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 귓속말의 비밀

[분석] 만약 6자회담 파탄나면 북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등록 2005.06.24 05:27수정 2005.06.2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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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 장관과 나눈 귓속말에 대한 추측이 무성하다. <자주민보>에서 파악한 그 귓속말 내용을 보면 그 의미가 상당히 중요해 보인다. 최근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보낸 친서도 공개되었다. 이 귓속말과 친서가 연결되면서 향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떤 그림을 가지고 미국과 핵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지금부터 이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풀어보려고 한다.

a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월 17일 면담 뒤 가진 오찬에서 악수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월 17일 면담 뒤 가진 오찬에서 악수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을 직접 만나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님의 유훈'이라고까지 하며 미국이 북에 대한 안전만 담보하면 얼마든지 북에 있는 핵과 미사일을 폐기하고, 그 폐기를 와서 다 볼 수 있게 사찰까지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따라 한반도 주변국과 세계는 미국이 이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기에 호응을 하기만 하면 6자회담도 곧 재개될 것이며 한반도의 핵문제가 타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김정일 화해 제스처에 미국도 화답?

미국에서도 긍정적인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미국의 애덤 어럴리 국무부 부대변인이 22일 북에게 식량 5만t과 종자를 지원한 백악관의 결정을 밝혔다. 물론 백악관은 이 식량지원이 북핵문제와는 무관하다고는 애써 강조하지만 괜히 북에게 지고 들어가는 것 같아 위세를 갖추려는 의미가 다분해보인다.

북에 지원될 식량이 북미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언론의 분석이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 과정에서 '미스터 김정일'이라는 경칭을 사용하였다. 부시 대통령이 최근 이 호칭을 반복해서 사용하기는 했지만 미국 고위 관리가 사용하기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분명히 북미관계에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도 문제가 되었던 폴라 도브리안스키 미 국무 차관의 최근 '폭정의 전초기지' 표현을 '민간단체 주최 세미나에서 인권문제 담당 차관으로서 북핵 문제와 상관없이 한 발언이므로 북한 측을 일부러 자극하려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하였다. 혹시나 모를 북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의 주인공인 자신이 발 빠르게 나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한반도 주변국을 담당하는 힐 동아태 차관보는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견해를 언론에 흘렸다. 만약 힐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콘돌리자 라이스의 방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게 된다면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방북으로 북미 사이에 대화와 관계개선의 흐름이 형성되었던 클린턴 정권 말기의 호혜적인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까지 언론사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다.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보유한 북한을 전쟁으로 제압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미국이 이렇게 대화로 문제를 풀려고 할 수도 있다.


2002년 김정일 친서 왜 공개했나

그러나 꼭 그렇게 정세가 낙관적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은 지금 핵과 미사일 폐기 대가로 북미수교를 원하고 있다. 북미수교는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군이 주둔할 명분을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 그런 북미수교를 과연 공화당 부시정권이 쉽게 해주겠는가.

물론 일방적으로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화 제의를 난폭하게 거부한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할 수 없으며 북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식량 좀 지원하고 미스터라는 호칭 정도는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며 어떻게든지 꾀를 내어 6자회담장까지도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그 6자회담 장에서 미국은 북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선핵포기'와 같은 패권적 주장을 반복하여 회담을 파탄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렇게 될 경우 북이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그런 북의 향후 대응을 예측해볼 수 있는 자료가 최근 공개되었다.

23일 <연합뉴스>에 돈 오버도퍼 존스 홉킨스대 교수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가 지난 2002년 11월 북한을 방문, 북한 측으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시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친서를 받아 백악관에 전달했다는 사실과 그 친서 전문이 공개되었다. 2002년 11월이라면 미국의 켈리가 방북하여 고농축우라늄문제를 북측에 제기하면서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되었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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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2002년 11월 부시에 친서 보냈다

<연합뉴스>에 공개된 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친서 문장과 맞춤법은 원문 그대로이다.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때에 조미관계에서도 현 위기가 극복되고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번에 발생한 핵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미국이 우리를 적대시하면서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군사적인 위협을 로골적으로 가하는데로부터 생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불가침을 확약한다면 새로운 세기의 요구에 맞게 핵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부쉬 대통령이 우리를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한데 대해 류의하며 중요한 것은 미국이 불가침을 법적으로 담보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용단을 내리면 우리도 그에 맞게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 친서에는 왜 북한이 핵무장을 하게 되었는지와 그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원칙과 기본 방도 그리고 핵폐기(물론 직접 언급은 하지 않고 있지만 문맥상 핵폐기임이 확실함)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약속이 들어 있다.

오버도퍼 교수는 이 친서 전달한 일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장관의 면담 소식을 듣고 공개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들이 이 시점에서 친서를 공개한 이유는 당시 친서의 내용과 이번 정동영 장관에게 전달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장이 본질적으로 일치한다고 보고 다시 한 번 미국 백악관에게 북미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미국의 거부는 북의 강력한 조치 부를 것

오버도퍼 교수와 그레그 전 대사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백악관에 친서를 전달한 후 백악관 관계자들에게 빨리 북한 측에 답장을 주라고 촉구했으나 백악관으로부터 반응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이 친서가 전달된 지 한 달만에 북미 제네바합의 중 미국이 지키고 있던 중요한 약속 중의 하나인 대북 중유 제공마저 중단해 버린다.

