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원들은 잘릴 염려 없습니다"

독일 고급 가전브랜드 '밀레' 회장이 말하는 106년 성공비결

등록 2005.06.29 16:12수정 2005.06.3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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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밀레사의 마커스 밀레 회장.
독일 밀레사의 마커스 밀레 회장.밀레사 제공
"우리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지 않아요. 100% 우리 돈으로 사업을 합니다. 무차입과 이사회를 통한 투명한 경영을 하지요. 종업원들은 우리 가족입니다. 밀레 가족들은 실직될 염려가 없습니다. 그만큼 회사에 대한 로얄티도 높고..."

마커스 밀레(37) 회장의 말투는 또렷또렷했다. 지난 28일 오후 1시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 기자회견장 입구.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장소는 하룻밤에 수백만원짜리 스위트 룸도 아닌, 회견장 입구의 간이 소파였다.

전세계 프리미엄 가전시장을 석권하는 굴지의 기업 회장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편안하게, 주변의 별다른 도움없이 밀레 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내비쳤다.

무차입 경영을 통한 튼튼한 재무구조와 투명성

1896년 독일에서 처음 문을 연 밀레는 올해로 106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회사 창립자인 칼 밀레(Carl Miele)와 라인하드 진칸(Reinhard Zinkann)이후 두 가문이 4대째 공동경영하고 있다. 전형적인 가족기업이다.

가족기업으로 100년 넘게 기업을 운영해 온 비결도 궁금했고,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한 과정도 관심거리였다. 우선 비결을 물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무엇보다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지 않고, 우리 돈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기업 재무구조가 튼튼하고, 경영 내용도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 또 가족기업으로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것도 장점이었다. 물론 핵심 이사진의 신중한 판단과 함께 최종 결정은 회사 창립자가 해오고 있다."


밀레 회장은 진칸 가문과 100년 넘게 회사를 공동으로 경영해온 이야기를 전하면서, 튼튼한 재무구조와 투명경영을 강조했다. 그 기간동안 경영상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단기적인 것 이외,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에 빠졌던 적이 없었다"고 답했다.

전문경영인이 포함된 이사회의 만장일치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다시 물었다. 이사진 구성을 좀더 자세하게 알려달라고 하자, "밀레와 진칸 가문의 공동경영자 각 한사람씩과 재무, 기술, 마케팅 담당 사장 등 모두 5명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이사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처리한다"고 밀레 회장은 전했다.

그는 이어 "이들 5명의 만장일치에 따라 안건이 통과되고, 집행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경영인과 창립 가문의 오너들은 대등한 위치에서 의사를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신뢰가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1899년 독일 헤르쯔브로크의 베스트팔리안이라는 조그만 지역에 처음으로 문을 연 밀레가 세계 최고의 가전 전문 업체로 성장하게 된 동력과 배경은 무엇일까.

밀레 회장은 품질에 대한 회사 철학과 임직원들을 꼽는다. 회사 창립 때부터 전해온 품질에 대한 노력과 자신감이 100년이 넘어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칼 밀러와 라인하드 진칸이라는 서른살의 두 젊은이가 만든 크림분리기 공장의 목표는 당시 농부들에게 신뢰를 줄수 있는 강하고, 좋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탄탄한 성공은 제품의 품질로 완벽하게 설 수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과 종업원을 내 가족처럼 믿는 신뢰

독일 밀레사의 마커스 밀레 회장
독일 밀레사의 마커스 밀레 회장밀레사 제공
그의 목소리 톤은 어느새 올라가고 있었다. 이어 "1904년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목조 세탁기의 뚜껑에 회사 철학을 담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면서 "'Forever Better(항상 더 나은 제품을 위해)'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품질에 대한 이들의 집요한 노력은 2차 세계대전에 전기가 공급이 되지 않아도, 나무 막사를 짓고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어 1956년에는 세계 최초의 전자동 세탁기를 선보였고, 식기세척기 등 부엌가구와 전자레인지 등 종합 가전제품 생산회사로 성장했다.

품질 철학과 함께 밀레의 성공의 배경에는 회사와 종업원 간의 신뢰도 한 몫했다. 밀레는 창립 초기인 1907년에 독일 공장의 노동자를 위해 별도의 기금을 만들었고, 숙박시설을 짓기도 했다.

밀레 회장은 "2대 회장이던 밀레 주니어는 전쟁 와중에도 흩어진 노동자들을 공장으로 다시 불러 모았고, 이들을 위한 임시가옥을 짓고, 주거지를 만들었다"면서 "직원들의 복지와 생활안정은 지금도 회사의 주요한 관심사안"이라고 강조했다.

1만5천명 가운데 25년이상 경력 직원이 8천명

100년에 걸친 회사와 종업원간의 신뢰는 현재 종업원의 구성을 보더라도 알수 있다. 독일 밀레 본사가 있는 귀테슬로우는 9만명의 작은 도시다. 이들 도시 인구의 대부분이 밀레에서 대대로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사실상 밀레 가족도시인 셈.

특히 전체 종업원 1만 5000여명 가운데 8000여명이 25년이상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고, 40~50년이 넘는 경력직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는 전세계 기업에서도 유례가 없는 사례다. 특히 기업 이익을 위해 경력자를 중심으로 인원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미국이나 국내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밀레 회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직원들의 고용을 유지할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그는 "우리는 직원들을 한 가족으로 여기고 대우해주고 있다"면서 "가족처럼 생각하도록 여러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으며, 이는 곧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밀레 회장은 또 "무차입과 투명경영을 통해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불신도 없고, 회사도 직원들의 일자리를 유지해주고 있다"면서 "전세계 밀레 직원들은 가족주의적 문화를 바탕으로 실직될 염려가 없다고 봐도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은 혁신적이고 기술을 선도하는 시장"

한국나이로 38살에 세계 최고기업의 경영자가 됐는데 부담은 안 느끼는지도 물었다. 따로 경영수업은 받았는지도 궁금했다. 그는 "별도로 경영수업을 받지는 않았다"면서 "밀레에 입사하기 전에 헬라(Hella)라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2년 정도 일한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 기간동안 밀레가 아닌 다른 시각으로 회사를 바라보며 다양한 시각을 배우려고 했고, 앞으로 내가 밀레를 이끌수 있을지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고 토로했다.

한국 시장 진출에 대한 전망을 물었더니, 그는 "한국 시장은 혁신적이고, 기술을 선도하는 시장이며, 한국 소비자들은 가전기기에 대한 높은 수준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이어 "밀레의 고품질과 서비스가 한국의 프리미엄 가전시장에서도 잘 적응해 나갈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106년 전통의 세계 최고 가전회사인 밀레는 28일 한국밀레 법인을 본격적으로 출범시키면서, 한국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철저한 품질과 투명 경영, 노동자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밀레식 가족 경영이 한국에서 어떤 성적표를 낼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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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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