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90

남한산성 - 핏빛 돼지

등록 2005.06.13 17:05수정 2005.07.0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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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어찌 일이 있겠는가!"

인조는 뜨거운 눈물을 펑펑 흘리며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맺지 못했다. 인조의 앞에는 서른 하나의 윤집과 스물여덟의 오달제, 두 젊은 신하가 엎드려 있었다.


"신들이 죽는 것이야 애석할 것이 없지만, 단지 전하께서 성에서 나가시게 된 것을 망극하게 여깁니다. 신하된 자들이 이런 때에 죽지 않고 장차 어느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오달제의 말에 인조는 침통한 표정으로 윤집과 오달제의 식솔들에 대해 물었다. 윤집이 목이 메어 말했다.

"신은 아들 셋이 있사온데 전란을 맞아 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

오달제도 충혈 된 눈으로 말했다.

"신은 70세 된 노모가 있고 임신 중인 아이가 있을 뿐입니다."


인조는 윤집과 오달제에게 술을 내리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윤집과 오달제는 척화신으로서 청의 진영에 보내지는 것이었지만 젊으면서도 벼슬이 높지 않은 그들이 보내지게 된 것에는 다른 속사정이 있었다. 바로 한식경 전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본다면 이들의 운명은 결국 조정 대신들의 세치 혀에 달렸던 셈이었다.

"어찌 되었건 대신을 보내야 하오. 누가 가시겠소?"


영의정 김류의 말에 신하들은 모두 묵묵부답 말을 하지 못했다.

"응당 화친을 배격한 신하를 보내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청음(김상헌)은 자진하려다가 누워있고 이조참판 정온 또한 칼로 자해하여 누워있으니 이들은 논할 수 없을 것이오."

홍서봉의 말에 김류가 미리 생각해 놓은 것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그들은 계속 척화를 했으니 마땅히 내보내야 하오. 우선 그 당시의 삼사에 있던 대신들을 모두 내보내고 더불어 척화를 주장한 이들 중 자진해서 나서는 이들을 보낼 것이외다."

한때 김류와 뜻을 하던 김상헌이었지만 그가 척화를 하다가 화친으로 돌아선 김류를 꾸짖었기에 감정이 상헌 터였다. 옆에서 듣던 최명길이 낮지만 좌중의 이목을 끄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청음은 아니되오."

애시 당초 화친을 주장하며 김상헌과 사사건건 충돌했던 최명길이었기에 김류는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최명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김류의 체통에 노골적으로 김상헌을 보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김류와 뜻을 같이한 대신들이 김상헌과 정온의 이름을 구태여 넣은 뒤, 줄곧 척화상소를 올린 교리 윤집과, 김상헌의 사람인 오달제 등 열 명의 사람과, 대사간으로서 척화를 주장하다가 평양서윤으로 가 방비를 맡은 홍익한을 묶어 보내기로 하였다. 이때 대사간 박황이 이 소식을 듣고 김류에게로 달려가 간곡히 말했다.

"적진에 두어사람만 보내어도 책임을 면할 수 있을 터인데 어찌 대감께서 이러시오? 홍익한은 후에 따로 묶어 보내면 될 것이고 다른 이들은 추려내면 아니 되겠소이까?"

이리하여 윤집과 김상헌이 묶여 가기로 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오달제가 달려와 자기가 대신 가겠노라 자청했다.

"이미 나이가 들고 지금은 식음까지 전폐하신 분을 어찌 모질게 그러신단 말이오? 굳이 사람이 필요하다면 날 보내시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온 두 사람을 보고 인조는 끊임없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식솔들을 돌보아 줄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인조의 눈물은 청의 황제 홍타이지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깊숙이 삼켜지게 되었다. 그 뒤로는 몇몇 대신들이 굶주림 끝에 맛보는 음식을 먹으며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고 또 어떤 이들은 정명수와 용골대를 몰래 불러내어 포로가 된 식솔들을 빼내어 달라는 청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 첩과 딸을 빼내어 주면 천금을 주겠네."

김류가 대뜸 이런 말을 하자 다른 대신들은 속으로 그를 욕했다. 그도 모자라 김류는 청의 관습대로 정명수를 안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이제 청과 조선은 황제폐하의 말씀대로 한 집안이 되었네. 내 청을 꼭 들어주게나."

김류의 태도에 오히려 정명수가 당혹해할 지경이었다. 김류는 정명수를 안은 채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그 천금이 사람의 몸값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가? 꼭 좀 부탁함세."

눈치 빠른 정명수는 그것이 뭘 뜻하는지 알고서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자리를 빠져 나왔다.

덧붙이는 글 | 내일부터 2부가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내일부터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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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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