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어른들의 초상화를 엿보다

나라 요시토모 전시회 <내 서랍 깊은 곳에서>

등록 2005.06.30 23:51수정 2005.07.0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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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시회

전시회 ⓒ 이은정

인터넷 검색창에서 '나라 요시토모'를 검색해보면, '미니홈피에 자주 나오는 이 그림의 작가는 누구?'라는 물음과 답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그동안 전시회 한 번 안했고, 6월에서야 단 한 권의 책을 출간한 일본의 화가. 하지만 그는 이미 사이버 세계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표작가다.

심술궂게 치켜뜬 눈, 샐쭉하게 꽉 다문 입. 2등신의 귀엽고 순진무구한 아이를 기대한다면 그의 작품은 철저하게 그 기대를 저버리고 만다. 그 어떤 화가나 작품보다 인터넷 세대에게 크게 공감을 얻고 있는 나라 요시토모. 그가 작업실과 작품들을 통째로 한국으로 옮겨왔다. 로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내 서랍 깊은 곳에서>라는 전시회를 들여다본다.


앙팡테리블? 불안한 어른들의 초상화!

그의 작품에는 늘 어린아이나 개, 고양이 같은 의인화된 동물들이 등장한다. 귀엽고 순한 모습만을 보여 왔던 그들은 나라 요시토모의 캔버스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천진한 모습에 피 묻은 칼을 쥐고 해골을 밟고 있는 섬뜩한 모습('칼 휘두르기'),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깊고 깊은 웅덩이에서')이나 비웃는 듯한 입('거절을 즐기면 행복해진다')을 한 어린아이는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 무서운 아이) 그 자체다. 꼭 '나랑 한판 할래?' 아니면 '날 건드리지 마!'라며 덤벼드릴 것만 같다.

a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들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들 ⓒ 로댕갤러리

하지만 세모꼴의 눈에서는 어린애답지 않은 반항심이 느껴지는 동시에 두려움과 고독감도 서려 있다. 복잡한 감정선이 꼭 어른의 그것 같다. 어린아이나 귀여운 동물에 어른의 심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사실 살벌하게 칼을 쥐고 있는 것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어본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라의 작품들에 기묘하게 이끌리는 까닭은 세상을 향해 주먹을 움켜쥔 우리들 모습과 조금은 닮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귀여운 체 하면서 사악한 표정을 슬쩍 드러내는 것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그 때문에 더 인기이기도 하다.


로댕갤러리 태현선 연구원은 "친근한 캐릭터로 현대인의 내면에 감춰진 두려움과 반항심 등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 요시토모의 작품의 탁월성"이라고 설명했다.

대중적으로 '두 발짝' 다가가기


나라 요시토모를 두고 '네오팝'의 대표작가라고 한다. 네오팝은 전쟁 후, 고도 성장기에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음악 등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세대의 문화의 집약이라고 한다. 나라 요시토모의 경우 청소년기부터 자유와 저항, 고독에 대한 노래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도슨트(문화자원봉사자) 허유순씨의 말에 의하면 나라 요시토모는 요즘도 펑크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리고 '타버리는 것이 낫다'라는 작품에는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라는 말이 선명한데, 이것은 록그룹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유서 중의 일부다.

나라 요시토모는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어린시절부터 록과 펑크 음악에 심취했고, 그것이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밝혔다. 대중문화의 정서가 작품들에 스민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테다. 누구는 그가 순수미술 위에 사진이나 애니메이션 등의 대중적 요소를 훌륭히 갖춤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도 평가한다.

a 관객 참여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관람객들

관객 참여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관람객들 ⓒ 이은정

그의 작품들은 대개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만화 캐릭터를 보는 듯하다. 이해하기 쉽고, 따라서 공감을 얻어내기도 그만큼 쉽다. 드로잉 같은 경우 펜을 쥘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릴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외려 그것이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대학생 관람객 김미선(24·인천)씨는 "쉽게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이해할 수 없는 미술작품들이 얼마나 많아요.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은 대중문화로서 조건을 갖췄어요"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작은 의미도 공감을 얻게 되면 큰 울림이 되기 마련. 작가가 표현한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보는 사람과 소통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작품의 미덕이다.

그러한 까닭에 인터넷을 즐겨하는 감성적인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그에게 제대로 빠졌다. 특히 공감의 문화가 지배하는 가상공간에서 그의 그림은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작품이 뭘 말하고 있는지, 작품 속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덧글이 실시간으로 달린다.

사람들은 느낌을 공유하고, 공감한다. 싸이월드 '나라 요시토모' 클럽의 밤비라는 운영자는 "온라인상에서는 이성보다는 감성, 참여의 욕구가 중요시되잖아요. 쉽게 보고, 쉽게 얘기하고, 그리고 다 같이 공감하죠. 그런 면이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어느 샌가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두어 발자국 다가와 있었다.

