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 재래식 화장실에 갇히다

등록 2005.06.27 13:00수정 2005.06.2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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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든 말든 시골 마을의 여름은 극성스럽지 않게 살며시 다가와 버찌 열매의 단맛을 더해주고 앵두의 붉은 빛을 더 영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시골 폐교 교실 한 칸을 엉성하게 개조해 살아 온 지도 5년이 지났다.


"한 3년만 여기서 살다보면 무슨 수가 나겠지. 고생스러워도 좀 참자."

도시에 새로 지은 아파트를 놔두고 난방도 잘 안되는 폐교의 교실 한 칸에 살림을 풀어 놓을 때만 해도 남편이 이렇게 한 말을 곧이 들었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전원주택을 짓거나 교실을 아파트 구조로 개조하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임시로 살자는 뜻으로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폐교살이는 3년이 지나고 5년에 접어들도록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짓든가, 개조하기까지 '임시로'라는 것에 발목이 잡혀 날로 남루해지기만 했다. 장마철, 천장에 비가 스며들어 양동이로 받아내도, 아이들 등쌀에 방문 손잡이가 고장나도 남편은 항상 임시방편으로 손보는 것으로 그치고 '새로' 개선을 하는 일은 기약 없는 '나중에'로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가 막힌 해프닝을 겪기도 한다.

며칠전 아이들 방에 들어갔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안에서 문이 열리질 않아 꼼짝없이 갇혀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손잡이를 아무리 비틀어도 문은 갑자기 지하 감옥의 육중한 철문으로 변신이라도 한 것처럼 열리지 않았다. 한참을 방문 손잡이를 돌리고 잡아당기며 씨름을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처한 상황이 거짓말 같았지만 내가 방에서 나갈 수 없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바깥에는 남편과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청국장을 말리는 건조기가 돌아가는 소음 때문에 구조 요청소리가 전달될 리 없었고 내가 갇힌 방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하필이면 청각장애가 있는 아줌마였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한테는 들렸지만 안에서 내가 이렇게 황당하게 방에 갇혀 버린 사실을 알릴 방법은 없었다. 아이들 방에는 전화도 없었고 내 휴대폰은 거실에 얌전히 모셔 둔 상태였다. 나는 꼼짝없이 끈끈이주걱(식충식물)에 갇힌 한 마리 파리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복도로 향한 창문에 입을 대고 소리를 지르다가 지쳐서 아이들 책상 의자에 앉았다. 누군가 화장실이라도 가기 위해 우리의 어설픈 공간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나는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 믿기지 않는 상황에 쓴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당한 것이 다행이라고 자위도 하다가 시간이 더 흐르자 손재주 없고 세심하지 못한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남편에 대한 비난과 원망이 버무려진 내 텔레파시는 1시간쯤이 지나서야 통했다.

구출(?)된 뒤, 내가 부숴버린 아이들 방문 손잡이. 내 서슬에 놀란 남편이 그 날은 바로 고쳐 놓았다.
구출(?)된 뒤, 내가 부숴버린 아이들 방문 손잡이. 내 서슬에 놀란 남편이 그 날은 바로 고쳐 놓았다.오창경
남편은 그 믿기지 않는 상황에 배꼽을 잡고 웃어댔지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망치를 가져다가 방문 손잡이를 아예 부숴버렸다. 그것은 잔재주가 없다는 핑계로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남편에게 더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옆 동네에 사는 친구가 놀러 왔길래 내가 겪었던 그 날의 황당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언니는 변소에 갇힌 것은 아니잖아."
"아니, 그럼 자기는 재래식 화장실에 갇혔었어?"

시골집 으슥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재래식 화장실의 문은 대체로 안팎으로 잠금장치가 되어 있다. 안에 잠금장치가 있는 것은, 물론 허술한 화장실 문이 행여 바람에 열려서 변소 안의 악취가 새나오지 않도록, 또 보이고 싶지 않은 꼴이 노출 되지 못하도록 바깥문과 문틀 사이에 걸쳐지는 나무토막이 있기 마련이다. 변소간에 들어가는 사람이 어쩌다가 문을 세게 닫으면 그 나무토막이 내려져 안에서는 도저히 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된 새댁인 그녀가 바로 그런 경우를 당한 것이었다.

"시어른들은 다 들에 나가고 나 혼자 있었을 때 그렇게 갇혀버렸는데 환풍기가 있는 창문에 까치발을 딛고서 동네가 떠나가도록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는데요. 마침 바쁜 농사철이라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나타나는 거 있죠."

시골집 뒤란에는 아직도 이런 문이 달린 재래식 화장실이 존재한다.
시골집 뒤란에는 아직도 이런 문이 달린 재래식 화장실이 존재한다.오창경
내가 방에 갇혔던 일은 정말 웃을 일에 끼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변소에서 올라오는 가스요? 그거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더구나 임신 3개월 때라 입덧을 할 때 그랬으니 그 고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거의 기절 일보 직전에 구조돼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왔다니까요."

그 사건 이후 친구의 집은 실내 화장실을 만드는 '개조'를 단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남편의 느긋한 성격은 어떻게 개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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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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