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54개국 7만km 달려 한국에 왔습니다"

캐나다인 르네씨의 애틋한 자전거 사랑

등록 2005.06.13 23:10수정 2005.06.14 10:1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르네 월릿(Rene Ouellet)이란 아저씨를 처음 만난 것은 한 인터넷 자전거 동호회의 게시판을 통해서였습니다.


경기도 용인 죽전에서 양지방향의 17번 국도를 자전거에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주행 중인 한 서양 아저씨의 사진과 함께 그 아저씨와 손짓발짓 해가면서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던 누리꾼의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a 용인인근 17번 국도의 서양인을 발견하다.

용인인근 17번 국도의 서양인을 발견하다. ⓒ 이설희

캐나다 출신, 55세, 2000년 8월 자전거를 끌고 캐나다를 떠나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중국, 일본을 거쳐 부산에서부터 서울로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근 5년 동안 짐까지 합해 약 70kg의 자전거를 끌고 하루 80~100km 정도씩 7만km를 달리고 달려, 세계 54개국을 거쳐서 이제 한국 땅을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a <더 카트만두 포스트>에 실린 기사

<더 카트만두 포스트>에 실린 기사 ⓒ 이설희

'아, 이 분을 6월 18일 개최될 50회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에 초청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지나갔습니다.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이란 매월 셋째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종로를 한 바퀴 휘감아 여의도까지 떼를 지어 '페달질'하는 자전거들의 집단주행을 말합니다.

2001년 4월 젊은이 8명이 '자전거 녹색교통의 대중화'를 주창하면서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월 1회씩 5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참여인원이 100명을 넘었습니다. 6월 18일로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 50회를 맞이하면서 '자전거 1천대 총동원'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치르려 하고 있습니다.


a 2005년 5월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

2005년 5월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 ⓒ 이설희

이 '떼거리 잔차질'에 이 캐나다인 영웅을 초청하여 함께 종로를 달리면 얼마나 신날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이 분의 연락처를 수소문했습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틀만에 이 분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이란 때때로 참 요술같은 결과를 낳죠. 혼자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것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누리꾼들이 결국 찾아내다니.

짧은 영어로 얼기설기 통화를 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을 어설프게 전달했지요.


"르네씨, 당신의 영웅적인 세계여행 소식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접하고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많은 한국의 자전거인들이 르네씨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6월18일에 도심에서 대규모 자전거 행진을 준비 중입니다. 그 행사에 르네씨가 참여하신다면 모든 자전거인들이 환호할 것입니다."

르네씨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르네씨는 그 다음 여행 일정을 위해 알래스카로 출국하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6월 18일 행사는 참여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아쉽군요. 그렇다면 6월 11일 토요일 저녁에 한국의 자전거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짧은 거리지만 한강변을 같이 달리는 모임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당신에게 Korean-Chinese fusion sytle hot sauce noodle(짬뽕)과 Korean rice wine(막걸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르네씨가 흔쾌히 승락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르네씨와 번개모임을 했습니다. 이 번개모임 소식을 발바리, 스트라이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와일드바이크, 리컴번트, 바이크 & 피플 등 몇몇 동호회에 게시하여 알렸습니다.

"5년째 자전거 세계여행 중인 캐나다인 르네 월릿씨가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55세의 자전거 영웅을 환대하고, 국적을 뛰어넘는 자전거인들의 우의를 위해 서강대교 남단으로 모여주세요. 함께 이야기하고, 자전거를 타고 그리고 짬뽕과 막걸리를 대접합시다. 만국의 자전거인이여, 단결하자!"

자전거 누리꾼들은 열화와 같은 반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 이런 분이 계시다니. 자전거에 짐을 주렁주렁 달고 세계일주라. 정말 자전거의 로망이 아닐까요?" (얼그레이님)
"비가 와도 나가야 할듯. 오~ 대단하신 분입니다." (천사님)
"오옷. 멋져멋져. 정말 멋진 분이시네요. 거기다 저 나이에 저런 체력을. 부럽다. 나도 열심히 운동해야쥐. 빨리 살 빼자. 살~~~~~ " (날벼락님)

등등의 댓글들이 이 번개모임이 성황리에 치러질 것임을 예고해 주었지요.

마침내 지난 11일 토요일 오후 5시 르네씨와 약 35명의 한국 자전거 애호인들이 서강대교 밑에서 만났습니다.

a 르네씨, 싸인 해 주세요.

