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95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6.21 23:55수정 2005.06.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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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에 조예가 깊지 않은 박규수였으나 윤석우의 무술실력에 대해서는 한 점 의구심이 없었다. 그만큼 윤석우는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총포라는 병기 앞에서 인간의 몸이란 얼마나 나약한 것이냐. 이미 윤석우 수하의 곽 포교도 한 점 총환에 명을 놓지 않았던가. 윤석우 만큼은 그리 허망한 꼴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석우 네 이놈! 네가 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단 말이냐!"

박규수가 다시 한 번 버럭 소리를 지르자 윤석우가 칼을 거두고 물러났다. 칼이 칼집에 박히는 소리가 꽤 거칠었다.

'석우가 흔들리고 있다. 석우가 저자에게 호승심을 느끼고 있는 게야.'

물러서서도 여전히 권기범과 일행들을 쏘아보는 윤석우의 눈길을 본 박규수는 적이 불안했다. 호위들이 권기범의 양 옆에 붙어 길을 열었다. 오혈포는 여전히 무리를 겨눈 채였다. 포교와 나졸들은 박규수의 호령에 눌린 탓도 있었지만 윤석우가 더 이상의 지시를 내리지 않자 슬며시 길을 터 주었다.

"그대가 윤 군관이로군. 눈빛이 맘에 들어."


권기범이 윤석우 앞을 스치며 나직이 말했다. 비로 범벅이 된 윤석우의 얼굴이 노기로 벌개졌다.

'요망한 놈. 무엇이 네놈을 그리도 여유롭게 하는 게냐.'


묘한 상대였다. 키가 커서 눈에 띄긴 했으나 중갓이나마 갓 나부랭이를 쓰고 호위 장정의 틈에 있으니 그냥 장사치나 한량쯤 되나 보다 했다. 헌데 명정한 눈빛 뒤에 무엇인가 강한 기운이 숨어있음을 느꼈을 때 섬뜩함을 감지했다.

내리는 비 때문에 정확한 호흡을 느끼긴 어려웠지만 양기(養氣)와 연기(鍊氣) 모두 출중한 자임이 분명했다. 아무 표시를 내지 않으며 걷고 있지만 단전에 충만하게 모인 기를 밖으로 넘치지 않게 하여 기감(氣感)을 감추는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의식적으로 기식을 인도하여 경력의 운용과 축발의 배합을 조절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대체 네 놈은 어떤 놈이냐.'

윤석우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일송이 석우를 보고 있었다. 이들을 보내느냐는 물음이었다. 순간 석우 앞을 지나던 호위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보였다.

하-

칼을 팽개친 채 맨 몸으로 달려든 윤석우가 호위의 총 든 오른 손목을 틀어쥐고 자신의 왼 팔꿈치를 상대의 복부에 박았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날렵한 동작이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일송이 다른 호위를 덮쳤다. 오혈포를 발로 차 내며 재차 발 뒷굽으로 호위의 면상을 내리 찍었다. 그러나 호위가 고개를 틀어 발을 피하며 옆으로 빠졌다. 나졸들이 달려들려 하였으나 호위가 오혈포를 주워드는 동작이 더 빨랐다. 무리가 모두 흠칫했다.

일송이 다른 호위에게 달려들었던 사이 윤석우는 맡은 호위의 오른 뺨을 어르며 무릎을 밟았다. 호위가 총을 떨구며 휘청했다. 파고 들어 장(掌)으로 질러 인중에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권기범의 발이 쑥 들어왔다.

"강철같은 장수도 도주한다는 정란사평(井欄勢)이로군. 내가 탐이 나면 진즉 말을 하지 그랬나!"

도포 자락을 허리 춤에 찔러 넣은 권기범이 말을 마치지도 않은 채 몸을 띄웠다. 제자리를 뛰어 차듯 오르며 지른 발이 날카롭게 턱을 노렸다. 윤석우가 잽싸게 뒤로 공중제비를 했다. 틈을 놓치지 않고 멀리 뛰며 발을 바꾸어 질렀다. 한 번 공중에 떠 왼발, 오른발을 교차하며 3회를 연속 질렀다. 지르는 자의 현란함도 놀라웠지만 그 발을 모두 막아내고 있는 윤석우의 손놀림도 현묘했다.

쓰러졌던 호위가 일어나 오혈포를 다시 잡았으나 그들이 엉켜 있어 도무지 조준을 할 수가 없었다. 권기범은 공격을 하면서도 그 낌새를 알았는지 손을 저어 호위를 말렸다. 호위도 권기범의 뜻을 간파했다.

몇 차례 권기범의 신기에 가까운 무예를 잠시 목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땅에서 몸을 차오르며 격렬히 움직일 기회는 없었다. 모든 대결은 그저 눈 깜빡할 사이에 권기범이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 끝장이 났다. 그런 그가 오늘은 너무도 진지하게 몸을 놀리고 있었다.

"하아-하아-"

거친 숨을 몰아 쉬어다. 윤석우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처음 겪어보는 고수였다. 상대는 아직 손을 쓰지 않았고 다른 유형의 공격을 가해 오지도 않았다. 오로지 손으로 상대를 어르면서 뛰어차는 현각허이세 한 수 만을 연신 넣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십팔반 무예를 익힌 자 같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수가 세분화 되어 있었다. 윤석우도 스스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저 자는 내가 막을 만큼만 공격을 해오고 있는 것이냐, 아직은 내가 잘 막아내고 있는 것이냐. 윤석우가 공격을 짬을 노려봤지만 당장은 지르면서 내차는 그의 발을 막는 것도 벅찼다. 그렇다면.....

윤석우가 권기범을 두 손으로 발을 막음과 동시에 몸을 깊이 틀어 발을 차 넣었다. 상대의 다음 공격에 가슴을 내 줄 각오를 한 무리한 반격이었다.

커-

예상을 하지 못했던지 권기범이 공격하던 발을 거두며 옆으로 크게 재주넘기를 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윤석우가 양손을 땅에 딛고 왼무릎을 댄 채 오른 다리를 돌려 차며 복호세(伏虎勢)로 들어왔다.

이를 피하기 위해 금마세로 상대가 뛰어오르는 순간 날아오르며 왼발로 면상을 올린다. 이것이 윤석우의 복안이었다. 그러나 권기범은 뛰어올라 피하는 대신 자신의 발로 윤석우의 오른발에 부딪쳤다.

쩡-

정강이에 찌르르한 통증이 일며 발이 멈췄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무예보통지의 초식이 몸에 밴 동작인데도 전혀 예상 외의 몸놀림을 구사한다. 방어와 공격이 양분되지 않는 철저한 공격. 그로써 방어를 이루는 독특한 세(勢)였다.

단 두합으로 공격의 기회를 끝낸 윤석우는 다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어느 새 나졸들은 남의 일인양 두 사람의 엉킴을 지켜보고 있었다. 구경이라기보단 감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상황이었다. 비가 튀고 흙이 파이는 두 사람의 움직임은 그만큼 현란한 것이었다.

권기범의 두 호위도 총을 겨누고 나졸들을 막아서기는 했으나 신경은 온통 빗속에서 포효하는 두 사람에게로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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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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