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2005년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 연극 <하녀들>

등록 2005.06.20 17:58수정 2005.06.21 11:00
0
원고료로 응원
최근 들어 부쩍 기존의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대안’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은 극단이나 학교, 미술관 등이 많다. 대안 학교, 대안 극장, 대안 공간 등의 이름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이 실험들은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기존의 교육 제도에 대한 반발과 함께 인성 중심의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로서 ‘대안 학교’는 이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새로운 교육 과정과 교육 방법을 통해 획일화된 교육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이 움직임은 현재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기존의 미술관이 지니고 있었던 경직된 관람 구조와 전시 형태를 깨는 ‘대안 공간’도 미술계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으로 부각되고 있다. 시장 안에 미술관을 만들고 새로운 실험 형식의 전시나 퍼포먼스를 행하는 안양 석수시장의 ‘스톤 앤 워터(Stone & Water)’는 대안 공간으로서 자리 매김 하는 좋은 예이다.

a 미술관에 대한 대안 공간 <스톤 앤 워터> 전경

미술관에 대한 대안 공간 <스톤 앤 워터> 전경 ⓒ 스톤앤워터

2005년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의 참가 작품인 <하녀들> 또한 기존의 ‘극장’이라는 공간성을 탈피해 새로운 공간에서 극 무대를 표현한다. 무대 미술 담당인 양준원씨는 안내장의 말을 통해 상식적인 극장을 뛰쳐나와 미술학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작품인 만큼 기존 연극과는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는 의도를 전한다.

대안 극장 ‘옐로우룸(Yellow Room)’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연극의 무대는 원래 미술 학원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관객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라고는 겨우 20여석에 불과해 무대와 관객과의 거리가 매우 좁다. 기존의 소극장보다 더 작고, 더 시설이 미흡한 상태이지만 무대 장치가 소홀하지는 않다.

a 연극 <하녀들>의 포스터

연극 <하녀들>의 포스터 ⓒ 옐로우룸

무대에 사용된 흑과 백의 대비는 연극 내용에서 보이는 인간의 선과 악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어느 인간이나 선의 측면과 악의 측면이 있다는 사실. 무대 미술 담당자는 ‘이 연극에서의 무대 미술은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고 말함으로써 무대에 등장하는 모든 장치들이 등장 인물의 성격과 사건 전개에 어떠한 관련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흑과 백으로 엄격하게 절제된 색감은 하녀들의 억압된 욕망과 그녀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선악의 대조를 상징한다. 하녀들은 변덕스럽고 날카로운 마님 밑에서 그녀에 대한 반란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하층민이다. 그들은 마님 앞에서는 철저한 굴종의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마님이 외출한 동안 마님 행세와 하녀 역할의 연극을 하며 그녀에 대한 적극적인 분노를 표출한다.


a 연극 <하녀들>의 등장 인물들

연극 <하녀들>의 등장 인물들 ⓒ 옐로우룸

마님이 외출하고 없는 밤, 하녀들은 언제나 마님 놀이를 하며 반란을 꿈꾼다. 그러나 그녀들의 놀이는 항상 마님을 죽이기 직전에 끝나고 만다. 두 하녀가 마님 역할을 번갈아 하면서 마님과 하녀로 분장해 벌이는 그녀들의 놀이. 이 놀이에서는 이 두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된 분노가 그대로 표현된다.

하층민으로 살아가면서 받는 멸시, 상류 계층인 마님에 대한 동경 그리고 그녀에 대한 증오와 한편의 동정. 이런 것들이 뒤엉켜 연극은 진행되고, 거듭되는 반전을 거쳐 결국 마님에 대한 반란이 실패하고 마는 결말을 맞는다.


이 작품 <하녀들>의 원작자는 프랑스의 소설가 장 주네이다.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고 그 삶이 반영된 충격적인 내용의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하층민의 삶, 동성애, 인간 본성에 내재된 암울한 측면 등을 다룬 내용이 많으며 복잡하고 난해한 구성을 갖고 있는 대표작들이 있다.

극단의 실험성 측면에서 볼 때에 이 연극 <하녀들>은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협소한 공간을 잘 활용한 무대 구성 측면이나 실험적인 정신을 대표하는 독특한 내용의 작품 선택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 극적 구성들. 이런 것들은 보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좋은 요소들이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실험성에 비중을 둔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 호흡이 아직은 미성숙한 부분이 보인다. 이제 첫 작품을 시작한 극단인 만큼 대단한 연기력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미흡한 면은 보이나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태도로 작품에 임하는 면은 보는 이에게 좋은 느낌을 준다.

실험 정신을 갖고 무대를 올리는 다양한 형태의 대안 극장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아직도 많다. 단순한 ‘실험성’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지가 않다. 요즘의 관객들은 많은 문화적 흐름에 노출되어 보다 다양하고 새로우면서도 전문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연극 <하녀들> 관련 정보

장소 : 대안극장 옐로우룸 (홍대 산울림 극장 옆)

기간 : 2005년 6월 11일 - 8월 21일

시간 : 토요일 오후 7시, 10시, 일요일 오후 3시, 6시

덧붙이는 글 연극 <하녀들> 관련 정보

장소 : 대안극장 옐로우룸 (홍대 산울림 극장 옆)

기간 : 2005년 6월 11일 - 8월 21일

시간 : 토요일 오후 7시, 10시, 일요일 오후 3시, 6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5. 5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