르네씨, 싸인 해 주세요. ⓒ 이설희

모두 박수로 르네씨를 환영했고 같이 사진도 찍고 악수도 나누었습니다. 실제 대면하여 보니 르네씨는 대단히 인상좋고, 마음씨가 푸근한 분이었습니다.

a 5년 동안의 페달질로 단련된 르네씨의 몸매

5년 동안의 페달질로 단련된 르네씨의 몸매 ⓒ 이설희

영어를 아주 잘 하시는 스트라이다 동호회의 '세모'님이 자발적으로 통역을 하면서 즉석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a Nice to meet you !  Mr. Rene

Nice to meet you ! Mr. Rene ⓒ 이설희

- 인사 한 말씀, 부탁합니다.
"5년 전에 캐나다의 집을 떠나 전세계 54개국 7만km를 달려 이제 한국 서울에 계신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니 아주 기쁩니다. 더구나 여러분들은 한국에서 자전거 보급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라 들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한국 부산으로 건너와 4일만에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제 비행기로 알래스카로 건너가 다시 캐나다를 횡단하는 약 2만km의 여정이 남았습니다. 기쁜 소식을 하나 알려드립니다. 원래는 다음 주에 알래스카로 출국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일정이 연기되었습니다. 6월 18일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이라고 하는 여러분들의 자전거 행진 행사에 참여하여 함께 자전거를 타겠습니다."(일동 "와"하고 박수)

- 이런 대단한 모험을 계획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마케팅 업무에 종사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2년 전쯤부터 더 늙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했습니다."

a 세계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설희

-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고자 하는 한국 젊은이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하하하. 자전거 세계여행은 보람도 있고,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단히 고생스럽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습니다. 육체도 건강해야 하고, 정신도 강인해야 합니다. 평소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담배는 자전거여행에 해롭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군요."

- 여행이 끝나면 뭘 하실 건가요?
"스무살 된 아들이 무척 보고 싶습니다. 아들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여행의 경험을 담은 책을 쓰고 싶어요. 자전거에 관한 모든 것도 정리해보고 싶고요. CD로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언제 그걸 끝낼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 한국음식은 잘 맞던가요?
"맛있긴 한데 저한테는 너무 맵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나한테는 입안이 다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오늘 저를 부르신 분께서 짬뽕을 대접하겠다고 하셨는데 제발 메뉴를 바꿔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의 자전거 문화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일본과 비교하여 말씀드리지요. 일본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자전거교통이 한국보다 많이 발전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자전거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만 아직 자전거를 위한 도로여건이 일본만큼은 좋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친절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제가 지나가면 힐끗 쳐다보고 말지만 한국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Hi'하고 말을 걸려고 합니다. 그 점이 좋습니다."

a 단체 기념 촬영

단체 기념 촬영 ⓒ 이설희

르네씨에게 여러 궁금한 점이 많은 듯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르네씨에게 질문공세를 계속 퍼붓는 바람에 다음 일정인 '한강 라이딩'이 늦어졌습니다.

a 르네씨와 함께한 한강변 라이딩

르네씨와 함께한 한강변 라이딩 ⓒ 이설희

곧 다같이 기념촬영을 하고, 서강대교에서부터 가양대교까지 짧고 느린 자전거 왕복 라이딩을 하였습니다.

a 가양대교 굴다리에서 다시 여의도로

가양대교 굴다리에서 다시 여의도로 ⓒ 이설희

다시 서강대교 아래서 중국음식을 시켰는데 음식배달이 근 1시간 가까이 걸리는 바람에 슬슬 밤이 되면서 으슬으슬 추워지고 배는 고파와 혼났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음식이 배달되자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잔디밭에 둘러앉아 맛나게 자장면과 짬뽕 그리고 볶음밥을 비웠습니다. "매운 음식이 두렵다"는 르네씨에겐 정상을 참작하여 '짬뽕' 대신 '볶음밥'을 대접했습니다. 막걸리도 꽤 잘 드시더군요.

식사가 끝나고 과자를 나눠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 르네씨와 18일 행사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모두 헤어졌습니다.

르네 월릿씨는 현재 일산의 어느 자전거 애호가의 댁에서 머무르고 있으며 24일 알래스카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국내 자전거애호가와 주중에 서울 인근에서 산행 라이딩을 하고 싶어합니다. 혹 뜻있는 분들은 연락하셔서 같이 가셔도 좋겠습니다. 르네씨의 이메일은 'reneouellet@yahoo.ca'입니다.

덧붙이는 글 | 6월18일 2시30분부터 광화문공원에서는 자전거 녹색교통의 대중화를 위한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행사가 열립니다. 이 행사는 뜻있는 자전거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준비하고 있으며 르네 월릿씨와의 간담회, 발명가 최진만님의 사지구동형 자전거 시승회 등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6월18일 2시30분부터 광화문공원에서는 자전거 녹색교통의 대중화를 위한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행사가 열립니다. 이 행사는 뜻있는 자전거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준비하고 있으며 르네 월릿씨와의 간담회, 발명가 최진만님의 사지구동형 자전거 시승회 등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