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알뜰장터 구경 해보실래요?

'아끼고 가르고 모으자'

등록 2005.06.21 15:32수정 2005.06.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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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알뜰장터를 열었습니다. 작아서 못 입는 옷이나 신발, 갖고 놀던 장난감 등을 가져오라고 해서 열흘 전부터 재활용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장난감 자동차를 가져 와서는 아까운지 선뜻 내놓지 않고 실컷 가지고 놀다 다시 가방에 넣어 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a 유치원 알뜰장터가 열렸습니다. 단연 즐거운 것은 아이들입니다.

유치원 알뜰장터가 열렸습니다. 단연 즐거운 것은 아이들입니다. ⓒ 허선행

‘한 두 개씩 가져오라고 했으니 얼마나 모아질까?’ 생각했지만 유치원 교실마다 여러 가지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소리 나는 장난감 기타, 로봇, 각종인형, 책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물건이 꽤 많이 모아졌습니다.

시장놀이 할 때는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않으니 물건을 사서 가져 갈 시장바구니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목욕 갈 때 쓰는 플라스틱 바구니부터 헝겊 가방 ,심지어는 한약 담는 가방 등 각양각색이 총동원 되어 시장바구니로 쓰였습니다.

a 작아서 못 입는 옷도 좋은 상품으로 바뀌었습니다.

작아서 못 입는 옷도 좋은 상품으로 바뀌었습니다. ⓒ 허선행

돈을 만드는 아이들의 손놀림을 바라보던 저는 아이들의 손이 마이더스의 손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라비아 숫자를 써서 1000원짜리 지폐도 만들고 동그랗게 오린 종이위에 학을 그려 넣어 500원 짜리 동전도 만들었습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지폐와 동전을 고이 접은 지갑에 넣으니 시장 볼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습니다.

a 아이들이 만든 돈이 알뜰장터에서는 '진짜 돈'입니다.

아이들이 만든 돈이 알뜰장터에서는 '진짜 돈'입니다. ⓒ 허선행

선생님들의 수고로 잘 진열 된 물건들로 강당이 가득합니다. 옷가게, 문구점, 장난감가게, 채소와 과일가게에 없는 물건 없이 모두 갖추었으니 작은 슈퍼마켓이 되었습니다.


다섯 살 동생 손을 잡고 물건을 사러 가는 일곱 살 어린이의 모습을 보니 평소에 엄마와 함께 시장 다니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행여 손을 놓칠까 염려되어 손을 꼭 잡고, 또 다른 한 손에는 큰 시장바구니를 들고 이것저것 고르느라 재미있나 봅니다.

저희들끼리“재미있다. 그치?”, “넌 뭐 샀어?” 서로 산 물건을 꺼내 놓고 자랑도 하니 강당 안이 시장처럼 소란스럽습니다.


돈을 다 써서 물건을 살 수 없다며 울상을 짓는 남자아이에게 500원짜리 두 개를 쥐어 주었더니 금방 활짝 핀 얼굴로 미니 자동차를 사 갖고 와서는 자랑합니다. 문구점에는 바코드를 찍어내는 장난감까지 등장해서 신기했습니다.

a 어른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물건도 꽤 있습니다.

어른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물건도 꽤 있습니다. ⓒ 허선행

옷가게를 둘러보았습니다. 흰색 반바지를 고르는 여자아이에게 “누구 줄 거야?”물었더니 동생에게 사다 준다며 자랑을 합니다. 제가 신을 신발이라며 고급스런 샌들을 고른 안목 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집에 가면 엄마의 환영을 받지 못 할 물건을 사는 친구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걸 뭐 하러 사왔어” 나무라며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새 물건만을 고집하는 부모들을 간혹 보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에게만은 좋은 음식 먹이고 좋은 옷 입히려는 부모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내 아이에게 물려 줄 환경도 생각하는 부모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a “아끼고 가르고 모으자”는 취지를 아이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끼고 가르고 모으자”는 취지를 아이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허선행

다른 나라의 유치원을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쓰던 물건을 가지고 나와 서로 교환하는 알뜰장터를 보게 되었는데, 아주 허름한 물건을 사고도 소중한 보물처럼 여기던 표정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습니다.

또한 수 십 년은 사용한 듯 보이는 의자에 그동안 사용했던 사람의 이름이 써 있는 걸 보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물건을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있고 선배와 후배의 정을 읽을 수 있는 의자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의자사용이 불가능 하리라 생각됩니다.

저부터도 새로운 상품에 이끌려 절약이라든지 검소라는 단어가 퇴색되어 가는 현실을 피부로 느낍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여서 새 물건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잘 살게 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길을 지나다 내 놓은 물건 중에 멀쩡한 물건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물건을 다시 쓰는 체험활동을 통해 나는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다시 소중하게 쓰일 수 있는 자원이 됨을 깨닫게 해 주고 싶습니다. 조금은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계속해서 알뜰장터를 열 계획입니다. 오늘처럼 물건이 한 개도 남지 않고 모두 필요한 사람에게 쓰여 질 때까지.

덧붙이는 글 | 허선행 기자는 청주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허선행 기자는 청주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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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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