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기념관 내에 걸린 고종과 명성황후의 영정양허용
그런데, 기념관을 중간쯤 돌아섰을 때 갑자기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 보관되어 있던 한 전시품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 숨을 멈추게 만든 물건은 다름 아닌 장도였다. 표면에 한자로 무엇인가 쓰여 있는 칼집이 있고 그 바로 아래 시퍼런 날을 번뜩이는 칼날. 안내문을 보니 그 칼이 바로 명성황후를 시해한 데 쓰인 칼의 복사품이라고 한다.
저 칼이 바로 일국의 국모를 난자한 칼이라니…. 가슴이 벌렁거리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돌이킬 수 없는 안타까움이 치솟았다. 더욱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은 그 칼집에 새겨진 글귀였다. ‘단숨에 전광과 같이 늙은 여우를 찔렀다.’ 조선의 국모에게 ‘여우’ 운운하며 자랑스럽게 그 비극적인 상황을 칼집에 새겨 넣다니…. 어찌 이런 말도 안 되는 역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당시의 사건을 설명하다가 그만 목이 메고 말았다.
갑자기 몇 해 전에 읽은 김진명의 소설 ‘황태자비 납치사건’이 떠올랐다. 차라리 그 소설의 결말이 통쾌한 복수였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로 가슴이 답답해져 더 이상 기념관을 둘러볼 수 없어 서둘러 밖으로 나섰지만 기념관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가슴 아픈 오욕의 역사이건만 요즘 일본은 또 어떠한가. 아직도 일본인들은 그들이 저지른 가슴 아픈 만행들에 대해 반성하지 못한 채 망발과 망언을 일삼는 자들이 많지 않은가.
나만의 생각일 뿐이지만 요즘 일본의 우익 세력들의 움직임을 보면 그 가슴 아픈 과거의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되지는 않을까 하여 자못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두 달쯤 전에 명성황후 시해범 중 하나인 ‘구니토모 시게아키’라는 자의 외손자가 찾아와 지난 역사에 대해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진정 자기 조상이 한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그의 가슴 속에서 한국 사람들 모두에게 치욕을 안겨준 역사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이 들었을지는 의문이다.
명성황후의 생가는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을 숨긴 채 지금은 조각공원으로 변하여 가족 단위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쉬어가는 휴식처로 변해 있었다. 깔깔거리며 달려가는 아이들, 명성황후 동상 앞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밝게 웃는 젊은 부부의 모습들. 하지만 그들은 그 치욕적이고 가슴 아픈 역사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명성황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