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쇼핑족' 등장이 조급증 때문이라고?

[주장] 신뢰할 수 없는 병원, 환자 탓만은 아니다

등록 2005.06.30 18:58수정 2005.07.01 18:3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지금 병을 앓고 있다. 병명은 '병원쇼핑 증후군'이다. 그것도 만성이다.


이 병에 걸린 것은 지난 5월이다. 이 병에 걸린 것은 둘째 아이 때문이다. 둘째 아이는 누나와 달리 자주 아픈 편이다. 주로 고열에 시달린다. 또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잘 안 먹고 유달리 칭얼댄다. 병원에서는 목이 부었거나, 중이염이거나 감기 때문에 열이 나는 것이라고 했다. 칭얼대는 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애기들은 다 그렇다'고만 한다.

처음 몇 달간은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심하면 어떤 달은 한 달의 절반 정도를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고, 몇 날 며칠 동안 칭얼대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병원에 가서 "왜 이렇게 자주 아프고 칭얼거리는 겁니까?" 물었더니 '애기들은 다 그렇다'고 한다. 아니라고, 유달리 자주 아프고 칭얼대는 게 굉장히 심하다면서 어디 다른 곳이 아픈 게 아니냐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여전히 동일한 말만 했다. 의사는 진료를 다 했다는 듯이 의자를 돌렸고, 지켜보던 간호사도 다음 환자를 부를 태세다. 나는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지금 제 말은 지금 현재 얘가 어디가 아프냐가 아니라 똑같은 증상으로 왜 이렇게 자주 아프냐는 겁니다. 그리고 칭얼대는 것이 보통의 아이들보다 더 심하길래 혹시 다른 병이 있지 않은가 해서 물어보는 건데 '애기들은 다 그렇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럼 노인분들이 어디 아파서 오면 '나이 들면 다 그래요'라고 그렇게 답변하시겠습니까? 아파서 병원에 올 때는 주사 맞고 약 타러 오는 게 아니구요, 어디가 왜 아픈지를 알기 위해서 오는 겁니다."
"목이 부어서 그렇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니까요, 목이 부었다는 현상의 진단이 아니라 왜 목이 붓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칭얼대는 것도 분명히 제가 이 병원 올 때마다 '굉장히 심하다'고 몇 번 말했는데도 단 한 번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결국 나의 항변에 의사는 그때서야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알레르기 검사 결과, 종합적인 알레르기 수치가 굉장히 높다면서 아이가 자주 감기나 열이 많은 것은 호흡기 쪽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집에 있다가 밖에 나가면 곧바로 감기나 열이 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이가 아플 때는 꼭 어디를 갔다 온 경우였다.

아이가 밥도 잘 안 먹고 칭얼대는 것도 검사 결과 혈색소 수치가 8로 심각한 상태라고 하면서 혈색소가 부족한 아이의 특징이 밥을 잘 안 먹고 칭얼대는 거라고 했다. 혈색소 수치가 부족한 상태가 지속되면 두뇌발달도 안 되고 심하면 다른 장기의 발달도 막는다면서 부모가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한참을 설명했다. 결국 아이가 자주 아프고, 칭얼대고 한 것은 알레르기와 혈색소 부족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2개월 동안 칼슘보강제와 알레르기 약을 먹고 있다. 지금은 제법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 편이다.

나는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열이 오른다. 만약에 그때 문제제기를 강하게 하지 않았으면 둘째 아이는 혈색소 부족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다 엄마와 아빠는 그 어린 것이 아파서 칭얼대는 것도 모르고 심한 짜증을 냈을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난 아이들이 아프면 두 군데의 소아과를 동시에 간다. 그리고 진찰이 동일한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의사한테 꼬박꼬박 따지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얼마 전 모 신문 기사에서 '앓고 있는 병의 치료가 빠르지 않다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조급증 사람'을 언급하며 그들을 '병원쇼핑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것도 병'이라고까지 했다.

그 기사를 읽으니 갑자기 화가 났다. 마치 '병원쇼핑'의 원인이 모두 환자에 있는 것처럼 책임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어디 환자만의 잘못인가?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난 병원을 믿지 않는다. 둘째도 그랬고, 첫째도 목소리가 항상 코맹맹이 소리가 나서 이비인후과에 가서 축농증이 아니냐고까지 물어봤는데도 현미경 같은 것으로 보더니 아니란다.

다른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축농증이란다. 다행히 약을 먹으면 나아질 수 있다는데, 잘 모르겠지만 약으로 축농증이 나아지는 것인지 다른 병원에 가서 확인할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현재로서는 앞으로도 '병원쇼핑'을 멈출 생각은 없다. 내가 병원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 나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누군가 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오지 않을 세상입니다. 오마이 뉴스를 통해 아주 작고도 작은 힘이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땀을 흘리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