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함부로 떠나지 마라

뉴질랜드 심리치료사 이승욱이 쓴 <웰빙으로 가는 이민>

등록 2005.07.01 15:15수정 2005.07.0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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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웰빙으로 가는 이민>

책 <웰빙으로 가는 이민> ⓒ 호미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에 많은 사람들은 '에이, 확 이민이라도 떠날까' 하는 고민을 한다. 해외 원정 출산도, 이중 국적자 문제도, 이민과 유학 인구의 급증도 모두 이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은 복잡한 친지 중심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떠나며 또 어떤 이는 빈익빈 부익부가 극심한 사회 구조에 답답함을 느끼고 떠난다. 자녀의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듯하여 떠나는 사람도 있으며 조기 퇴직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일터를 꿈꾸며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그렇게 떠났다고 하여 모든 문제로부터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난관에 부딪힐 위험이 있다. 책 <웰빙으로 가는 이민>은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짚어 보고 행복한 이민 생활이 되기 위해 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를 소상히 알려 준다.

책의 저자는 한국에서 선생님을 하다가 어린 딸과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이민 길에 오른 평범한 한 남자이다. 그는 뉴질랜드의 대학에서 사회 복지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현재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뉴질랜드에 점차 증가하는 한인들만큼 그들의 문제도 각양각색인데,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만난 이민자들의 사례를 토대로 외국 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언급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다 소중하고 귀하다. 그래서 상담실에서 만난 한국 이민자들의 고통은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나와 같은 한국 이민자의 아픔을 보면서 할 수 있으면 이런 불행을 미리 막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민을 고려하고 있는 분들에게 한 번 더 생각을 가다듬을 계기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실제 상담 사례를 토대로 하고 있어 이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생각해 보도록 한다. 평생 일에 매달려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이게 사는 게 아니다' 싶어 이민을 결정한 사십 대 중반 한 가장의 이야기는 이민을 꿈꾸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생각을 반영한다.

"골프 한번 치는 데 만 원이면 된다니 골프나 치러 다니자. 골프도 지겨우면 물 반, 고기 반이라니 낚시해서 횟감 장만해 식구들끼리 둘러 앉아 저녁도 먹고, 애들은 학교 다니면 저절로 영어가 늘 테니까 정 안 되더라도 영어 하나는 건질 수 있겠지."


이런 마음으로 뉴질랜드에 도착한 그 가장은 이민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많은 고생을 한다. 한국에서는 한 직장의 부장으로 권위를 갖고 바쁘게 살았으나 뉴질랜드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기껏해야 집에 앉아 잔소리나 늘어놓는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란 아무도 없다.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도 문제이다. 한국에서는 일하다가 저녁 시간에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면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결정되었으나, 뉴질랜드에서는 저녁이면 다들 집에 들어가는 분위기이다. 집에서 아내와 다정하게 집안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집안의 싸움만 늘어 아내로부터 이혼 요구를 받는다.


자녀 교육에 대한 지나친 환상도 버려야 한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이민국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학교에는 한국인 학생수가 20%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부모가 기대하는 영어 실력의 향상은커녕 잘못하면 서구 사회의 온갖 청소년 문제에 휩쓸려 다니는 자녀를 대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민 온 아이들은 마약과 술, 파티, 개방적 성 문화 등 서구의 못된 것들만 빠르게 받아들여 '한국 사회 풍토와 인식'에 젖어 있는 부모에게 대항하며 자기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게다가 서양권 나라들은 교사들이 한국만큼 아이들의 일상생활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이 탈선을 해도 막을 방도가 별로 없다.

이렇게 다양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이민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가정의 상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외국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심리적 절망과 불안을 더 증폭시킬 수도 있는 것이 외국 생활이다.

그리고 자신이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서 유연성 있는 태도를 갖고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하는 사람은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외국 생활에 실망하고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이민을 가면 돈을 많이 벌고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도 위험하다.

물론 이민을 가면 우리나라에 있을 때보다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확률은 더 높다. 선진적인 복지 제도와 아름다운 자연 환경, 스트레스가 덜한 직장 문화, 철저히 가족 중심적인 사고와 개인 중심주의 등은 이민 생활의 긍정적 요소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모든 긍정적 요소를 다 누리기 위해서는 이민을 가는 자신이 '과연 그 생활에 적합한지' 검토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과연 타 문화에 동화되어 잘 살 수 있는지, 우리 가족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생활에 만족할 수 있는지, 모든 위험 요소들을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 등을 가족들 모두와 함께 고민해 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민에 앞서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될 문제들일 것이다.

이민을 떠난다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있어 삶을 뒤바꿀 만한 중대한 결정이다. 그 결정을 내리는 데에 앞서 가족 모두가 서로 진지하게 대화하고 이민을 떠나서 겪을 많은 스트레스를 미리 준비해 둔다면, 저자가 말하는 '웰빙으로 가는 이민'은 이루어질 것이다. 이민을 떠나는 모든 이들의 꿈처럼 행복한 삶이 또 다른 나라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웰빙으로 가는 이민

이승욱 지음,
호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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