결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친서까지 보냈는데 미국은 중유공급 중단으로 대답했고 이후 열린 6자회담에서도 미국은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는 판단이 들자, 3차 6자회담을 끝으로 미국과의 대화를 전면 중단하고 지난 2월 10일 핵보유 선언으로 대답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 장관을 통해 보낸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핵문제 해결' 제안이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거부당했다고 판단한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또 다시 2·10 핵보유 선언과 같은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 물리적 대응조치로는 이미 북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가 될 것이며 나아가 누누이 언급해온 바대로 핵과 미사일을 제3세계에 이전하는 조치까지 공개적으로 단행할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의 공격에 직면해 있는 이란과 같은 나라에 이런 조치를 시급하게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도 원자력발전기술개발에 나서겠다고 공언했으니 북이 도와준다면 환영할 것이다.

지난번에는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공개편지로 전달한 의견을 거부했지만 이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 세계를 상대로 공개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이고 자세한 약속을 담아 제기한 핵문제 평화적 해결 촉구를 거부한 셈이 되기 때문에 북은 더욱 더 강력한 조치로 맞대응하게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논의내용 공개' 귓속말의 의미

a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돌아온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17일 저녁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면담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돌아온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17일 저녁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면담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번 6.15행사차 방북하고 남측에 들린 <민족통신> 노길남 대표는 23일 <민족통신> <참말로> <자주민보> 공동으로 진행한 6.15행사보도기획회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 장관과 회담을 끝낸 직후 나눈 귓속말에 대해 북측 관계자들이 말한 내용을 공개하였는데 그것은 "논의한 내용을 공개해야 되겠지?"라는 물음이었다고 한다.

'왜 이 말을 귓속말로 그렇게 전달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정동영 장관의 보고 내용을 보면 '미국이 북을 진심으로 존중해 준다면 핵무기 한 알도 가질 필요가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 내용을 공개해도 좋다고 했다'라는 식의 말이 많았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화 중간 중간에 내용을 공개할 것을 주문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면담이 다 끝난 후 면담장을 나와 로비에서까지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면담 내용을 공개해도 좋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하였다.

이번 장관급 회담 차 내려온 북측 대표단이 정동영 장관의 면담 브리핑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지 않은 것을 보면 비교적 자세히 면담 내용을 공개한 정동영 장관의 브리핑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에 대한 한반도 비핵화 약속을 이번 정동영 장관과의 면담을 통해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알리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의도가 의미하는 바는 누구나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대적으로 공언을 한 말은 그 만큼 책임을 크게 져야 한다. 미국이 성실한 대화의 자세를 취한다면 북은 무조건 약속한 대로 행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혹시나 미국이 비핵화와 핵사찰 약속을 못 믿을까봐 이렇게 최고위지도자로서 직접 나서서 대대적인 공개발언으로 부시대통령을 안심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반대로 그만큼 진심을 가지고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제안한 평화적 해결안을 부시 대통령이 거부한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적대적인 본심을 완전히 확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에 대응한 후속조치를 국제적인 비난 없이 마음 편하게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 같다.

따라서 이번에 또 다시 부시 정권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앞서 말한 북의 물리적 후속조치가 곧이어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어쩌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렇게 되더라도 손해볼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기어이 북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고집하여 남한과 그 주변에 대북 선제공격용 핵무기를 가져다 놓고 계속 북을 위협한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히려 핵무장을 하는 것이 그 위협을 막고 궁극적으로는 군축협상을 이끌어내어 실질적인 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정일의 대미 명분찾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런 평화적 해결 노력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전격적으로 시도했기 때문에 결국 미국의 대북 적대적인 태도에 대항하여 핵실험을 통해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이 된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과 세계 대다수의 나라들이 북의 후속조치를 함부로 비난하기도 힘들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핵실험까지 끝낸 북한의 핵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오직 북한과 군축협상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북한의 국제적인 영향력은 지금보다도 비할 수 없이 커질 것이며 한반도의 통일도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경제력과 북한의 군사력이 만나 통일을 하게 되면 통일한반도는 세계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강국이 된다.

따라서 일본과 미국이 통일한반도에 대한 경제적인 제재는 좀 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중국 러시아 유럽 등 세계 다른 나라와의 관계는 더욱 더 깊어질 것이며 한반도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과 미국도 종국적으로는 핵보유경제강국 통일한반도와 관계를 개선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쩌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런 그림을 그리면서 이번 정동영 장관과 면담하였는지도 모른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이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동영 장관과의 면담은 북핵문제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이 어떻게 대답할지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이창기 기자는 <자주민보> 기자입니다. 

<자주민보>에도 함께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창기 기자는 <자주민보> 기자입니다. 

<자주민보>에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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