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이소룡 뺨치게 돌려 대던 쌍절곤김정혜
오빠의 방을 침범한 일로 친구들은 우상을 가까이 함에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한동안 나는 겁 없는 모의에 주동자라는 죄책감으로 오빠의 의심에 찬 시선을 피하느라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었다.
올해 오빠의 나이 마흔 다섯. 움푹 들어간 두 눈과 툭 튀어 나온 광대뼈로는 옛날 조각 같은 그 얼굴은 도저히 짐작조차 해볼 수가 없고 휙휙 바람 스치는 소리를 내며 신나게 쌍절곤을 돌려대던 오빠의 두 어깨엔 현실의 고달픔만이 무겁게 얹어져 있다.
이모의 암과 죽음. 잇따른 사업실패, 절친한 친구로부터 당한 사기. 그 세월을 지내면서 숨이라도 제대로 쉬었을까.
오빠의 직업은 재단사였다. 지금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지만 의상실이란 간판이 즐비하던 한때는 꽤나 능력 있는 재단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상실 간판들이 거리에서 사라지면서 재단사라는 오빠의 직업도 냉대 속으로 사라져 갔다. 오빠는 다른 밥벌이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봉제공장을 차렸지만 그것조차도 번번이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게 하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오빠에게 남겨주지 못했다.
과테말라로 떠나기 전. 오빠는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왔었다.
"이모. 이번에 과테말라에 새로 생기는 의류회사에 취직이 되서 떠나게 됐습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게 잘 계세요."
"왜 하던 공장은 어쩌고?"
"접었습니다. 집사람과 밤낮없이 일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니…."
"그래. 네가 알아서 했겠지만 그래도 낯선 남의 나라가서 어떻게 견디려고…. 아니다. 내가 괜한 말을 하고 있구나. 오죽했으면 남의 나라까지 돈 벌러 갈 생각을 했을까. 그래 언제 오냐?"
"따로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만, 한살이라도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오래 걸리겠지요."
어머니와 오빠가 주고받는 가슴 저민 몇 마디가 너무 서러워 애써 웃음 지으며 내가 우스갯소리 한마디를 했다.
"길면 3년 짧으면 1년이라더니, 그런 거야?"
그러나 어머니와 오빠의 눈물 젖은 어설픈 그 웃음은 왜 나를 더욱 서럽게 만들고 있었는지….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어정쩡한 얼굴로 힘없이 손을 흔드는 오빠의 뒷모습은 어머니에게도 내게도 아픔으로 남겨지고, 그 아픔을 가슴에 묻으며 그저 몸 건강 하게 잘 지내기를 소원했음은 어머니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오늘같이 이렇게 비라도 퍼붓는 날이면 멀리 타국으로 떠나보낸 조카에 대한 아픔으로 어머니의 가슴에는 거대한 태풍이 휘몰아칠 것임을 시커먼 하늘 어디쯤에 무심히 머물고 있는 어머니의 시선으로 나는 알 것 같다.
어머니의 시선이 머물렀던 그곳에 오래 전 오빠의 모습이 아련하다. 달 밝은 밤. 총총한 별빛아래 휙휙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쌍절곤을 돌려대던 오빠의 눈부시게 푸르던 그 청춘이.
오늘따라 세월이란 것이 참 야속하다. 결코 원하지도 않았건만 오빠를 그리고 나를 어느새 마흔을 넘긴 중년고개로 옮겨다 놓았으니….
덧붙이는 글 | 이 시간에도 머나먼 이국땅에서 힘들게 일하고 계실 해외 근로자 여러분! 모두모두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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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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