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01

비분강개(悲憤慷慨)

등록 2005.07.01 17:01수정 2005.07.0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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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분강개(悲憤慷慨)

“형님!”


수십 명의 장사들과 아녀자들을 데리고 진영에 온 차충량의 앞에 차예랑이 맨발로 뛰어 나오며 그를 반겼다. 차충량은 차예랑의 친형이었고, 난을 맞아 의병을 조직해 싸우던 중 동생의 소식을 듣고 남한산성 인근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차예랑의 뒤에 있던 장판수는 아녀자들 사이에 있는 계화에게 눈이 가 멎었다. 계화는 앞으로 나서 장판수에게 안부를 물었다.

“다행이도 무사하시군요.”

장판수는 계화에게 가 멎었던 눈길을 돌리며 퉁명스럽게 딴소리를 했다.

“이렇게 아녀자들을 진중에 데려와서 어쩌겠다는 것입네까?”

차충량은 궁말에서 있었던 몽고병들의 횡포를 자세히 전했고 사람들은 분노로 들끓어 올랐다.


“이제 갈 사람들은 다 갔으니 병사들을 휘몰아 달자(몽고인들을 뜻함)들을 모조리 몰아내야 하지 않겠소!”

최효일의 말에 사람들은 이견 없이 남병마사 서우신의 막사로 몰려가 속히 병사들을 정돈해 진군해 갈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서우신의 반응은 그들에게 있어서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 많은 병사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병력을 재편해야 하는 판국이네. 더구나 병력을 움직이려면 조정의 명을 받들어야 하고….”

성질 급한 장판수가 그 말을 끝까지 듣고 있지 않고 소리쳤다.

“아니 그렇게 조정의 명을 잘 받드는 분이 어찌 난리중에는 많은 병력을 묶어두고 있었단 말입네까? 이제 조정은 항복했으니 병사들을 움직이라는 명을 내릴리는 없습네다! 다만 백성들이 도륙당하고 끌려가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이러는 것이 아닙네까!”

서우신은 아무 말 없이 무기력한 표정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버렸다.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막사를 나오며 서우신이 듣던지 말든지 마구잡이로 소리쳤다.

“저게 대체 뭐하자는 꼴인가?”
“이제 와서 겁을 먹은 겐가!”

서우신의 편에서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이 일은 전 병사들에게 소문이 퍼졌고 삽시간에 병사들은 들끓어 올랐다.

“병마사 명만 기다리다가는 늙어 죽을 때까지 오랑캐 놈들 얼굴 한 번 못 보겠네!”
“내 말이 그 말이라 카이! 이래가 무슨 낯으로 고향에 돌아가노!”

장판수, 차예량, 차충량, 최효일과 각 영의 대장들은 한 곳에 모여 서우신을 제쳐둔 채 긴급히 대책을 논의했다.

“지금 급히 해야 할 일은 각지에 흩어서 노략질을 하고 있는 몽고병을 쫓아내는 것입네다!”

장판수는 그때까지도 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차충량이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고자 신중할 것을 당부한 후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몽고의 소규모 병력들이 워낙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병사를 나누어 이들을 쫓아다니면 우리에게도 피해가 있을 것이오. 많은 병사들로 저들의 소규모 병력을 친 후 저들의 본대를 유리한 곳으로 유인해야 하오.”
“유리한 곳이라면…?”

차충량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바로 남한산성 인근이오. 더불어 몽고병들을 모조리 무찌른 다음에는 평안도로 진격해 저들의 구원병을 막아야 할 것이오”

병력을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조정으로부터 엄히 벌을 받을지 모르는 일이었으나, 누구도 그런 일을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들에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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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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