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녀의 표정에 머물다

등록 2005.06.27 20:55수정 2005.06.28 10:0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보름이었지만 잔뜩 흐린 날씨 때문에 바깥은 어디나 진한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시간은 밤 9시 11분 16초. 그리고 또 하나의 시간은 12분 9초. 그 사이의 시간을 빠짐없이 알뜰히 재어보아야 채 1분도 안되는 시간이다. 7초의 시간을 더 얹어야 겨우 1분의 충만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충만함을 입에 올리기엔 사실 1분은 너무 짧다. 그 짧은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카메라를 갖고 있던 나는 그 짧은 시간에 무려 16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나는 내가 정지시킨 그 시간 속에서 이제 그녀의 표정에 머문다.

결혼하고 몇 년 살다보면 우리는 흔히 상대방에 대해 알 것 모를 것 다 알게 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다 안다는 그 느낌은 흔히 무료함을 부른다. 무료하면 이제 우리는 그녀에게 머물려 하지 않는다. 무료하지 않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알고 보면 무료함이란 결국 그녀에게 더 이상 머물 곳이 없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그녀가 흘린 표정에 머물며 무료함이란 결국 둔감해진 시선으로 스스로가 키우는 것이란 생각 앞에 서게 된다. 벌써 몇 번째, 그녀의 표정을 들추고 머물 때마다 즐겁다.


a 이거 정말 맛있다. 뭐, 내가 맛있게 먹는데 네 귀엔 먹는대로 살로 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이게 정말 묵맛 떨구고 있네.(우리는 강화의 한 식당에 있었고 그녀는 묵밥을 먹고 있었다.)

이거 정말 맛있다. 뭐, 내가 맛있게 먹는데 네 귀엔 먹는대로 살로 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이게 정말 묵맛 떨구고 있네.(우리는 강화의 한 식당에 있었고 그녀는 묵밥을 먹고 있었다.) ⓒ 김동원


a 에잇, 메롱 방패다. 그런다고 내가 못 먹을 줄 아냐.

에잇, 메롱 방패다. 그런다고 내가 못 먹을 줄 아냐. ⓒ 김동원


a 아, 나는 음식이 맛있으면 감격스럽기까지 해.

아, 나는 음식이 맛있으면 감격스럽기까지 해. ⓒ 김동원


a 예술이 따로 없어. 음식이 예술이야.

예술이 따로 없어. 음식이 예술이야. ⓒ 김동원


a 자꾸 몸무게 얘기하지 마. 수면제가 따로 없어. 나는 그런 얘기만 들으면 저절로 졸리더라.

자꾸 몸무게 얘기하지 마. 수면제가 따로 없어. 나는 그런 얘기만 들으면 저절로 졸리더라. ⓒ 김동원


a 뭐, 다른 거 하나 더 시켜도 된다고. 정말?

뭐, 다른 거 하나 더 시켜도 된다고. 정말? ⓒ 김동원


a 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좀 자제를 해야지. 평상심을 되찾아야 하느니라.

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좀 자제를 해야지. 평상심을 되찾아야 하느니라. ⓒ 김동원


a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야. 더 이상은 안 먹는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야. 더 이상은 안 먹는다. ⓒ 김동원


a 그래도 마무리로 물 한 잔은 해야지.

그래도 마무리로 물 한 잔은 해야지. ⓒ 김동원


a --그 물에다 내가 내 사랑 녹여놓았는데.
오잉!!

--그 물에다 내가 내 사랑 녹여놓았는데. 오잉!! ⓒ 김동원

덧붙이는 글 | 그녀는 나의 아내이다. 결혼하여 15년 넘게 함께 살고 있다. 

개인 블로그인 http://blog.kdongwon.com/index.php?pl=107에 함께 실려있다.

덧붙이는 글 그녀는 나의 아내이다. 결혼하여 15년 넘게 함께 살고 있다. 

개인 블로그인 http://blog.kdongwon.com/index.php?pl=107에 함께 실려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5. 5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