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박사 소식에 신문 보는 재미 쏠쏠"

[르포] '줄기세포 정상회의'서 발표하던 날, 황우석 박사 고향 부여군 은산면 주민들 표정

등록 2005.06.13 19:34수정 2005.06.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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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줄기세포 연구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황우석(53) 서울대 석좌교수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줄기세포 정상회의’에서 자신의 연구 성과와 줄기세포 연구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던 지난 11일 오후.

그의 고향인 충남 부여군 은산면의 모습은 여느 농촌 마을의 주말 오후 풍경과 그리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 만난 주민들의 황우석 박사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은 다른 지역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주민 일동 이름으로 걸린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 황우석 박사님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그가 뛰어놀던 홍산2리 주민들이 붙여놓은 ‘60억 인류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며 한국을 빛내고 세계를 감동시킨 황우석 박사’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이런 현수막은 이곳으로부터 6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나들목을 나오는 순간부터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슈퍼마켓 아줌마… “은산 사람들 이렇게 좋아하는 것 처음”

황우석 교수 이야기에 밝게 웃는 김용하 씨
황우석 교수 이야기에 밝게 웃는 김용하 씨김범태
마을을 지나는 주민들에게 황우석 박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만나본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은산면 가중리에 사는 김용하(45)씨는 “몇 해 전 축협에서 세미나를 진행할 때는 그저 평범한 교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황 박사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고 웃어보였다.

황 박사의 초등학교 1년 선배인 심춘배(54)씨는 “어려서 함께 마을 하천에서 물놀이도 하고, 수박 서리도 하면서 친구로 지냈다”고 추억하며 “요즘 우리 주변 최고의 화두는 단연 우석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곳에서 3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희(55)씨는 “은산 주민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그런 분이 이 고장에서 태어났다는 자체만으로 마을이 흥분하고 들뜬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인근 마을에 산다는 30대의 한 주부는 “요즘은 황 박사 소식에 신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면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곳이면 그의 업적으로 이야기하기 바쁘다. 이런 시골에서 그런 분이 출생했다는 것 자체가 반갑고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황 박사의 초등학교 동창 유동옥(52)씨는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착하고, 순박한 아이였다”며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반장을 놓치지 않았을 만큼 공부도 잘했지만, 특히 달리기를 잘했던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인 양행자(52)씨도 “한 번은 어른들에게 엉덩이에 피부병이 나도록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니 이처럼 훌륭한 일을 해냈지 않겠느냐”고 거들었다.

유씨는 “특히 바쁜 일정에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동창회에 참석할 정도로 친구들을 잘 챙기는 친구”라며 “작년 여름, 대전에서 있었던 모임에도 자리를 같이 해 술잔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할머니들도 황우석 박사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다. 그가 어렸을 때 이웃집에 살았다는 현용순(79)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똑똑했다”면서 “그런 위대한 일을 해낸 분이 우리 마을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황 교수의 모교인 은산초등학교와 동네 아이들
황 교수의 모교인 은산초등학교와 동네 아이들김범태
잠시 발길을 돌려 황우석 박사가 졸업한 은산초등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얼마전 학교가 이전하면서 지금은 쓸쓸히 터만 남아 폐교로 서 있는 학교 운동장에는 동네 꼬마녀석들이 재잘거리며 놀고 있었다.

“친구네 집이 황우석 아저씨네 바로 아랫집이래요.”
“황우석 박사님, 어제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거 봤어요.”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예전에 우리 학교에도 왔었대요.”

황우석 박사를 아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이 속사포처럼 답을 쏟아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께 아저씨가 어떤 일을 한 분인지 말씀을 들었지만,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며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곧잘 “저희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아저씨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라며 입을 모았다.

고향 주민들 “된 사람이 든 사람이 되었다”며 칭찬 일색

이곳으로부터 약 3Km 가량 떨어진 곳이 은산면 홍산2리. 그리 넓지 않은 농로를 따라 다다른 20여 가구의 농가들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살고 있는 곳. 칠갑산 자락의 ‘계룡당’이라 불리우는 마을이다.

동네아이들이 숨을 헐떡이며 산자락에서 뛰어놀고, 텃밭에서는 검게 그을린 노인이 서산에 해가 걸린 어슴푸레 한 시간까지 고추에 농약을 주며 땀을 닦는 모습이 언뜻 보면 마치 <전원일기>의 양촌리처럼 정겨운 표정이다.

황우석 교수의 생가 전경
황우석 교수의 생가 전경김범태
예전부터 소를 많이 키웠다는 이 마을은 몇몇 가구들이 포도나 표고버섯 등을 재배하면서 살고 있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농가가 소를 사육하고 있다. 그리 높지 않은 두지봉 기슭에 자리 잡은 이 마을 거의 끝집이 황 박사의 생가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녹슨 대문 틈 사이로 낡은 옛 가옥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문 옆 돌무덤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붉고 노랗게 피어 있었다.

160여 평의 터에 방 두 칸과 재래식 부엌, 마루 등으로 짜여진 10평 남짓한 슬레이트 지붕의 이 집에서 황 교수는 태어나 중학교 진학 전까지 살았다. 그 건너편에는 황 교수의 둘째형이 살던 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황 박사가 세계적 인물로 부상하자 이 집도 덩달아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마을의 한 노인은 “어떤 날은 50여명의 ‘관광객’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와 실물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황동주(70) 할아버지는 “지금도 동네 어른들을 보면 지나던 차에서 내려 허리를 숙여 인사할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라며 “된 사람이 든 사람이 되었다”고 칭찬했다.

할아버지는 황 박사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을 모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노인은 “어머니가 매우 강직하시고 올곧은 분으로, 6남매를 모두 똑바르고 훌륭하게 잘 키웠다”면서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착실하고 흠잡을데 없이 착했다”고 전했다.

황 교수는 이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 진학때까지 살았다
황 교수는 이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 진학때까지 살았다김범태
저녁 시간, 부여 읍내로 나와 들른 식당에서도 황 박사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들려왔다. 하지만, 이 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 박사의 업적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전문 분야라서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삶을 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만큼은 남녀노소 누구나가 알고 있었다.

또 종교계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반대 표명에 대해서는 “윤리나 종교의 차원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금도 질병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연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결과를 인류가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문제의 초점 같다”며 “그것이 세계에 보내는 황 박사의 메시지이자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정리하기도 했다.

순박한 농촌마을 사람들은 어느덧 황 박사의 업적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의 연구 결과로 파생될 문제들에 대해서도 함께 걱정하며 발전을 기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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