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자 신비로운 곳이었다. 섬에서 태어나 자란 내게 있어서도 섬은 언제나 무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생명의 원초적 발상지였다. 아, 무엇이랴. 이 광활한 바다와 가없는 하늘, 검푸른 파도를 뚫고 솟구친 저 거친 바위덩어리 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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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백도는 몽상가들이 꿈꾸는 신비로운 이방이었다.
여수출발 2시간 만에 거문도에 내렸다. 행정구역으로는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거문도는 선착장이 있는 고도와 동도 및 서도 등 3개의 큰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섬들을 통틀어 거문도라 부른다.
거문도를 들어서는 순간 여느 섬들과는 다른 풍경이 장관이었다. 남해안 대개의 섬들이 검은 갯바위와 작은 잡목으로 유순한 듯 드러나지 않는 데 반해 거문도는 크고 깎아지른 바위와 함께 동백을 주로 한 검푸른 숲이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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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느릿느릿 찾은 밥집은 이미 만원이었다. 6월에서 10월까지 잡힌다는 거문도 갈치를 호박과 무, 고춧가루에 버무려 찐 갈치 찜은 우리들의 못난 미각을 사로잡기에는 너무나도 훌륭했다. 값은 그냥 백반이요, 맛은 갈치정식의 진수성찬. 오직 이 인심 좋은 섬만이 제공할 수 있는 멋과 맛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점심 후의 포만감을 뒤로하고 영국군 묘지를 찾았다.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영국이 불법으로 거문도를 점령했을 당시 죽은 3명의 무덤이 영국의 관심아래 단장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곳 거문도를 동방개척의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이름마저 Hamilton Port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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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어렸을 적 교과서에서 배웠던 섬. 해밀튼항. 무덤에서 내려다보는 거문도의 해안풍경이 오래된 동백들과 어우러져 참으로 장관이었다.
서도에 있는 등대의 풍광을 빼놓고는 거문도를 말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아는 이를 통해 작은 배를 얻어 3분 거리의 등대입구의 산기슭에 내렸다. 산중턱을 꿰뚫어 만들어진 작은 소로를 따라 걷기를 20분 정도. 망망대해의 시발점에 우뚝 선 등대를 보았다.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정밀하고 의연하고 광대함을 표현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누가 감히 자연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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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끄덕여지는 고개. 들이켜지는 호흡. 부서지는 파도의 흰 색 포말과 ‘갯내음’ 가득한 바람. 멀리 보이는 묵연한 바다와 발밑의 깎아지른 절벽. 절묘한 대비와 기묘한 조화로움이었다.
백도는 거문도에서 또 다른 배를 타고 40분이 소요된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신비로운 그림이었다. 어찌하여 바다 가운데서 바위가 그처럼 솟아오를 수 있는 것인지, 어찌하여 100여개의 섬들이 검푸른 바다 위에서 그렇게 진주처럼 흩어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수심이 100미터에 이른다는 바다의 검푸름. 잔잔한 하늘임에도 마냥 설레는 바다위의 일엽편주. 뱃멀미가 물씬 풍겨와 머리를 뱃전에 뉘었다가 이내 일어서 다시 백도를 보고 또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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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백(百)개에서 하나가 부족함에 따라 한 일 자의 일을 빼 백(白)도가 되었다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백도(白島). 망망한 바다 위에 끼룩 이는 몇 마리의 갈매기를 보며 남모르는 상상의 날개를 폈다. 수만 년 풍상을 겪고 파도에 침식되어 갖가지 깎아지른 형상으로 변한 저 백도를 서울 한 복판으로 옮길 수는 없을까 하는. 그리하여 광화문 한 거리에서 독도와 함께 우리의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영원히 충성할 것을 서약하는 서약식이라도 개최하면 어떨까 하는.
백도는 내 필설로는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호연지기를 표현할 수 없는 수사적 금역이었다.
덧붙이는 글 | 거문도는 여수에서 아침 7시 50분과 오후 2시 20분에 출발하는 여객선이 있으며, 전라남도 고흥군 녹동항에서는 아침 8시와 오후 2시에 출발하는 여객선이 있습니다. 소요시간은 여수에서는 2시간, 녹동에서는 40분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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