나라 요시토모의 작업장을 가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회화 60점, 드로잉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사진, 조각, 설치작품 등 다양한 작품을 맛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전시장 전체가 볼거리다. 만져서는 안 될 차가운 회색빛 전시실 느낌이 아니다. 벽면에 나무판자를 대고 꼼꼼하지 않게 하얀 페인트칠을 해서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나라 요시토모는 작품배치는 물론 이름표까지 스스로 만드는 등 세심한 신경을 썼다. 또한 전시실 설치를 위해 일본에서 디자인팀이 함께 건너와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시실 전체가 온전히 그의 것인 것처럼 느껴진다.

a 전시장에 설치된 서울하우스

전시장에 설치된 서울하우스 ⓒ 이은정

또한 눈여겨 볼 것은 '서울하우스'라는 집이다. 관람객을 집안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소지품과 작업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설치미술이다. 많은 드로잉이 펼쳐진 위로 신발이나 담배꽁초, 인형이 굴러다니는 방은 작가가 조금 전까지 여기서 그림을 그렸을 거라는 기분이 들게 한다.

안내자 말을 들어보니 실제로 그는 여기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고 한다. 나라 요시토모는 시골에서 맞벌이하는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허유순씨는 그가 스스로도 그런 경험하지 않았다면 미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좁은 방 안에서 옹송그린 채 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그의 모습을 보고 온 기분이다.

서랍 깊은 곳에서

이번 전시회의 이름은 '내 서랍 깊은 곳에서'이다. 왠지 서랍 깊은 곳에는 잊고 있었던 보물이 튀어 나올 것만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전시회는 10년 동안의 작품세계를 돌아본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잊혀졌던 옛 물건들을 서랍 속에서 꺼내 보듯, 과거의 기억과 가능성을 끄집어내서 그래서 미래를 위한 힌트로 삼겠다는 것. 분명한 것은 전시회를 보고나면 나라 요시토모의 지난날을 엿볼 수 있다. 적어도 그의 서랍 깊은 곳에 자리한 소중한 작품들과 마주하는 것은 큰 기쁨이다.

"관객이 느끼는 그대로가 정답"
[미니인터뷰] 문화자원봉사자 허유순씨

▲ 문화자원봉사자 허유순씨
도슨트(문화자원봉사자)로 관람객에게 전시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허유순씨를 만나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관객들 반응은 어떤가요?
"사실 이 전시회를 기획할 당시엔 이렇게 인기일 줄은 몰랐어요. 매표를 담당하는 직원의 말에 따르면 하루 관객은 평균 1000명 정도이고, 지난 주말(6월 26일 기준)에는 4000여명의 관객이 들었다고 하네요.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더라구요. 마니아층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 인기를 얻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에 대중예술을 융합을 잘 시켰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에 주로 등장하는 대상은 어린아이나 동물 등이잖아요. 그 자체가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와 닿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관객들에게 가장 좋은 반응을 얻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긴긴밤>이라는 작품이죠. 아이가 불안해 보이는 나막신을 신고, 가느다란 줄에 매달린 등불을 들고 가는 모습이 너무 가엽잖아요. 단테의 신곡에 보면 깜깜한 밤에 길을 걸어가는 남자가 나와요. 그 이미지가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불안해 보이는 아이가 안 돼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랑스럽다고 말씀들 하세요."

- 이번 전시회에 있어 특히 힘든 점이 있다면요?
"사실 관객들에게는 어떤 전시회보다 쉽게 다가와서 좋으시겠지만, 설명해드려야 하는 입장에서는 어려운 전시회입니다. 다른 작가들의 경우 이미 축적된 비평이나 참고자료 등이 많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말하기가 쉽지는 않지요. 특히 작가가 작품의 기획의도 등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어요. 관객이 느끼는 그대로가 정답이라는 거죠. 그래서 자유롭게 저의 의견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는 부분이 많고요. 그래서 오히려 자유로운 점도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 만나본 그는 어땠나요?
"40대 중반의 나이였는데, 참 젊은 사람이었어요. 한마디로 작품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재미있는 사람이더라구요. 실제로 6월 18일에 있었던 작가설명회를 들으러 왔다가 그의 재미있는 모습에 반해서 온 관객들이 많더라구요. 요즘도 펑크락 등을 들으면서 작품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젊고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전시 안내

언제 : 8월 21일까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매표마감 오후 5시) 월요일 휴관
어디 :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빌딩 1층 로댕갤러리 
얼마 : 일반 대학생 5000원/ 학생 3000원
문의 : 02)2259-7781 www.rodingallery.org 
관람 팁 : 전시설명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좋다.(평일 오후 2시, 4시 주말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 

*이 기사는 자임(www.zime.co.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전시 안내

언제 : 8월 21일까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매표마감 오후 5시) 월요일 휴관
어디 :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빌딩 1층 로댕갤러리 
얼마 : 일반 대학생 5000원/ 학생 3000원
문의 : 02)2259-7781 www.rodingallery.org 
관람 팁 : 전시설명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좋다.(평일 오후 2시, 4시 주말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 

*이 기사는 자임(www.zime.co.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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