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이 비판받는 것은 반칙했기 때문

[반론] 고재열 기자의 <하룻밤 사이 '공공의 적' 된 전인권> 기사에 대해

등록 2005.06.23 09:27수정 2005.06.2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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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생각해봐라. 우리가 월드컵 4강 실력으로 나갔냐? 이탈리아 애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얘기야. 아니라구? 그러면 우리는 오노는 왜 욕하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어이없는 행동이지만, 미국애들은 아니라구. 똑같은 거야. 알겠냐?"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심심하면 내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시각에 대해 얘기하는 형이 있었다. 서강대 박홍 전 총장부터 시작해서 나름대로 많은 얘기가 오고 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저 이야기다.

벌써 2년이 넘은 일인데도 이상하게도 저 이야기만큼은 지워지지 않고 기억 속에 뚜렷이 새겨져 있다. 당시에는 그 형에게 격렬한 반감을 느꼈으나 아무리 친해도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이기에 웃으며 듣는 것으로 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 기억 속 얘기가 <오마이뉴스>에 실린 고재열 기자의 '하룻밤 사이 공공의 적 된 전인권'이라는 주장 글을 읽다 보니 더 생생하게 펼쳐졌다. 이 글은 문장구성력도 나무랄 데 없고, 사람들이 지나치게 한 인간에게 가혹한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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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이라는 건 상대적?

그런데도 불구하고 엉뚱하게도 전인권에 대한 생각이 아닌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늘 이상한 소리를 하던 형이 떠오른 건, 그 형이 했던 그 인상적인 얘기의 핵심 근거인 '반칙이라는 건 상대적'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축구나 쇼트트랙이나 일정한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어겼는지 여부는 심판이 판단한다. 그러나 심판도 사람인지라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있고, 특히나 애매모호한 판정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각자가 지지하는 국가나 팀 편에 서서 자신의 잣대로 누가 반칙인지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다. 대부분 물론 자신이 지지하는 쪽이 억울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그러나 사실 애매모호한 판정이라고 해도 느린 그림 등으로 보면 단 1%라도 어느 쪽이 더 잘못인지 판단이 가능하다. 사람이기에 그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거나 실수로 잘못된 판정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어느 한 쪽이 반칙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각 국가나 팀이 유리한 쪽으로 자꾸만 해석하고, 보여주기를 반복하기에 정말 반칙을 한 쪽도 정당화되는 듯 보일 뿐이다. 상대방에 대한 반론의 권리를 원천봉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전인권은 반칙을 범했다

그렇기에 난 전인권을 옹호한 글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동감할 수는 없다. 전인권이 저지른 진짜 잘못은 이은주를 사랑했다거나 자서전 출간을 앞둔 시점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반칙을 범했기 때문이다.

30대 유부녀와 미성년자의 사랑을 그린 <녹색의자>, 40대 중년 교수와 17살 미성년자간의 사랑을 그린 영화 <권태> 등이 별 무리 없이 개봉하고 있고, 그런 영화들이 맹비난을 받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랑했다는 건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건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랑했는가 안 했는가 아니라 이은주가 살아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은주가 살아 있을 때 그런 얘기를 듣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천지 차이다.

"권력을 이용해 강제로 성관계를 갖는 게 강간이 아닌가요?"

박해일, 강혜정 주연의 영화 <연애의 목적>에서 강혜정이 하는 말이다. 지금껏 진행 방법이야 어찌되었든 사랑으로 흘러가는가 싶은 순간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는 대사이다.

강혜정이 영화 속에서 그런 대사를 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 주의 깊게 볼 점은 관점에 따라 사건은 얼마든지 다르게 보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언론에서도 언제나 두 쪽의 입장을 취재하고 있는 게 아니던가. 그리고 한 사건에 대해 명확히 관점이 갈릴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그 사건 당사자 양쪽의 말이 가장 중요하다.

핵심 측근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그 정확한 뜻을 말할 수 있는 건 사건 당사자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사라졌다면?

반박할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

전인권이 범한 반칙은 바로 그것이다. 이은주가 반박할 권리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었다는 것이다. 전인권이 배부른 아저씨건 이혼남이건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이 진짜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오해였는지를 말할 당사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인권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난에 앞서 전인권은 먼저 이은주의 인격을 무시한 셈이다(흥미 위주로 끌고 간 일부 언론도 문제는 있다). 전인권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난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면 반대로 이은주의 입장에서 서서 한 번 생각해보자.

만약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전인권이 마치 스토커처럼 이은주를 따라다니고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언론에 여기 저기 그런 말을 흘리고 다녔다면, 그렇다면 살아있는 이은주가 과연 그에 대해 좋아했을까?

쉽게 그게 내 얘기라고 생각해보자. 내가 이은주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고 할때 전인권의 그런 발언이 허위이면 분개할 것이고, 설령 진실이라 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을까(젊은 청춘 남녀간에 스캔들이 나도 일단 부인하고 보는 게 연예인들이다)?

전인권의 그러한 발언이 이은주 입장에서 어떻게 들릴지 알 수도 없고, 게다가 들은 후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것이 마치 기정사실화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면, 그의 발언을 과연 정당한 것이라고 감싸줄 수 있는 것인가?

게다가 누리꾼들이 그를 비난하는 근거에 대해서도 마냥 터무니없다고만 할 수 없다. 자서전 출간 이전이라는 것은 물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재열 기자의 주장처럼 자서전에는 이은주 관련 얘기가 한 마디도 없다 하더라도 이미 홍보 효과는 누릴 만큼 누렸다.

나름대로 꽤 경력을 지닌 가수가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스캔들성 이야기를 한다면 사람들이 고의든 아니든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미 홍보 효과도 누릴 만큼 누렸으니 고의든 아니든간에 정말 이은주를 사랑하던 팬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이를 데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연예인 X파일이 터졌을 때 그 많은 연예인들이 왜 그렇게 자신들의 밥줄인 광고 회사에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명예훼손이라고 강력히 반발했겠는가(결국 고소를 취하했지만). 연예인은 이미지를 먹고 사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스캔들이 터지면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막으려고 노력하는 건 그 이미지 손상을 막기 위해서다. 세상 사람들이 중년 이혼남과 유명 여배우와의 사랑을 이해 못해서라기보다 적어도 이제는 어떻게 그에 대해 대응하기도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름다운 이미지로 세상과 작별을 고했던 그녀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 더 분노를 하는 것이다.

"이은주 정말 연기력 뛰어난 배우였는데 아까워."
"이은주? 전인권이랑 그렇고 그랬다는 애?"

어느 말이 더 듣기 좋은가를 떠나서 어느 말이 정말 이은주를 기리는 사람들의 말인가. 여배우에 대한 기억 속에 그녀의 연기가 아닌 스캔들이 자리잡게 한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일인지 다시 반문해보아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전인권과 이은주의 사랑에 박수를 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는 이은주에 대한 사랑 고백을 한 전인권에게 만큼은 박수를 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전인권 아저씨에 대해 별다른 감정은 없습니다. 다만 정말 사랑한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냥 묻고 가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일부 기자들이 부추긴 측면도 있긴 하겠죠. 그래도 이은주씨는 한마디도 할 수 없는데, 과연 바람직했던 것일까요?

덧붙이는 글 전인권 아저씨에 대해 별다른 감정은 없습니다. 다만 정말 사랑한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냥 묻고 가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일부 기자들이 부추긴 측면도 있긴 하겠죠. 그래도 이은주씨는 한마디도 할 수 없는데, 과연 바람직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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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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