온 자살토끼>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젠 토끼가 아닌 고양이로 웃음을 선사해주는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사이먼 본드의 <죽은 고양이의 사용 설명서>이다. 어떤 이야기인지 제목이 심상치 않다. 대충 짐작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역시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번에 정말 죽었다.


a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 ⓒ 거름

<자살토끼>에서는 온갖 방법을 통해 자살을 시도했다면 이 책은 죽어버린 고양이를 온갖 방법으로 이용하는 것들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지고 있다. 죽은 고양이를 이용해 헤드폰으로 이용하는 그림을 표지로 등장시켰으며 옆에 '죽은 고양이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이미 표지에서 충분히 저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또 하나의 문제작 카툰 에세이에는 죽은 고양이가 자살을 한 건지, 타살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이후의 용도는 기상천외하다. 양탄자, 주걱, 빗자루, 펜, 소파, 반짇고리, 톱, 칫솔 등 안 되는 게 없으며, 테니스 라켓, 야구방망이, 권투 글러브, 역기 등으로도 쓰인다. 더 나아가 고양이 몸의 특징을 이용한 온갖 쓰임새들이 페이지 내내 펼쳐진다.

특히 무엇보다 책의 백미는 중반부부터 시작되는 역사 속 명장면 패러디에 있다. 패러디 자체가 워낙 자칫 잘못하면 민숭민숭하게 되는데, 저자 사이먼 본드는 상당한 능력을 지닌 듯하다.

돌멩이가 바닥나자 죽은 고양이를 사용하여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다윗, 기원전 44년 브루투스는 칼 대신 죽은 고양이로 카이사르를 찌르고, 카이사르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다. "털복숭이 너마저?"

나무 밑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긴 뉴턴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은 고양이. 인류사, 성경, 신화의 잘 알려진 장면들에 절묘하게 배치된 죽은 고양이를 만나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 사이먼 본드는 영국의 유명 카툰 작가로, 이와 같은 형식의 코믹 카툰을 처음 그려내고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200여컷의 카툰들이 원작 그대로 수록됐으며, 저자의 기발한 재치가 사정없이 상식선을 허물어뜨린다. 혐오감과 잔인함을 느끼기 이전에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과 탄성을 통해 진정한 '웃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더욱이 우리는 말장난과 누군가를 폄하하는 코미디에 지쳐버린 지 오래이다. 텔레비전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간혹 네티즌들의 분노가 표출되기도 한다. 그만큼 웃음 안에 공허함이 묻어난다. 그래서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함께 유발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든다. 이 책은 그런 웃음 속에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화 평론가 박인하씨는 이 책을 이렇게 평했다.

"명랑한 웃음이 사라지고 자학적 웃음만이 우리를 공격할 때 그 공격으로 마음이 허해진 당신, 어디에선가 위로를 받고 싶은 바로 당신, 상처를 덧내지 않고 치유 받기를 원하는 당신. 그런 당신에게 단순하고 명쾌한 만화 <죽은 고양이 사용 설명서>를 권한다."

<자살 토끼>

▲ <자살토끼>
ⓒ거름
이 책의 원제는 '자살하는 토끼에 관한 책'. 표지는 스위치가 'ON'으로 되어 있는 토스터 안에 토끼가 들어가 있는 그림이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작은 털북숭이 토끼"라는 카피 한 줄이 쓰여 있다.

주인공인 자살토끼는 책 속에서 온갖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 병사가 할복하는 순간 병사의 등 뒤에 찰싹 붙어 함께 칼에 찔리는가 하면, 곤히 잠들어 있는 커다란 개의 꼬리를 스테플러 사이에 올려놓고 그 위로 뛰어내리기도 한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죽음을 마주했을 때 마땅히 느끼게 되는 고통이나 공포의 감정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자연현상, 전쟁, 종교, 매스미디어, 역사, 외계인, 스포츠, 영화, 핵실험, 일상생활 등에서 얻은 다양하고 기발한 소재로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살을 시도한 후의 결과가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자가 스스로 다음 장면을 유추하게 함으로써 마치 뒤통수를 치는 듯한 색다른 쾌감을 준다. / 강태성

<돌아온 자살 토끼>

▲ <돌아온 자살토끼>
ⓒ거름
2004년 9월 출간, 화제와 인기를 모았던 <자살토끼> 그 두 번째 이야기. 이번에도 역시 죽지 못해 안달난 토끼의 기상천외한 판토마임(?)이 펼쳐진다.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의 핵폭탄에 올라 앉는가 하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우론의 눈에 후추가루를 뿌리고, <터미네이터>의 히로인 사라 코너로 변장하는 등 시대와 장소,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넘나드는 토끼의 활약상을 만나볼 수 있다.

전기다리미, 전동드릴 등 전편과 동일한 일상의 '흉기'들 또한 여전히 등장한다. 전편의 연장선상에서 좀 더 기발한 자살법을 찾아 애쓰는 토끼의 노력이 안쓰러울 정도.

자살을 미화한다, 의미 없는 그림의 나열일 뿐이다 등의 혹평과 질책도 있지만, 그보다는 죽음을 향한 몸부림으로부터 역으로 삶의 이유와 희망을 읽어낼 수 있다는 평이 좀 더 지지를 얻기도 했다. / 강태성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

사이먼 본드 지음,
거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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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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