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 포토에세이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앞표지글로세움
때는 1989년, 24세 영국군 병사 스테판 커밍스는 아일랜드 공화국군 폭탄 테러로 숨졌다. 생전에 그는 ‘무슨 일이 생기면 열어보세요’라는 편지 한 통을 남겼는데, 이 편지에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나는 잠들지 않습니다’로 시작되는 시가 유서처럼 들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시를 아들의 장례식에서 낭송하였으며, 이 장면은 BBC 방송을 통하여 영국 전역에 알려졌다. 이후 이 시는 지난 60년간 가장 많은 리퀘스트를 받은 명시가 되었으며, 마릴린 먼로의 25주기 때에도 낭독되었고 9·11 테러 1주기에서 아버지를 잃은 한 어린 소녀가 암송하여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고 한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보낸 이 감동적인 시를 시인 신현림이 번역하여 자신의 사진 작품과 만나도록 했다. 2005년 5월 1일에 나온 신현림 포토에세이집 <천 개의 바람이 되어>에서 신현림은 그 시를 이렇게 평가했다.
죽음에 관해 절대 부정적이지 않은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시는 살아 있는 자가 아닌 죽은 자가 쓴 시다. (중략)
이 시엔 뭔가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 어렴풋이 느끼기는 하지만 그건 영혼을 파고드는 힘이다. (중략)
행여 이 시에서 들려주듯 죽은 자도 없고, 죽는 일 따위는 없는 게 아닐까.
-<천 개의 바람이 되어> 48쪽
신현림은 그 시를 알기 전에 자신도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뜻을 담은 시를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소설가 김소진이 요절하였을 때 그를 기리는 시.
죽음은 끝이 아닐 거네
죽음은 양파껍질 같아서
몸의 죽음만 벗겨내는 거네
몸만 떠나는 거네
(이하생략)
-<천 개의 바람이 되어> 49쪽
신현림은 이 예쁜 포토에세이집에 자신의 단상들을 덧붙였다. 죽음과 삶 사이의 시간과 공간과 이미지를 놓고 사유하는 신현림의 속 깊은 내면세계가 산들바람처럼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신현림 포토에세이//2005년 5월 1일 글로세움 펴냄/192×160mm양장/96쪽/값 8500원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주로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신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하반기 완간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 신현림 치유시.산문집
신현림 글.사진,
사과꽃, 2014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