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마을에 잔치 열렸네

[현장]"땅도 살고 사람도 살고 하늘도 산다 " 보은군 마로면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

등록 2005.06.13 09:32수정 2007.06.1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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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음력 오월오일 단오날. 늙은 말이 한가롭게 노닌다는 충북 보은군 마로면 한중리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 이곳은 아침부터 서울과 대전에서 찾아오는 손님맞이에 온 동네가 들떠 있다. 반가운 손님을 위해 녹음병풍(綠陰屛風)이 둘러쳐졌고, 수정처럼 맑은 물은 이날따라 더 힘차게 내린다.


백록동 주민들이 며칠 전부터 기다린 귀한 손님들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먹고 사는 소비자들. 친환경농산물유통업체인 '한살림'의 조합원 가족 2백여 명이 단오절을 맞아 이곳을 찾았다. 소비자들은 오염 안 된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준 농민들의 수고에 고마움을 전달하고, 농민들은 정성들여 가꾼 농산물을 사준 소비자들에게 감사함을 나누는 잔치를 벌였다.

백록동은 모두 11가구가 산다. 이곳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 60대 초반의 이장님이다. 젊은이와 아이들이 없다. 자식들은 모두 객지에 나갔고, 젊은이들은 이곳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 울음이 멈춘 지 꽤나 오래됐다. 그러나 이곳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은 늘 생기가 돈다. 짙푸른 산과 들이 오염되지 않아서 그럴까? 아니면 공기가 맑아서 그럴까?

그렇다. 맞다.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은 태고의 자연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인간들의 모습이 역력했다.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 11가구가 생산하는 유기농산물은 계약재배방식으로 모두 한살림에서 매입한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백록동 유기농산물은 시중가격에 비해 30%를 더 받는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

산과 산이 어우러져 만든 계곡사이에 일군 논이 10ha, 밭이 8ha.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는 농산물은 고추, 쌀, 감과 호두, 오미자, 기장과 조 등 잡곡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백록동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오염원이 없기 때문에 마을전체가 유기농 농사를 짓기에 알맞다.


'왜 자식들에게 농약을 먹이는가?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로 이 땅을 온통 오염된 죽음의 땅을 후손들에게 물려 줄 것인가?'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 이철희(67) 회장이 15년 전 유기농 농법을 시작하게 될 무렵에 떠올린 화두다.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 회장 이철희(67세) 씨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 회장 이철희(67세) 씨윤형권
이철희 회장은 경북 봉황에서 태어나 6·25 동란 중 피난살이를 하다 이곳 백록동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때는 이 회장도 생산성을 높이는 농법인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해 농사를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주에 사는 처남에게서 "제초제의 일종인 고엽제가 사람의 피부에 묻기만 해도 장애아가 태어나고 중병이 발생하는데, 왜 제초제를 자식들에게 먹이는 죽음의 농사를 짓느냐?"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유기농법을 시작하게 됐다.

이 회장을 비롯한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 사람들은 벼농사를 지을 때 우렁이를 써서 풀을 제거한다. 처음에 이 회장 홀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때 마을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다고 한다.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 총무를 맡고 있는 윤태후(65)씨는 "남들은 벼를 심어 놓고 쉬고 있을 때, 이 회장 부부만 논으로 밭으로 풀을 매러 다니는 게 안돼 보였다"고 한다.

이런 백록동 마을 사람들이 이 회장의 유기농법에 대해 이해하고 따르기 시작한 것은 유기농산물로 높은 수익을 올려서가 아니다. 사명감 때문이다.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땅을 후손들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록동 유기농 공동체 마을. 이들은 '땅도 살고 사람도 살며 하늘도 사는 농사법'을 알고 있다.

풍물패가 앞장서고 손님들은 뒤따라 마을로 들어서는  길놀이 행사.
풍물패가 앞장서고 손님들은 뒤따라 마을로 들어서는 길놀이 행사.윤형권
삼겹살 구이는 어디를 가든지 맛있다?
삼겹살 구이는 어디를 가든지 맛있다?윤형권
가재를 잡는 윤준희(논산반월초 5학년). 작은 사진은 이곳에서 잡은 가재
가재를 잡는 윤준희(논산반월초 5학년). 작은 사진은 이곳에서 잡은 가재윤형권
널뛰는 부부
널뛰는 부부윤형권
창포미인 박재인(7세. 대전시 전민동)
창포미인 박재인(7세. 대전시 전민동)윤형권
천연염색
천연염색윤형권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지게지고 달리기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지게지고 달리기윤형권
강강술래로 석별의 정을 달래고
강강술래로 석별의 정을 달래고윤형권
이철희 회장네 논에서 자라고 있는 우렁이
이철희 회장네 논에서 자라고 있는 우렁이윤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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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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