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과연 명당 답게 아름답다.양허용
능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니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개방해 둔 산책로가 보인다. 다가오는 장마 탓인지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눅눅하였지만 산책로로 들어서니 상쾌한 숲 냄새가 코를 간질이며 단박에 더위를 씻어주는 듯하다.
다음 일정이 아니라면, 그리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막히는 고속도로만 아니라면 좀 더 여유 있게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서둘러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효종의 영릉은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는데,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발걸음을 옮겨 영릉의 원찰이었던 신륵사로 향했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어느 날 원효대사의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라고 일러준 후 사라졌다. 그 말에 따라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이에 원효대사가 7일 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드리니 9마리의 용이 그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한 후에야 그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9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자리에는 구룡루(九龍樓)라는 누각이 서 있다.
‘신륵사’라는 절 이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 우왕 때 여주에서 신륵사에 이르는 마암(馬岩)이란 바위 부근에서 용마(龍馬)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그 말을 다스렸다고 한다. 결국 신력(神力)으로 제압했다 하여 신력의 신(神)과 제압 하다는 뜻의 륵(勒)을 합쳐 신륵사라 하였다.
우리나라 유명 관광지면 어디나 그렇듯 음식점으로 가득 메워진 진입로를 지나니 저 멀리 썰렁한 콘크리트 냄새를 풍기는 일주문이 나타난다. 고풍스럽고 기품 있는 일주문을 기대했건만 현대식으로 변해버린 일주문에 실망감을 느끼고 말았다.
대부분의 절이 산 속에 있는 것과는 달리 신륵사는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일주문에서 본당에 이르기 위해서는 짧지만 남한강변의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조포 나루터’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마포, 광나루, 이포와 함께 예전에는 한강의 4대 나루터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떠나면 바로 마포 나루에 닿는단다. 마침 황포돛배를 운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황포돛배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모두 기계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여기의 돛배 역시 엔진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것 같다.
신륵사에 발걸음을 하면서 내심으로는 명성황후 생가에서 느꼈던 비애감을 지우고 마음의 안정을 얻어가고 싶었지만 신륵사는 정돈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공사 중인 관계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강과 들이 내려다보이는 열린 장소에 지어진 때문인가, 시원스러운 맛은 있지만 산 속에 지어진 절처럼 마음을 잡아끄는 포근함은 느껴지질 않는다. 어쩌면 후덥지근한 날씨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