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약 필요한데, 변비약을 지원해?

'남북교류협력의 실적과 향후 정책방향' 전기 학술대회 열려

등록 2005.06.14 19:02수정 2005.06.1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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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희
"지사제가 필요한데 변비약이 가거나 배에 기름기가 낀 사람에게나 필요한 고지혈 종양제가 배를 곯고 있는 북한 용천 주민들에게 의약품으로 전달됐다."

지난 1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대회의실에서 한국사회정책학회(회장 박순일) '남북교류협력의 실적과 향후 정책방향'을 주제로 열린 전기 학술대회에서 김진숙(어린이 의약품지원본부) 사무국장이 밝힌 말이다.

김 국장은 의료보건분야 대북지원사업이 진행되면서 위와 같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단체간의 정보교류가 없어 결실을 '백업'할 창구가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페니실린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2차 항생제가 지원돼 변비약이나 고지혈제 등은 북에서 처방하는 78가지 의약품 외엔 필요없는 약이 되고 있다. 그래서 하루 날 잡아서 다 불살라버리고 마는 실정이다. 또한 제일 낫다는 평양에서도 토굴 같은 곳에서 기거하는 어린이들의 위생 상태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이다."

북을 오가며 의약품 지원을 실제로 경험한 김 국장의 말에 참석자 모두 충격을 받은 듯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 국장은 고가의 의료장비도 기술과 전기가 부족해 쓸 수가 없는 형편이라 북이 요구하는 (사용 가능한) 의료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문옥륜(서울대보건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폐결핵이나 말라리아 같은 묵은 전염병이 만연돼 있어 남한에서도 접경 지역에서 주민과 군인들에게 발생하고 있다. 이를 위한 공동 대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말라리아는 1백만 명의 환자가 발생했던 것으로 추산돼 통일을 위한 대북 건강 지원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나미(한국보건사회) 연구위원은 "그동안 남북 교류 협정과정을 보면 북한은 남북한 합의보다 국제정치적 상황이나 환경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왔지만 (북한의) 실익에 큰 장애가 되는 보건 문제는 국내외 정세에 영향 받지 않고 교류 협상에 임했다"며 "최근 경제, 스포츠, 예술 분야에 걸쳐 남북한주민들의 접촉이 빈번해지고 있어 응급을 요하는 건강문제나 안전사고 발생이 불가피해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황 연구위원은 북한의 전염병 발생이나 환경오염은 남한의 보건에 영향을 미친다며 1970년 남한에서 완전히 없어졌던 말라리아가 1993년 휴전선에서 발생했고, 2004년 7월 금강산을 다녀온 관광객들에게 남한에서 볼 수 없는 병원균에 감염돼 질병관리 본부가 당황한 사건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북한산 고사리가 수입되면 농가 수입차질


이날 남북교류협력을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는 윤조덕(사회정책학회) 부회장의 사회로 장영권(평화연대집행위원장), 김기창(한민족경제교류협의회 회장), 황나미(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발제자로 나섰고, 김승국(민족화해운동집행위원장), 신만섭(평화연대 남북경협위원장), 박형중(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토론자로 나서 4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진행되는 열기를 뿜었다.

김기창 회장은 '남북민간경제교류 협력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10여년 간 대북사업에 뛰어들어 경험했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회장은 "수입품목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남·북 교류협력법이 우위에 있음에도 북한산 고사리는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고 국내산은 면세가 된다. 그나마 돈이 되는 용, 참깨, 들깨 같은 것은 국영사업인 형편"이라면서 "원산지 증명서(북한측발행)를 획일화 한 운영제도로 (북에서 남으로) 반입 시 우리측에선 민경련 부분만 인정해 수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무조건적인 원조에서 탈피해 북측이 물품 생산을 통해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면 북한산 고사리나 참깨, 들깨 등 북한 물품을 팔아주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창 회장의 주장에 박형중(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건을 팔아주는 것은 북이 먼저 변해야 가능한 일"이라 전제하고 "(북한의) 고사리를 판 대금이 순수하게 북한 주민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된다면 팔아줘야 하겠지만 고위당원이나 군부로 그 돈이 흘러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한, 실질 현지조사를 통해 판매대금이 주민에게 들어가는지 확인 후에나 가능하다"며 "또 우리 농가의 피해를 줄 우려가 있어 농산물 팔아주는 건 제고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북한산 농산물이 우리 농가를 망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현재 수입되고 있는 고사리의 90%가 중국산이고 콩 역시 미국, 중국에서 거의 모두를 수입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쌀이나 곡류는 식량도 부족하기 때문에 수출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제품 역시 조악해서 수출 상품경쟁에 밀린다"고 반박했다.

독일식 통일 방법 문제 많아

신만섭 위원장은 "통일이 이뤄지는 방법으로는 평화통일(북한 스스로 붕괴), 무력분쟁이 있으나 정작 통일 후의 시뮬레이션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무력분쟁은 주변국가의 힘의 논리에 의해 (북한이) 중국에 넘어갈 수도 있고 미국, 러시아, 일본은 과연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제2의 무력충돌 가능성은 없는가?"고 의문을 던졌다.

독일이 어느날 갑자기 통일이 됐지만, 서독 경제 성장율은 통일 이후 동독을 흡수한 뒤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있어 독일식 통일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한 통일 연구가나 대북지원 단체들이 지나치게 이벤트성 행사에 몰입해 단체간의 정보교류가 없다는 것도 문제점도 여러 차례 제기돼, 효율적으로 대북교류사업에 전담할 정부차원의 조직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요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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