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법 개정안 뒤에 숨은 국가주의

[주장] 한발짝 떨어져 이번 사안을 바라보자

등록 2005.07.03 01:25수정 2005.07.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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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재외동포법 부결 논란에 대해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1일 오후 국회 기자실에서 최재천 열린우리당,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재외동포법 부결 논란에 대해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1일 오후 국회 기자실에서 최재천 열린우리당,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재외동포법 개정안 부결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반대와 기권, 불참 의원들에 대한 총선 심판론도 나오고 촛불 시위도 이야기되고 있다. 반대나 기권한 의원들(특히 열린우리당 의원)은 해명하느라 정신이 없고 <오마이뉴스> 기사에서도 '반대뿐만 아니라 불참한 의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여당이 핵심역할' 등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어떤 여론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80% 이상이 이 법안 통과에 대해 찬성 표시를 하였다고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 고무된 듯 이법을 발의한 홍준표 의원은 배신한(?) 의원에 대해 분노도 표시하고 이 법안을 재 발의할 의사도 당차게 내비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안에 대한 국회 표결에서 특이한 점은 개혁성, 보수성에 따른 의원이나 당의 평상시의 성향에 의해 찬반이 갈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찬성의원과 반대의원, 기권·불참의원 분포를 살펴보면 열린우리당 쪽이 반대나 기권, 불참을 많이 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찬성 104명 중 한나라당 66명, 열린우리당 27명, 민주노동당 5명, 민주당 4명 : 반대 60명 중 열린우리당 45명, 한나라당 15명 : 기권 68명 중 열린우리당 38명, 한나라당 22명, 민주노동당 2명 : 불참 67명중 열린우리당 36명, 한나라당 22명, 민주노동당 3명)

오히려 특이한 점은 민주노동당이 이제껏 사안에 따라 대체로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였던데 비해 반대는 없었지만 제 각각이라는 것인데, 이는 그만큼 이 법안의 성격이 미묘한 지점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 법안의 쟁점은 개혁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일까? 없다면 문제의 핵심은 어떤 지점일까?

이번 재외동포법 개정안은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국적이탈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재외동포로서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지난 5월 국적법에서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국적 이탈을 할 수 없도록 법이 이미 만들어졌고 또한 새롭게 생겨나는 국적 상실자는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이 법 적용 대상자는 지난 국적법 개정 전에 국적을 이탈한 사람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가수 유승준 파동 이후인 2002년부터 '이중국적소지자에 대한 국내거소신고 업무 처리지침'과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에 의해 실질적으로는 이미 병역 기피 목적으로 국적을 이탈한 사람에게는 재외 동포로서의 자격을 주지 않고 있다.

즉 이 법은 적용대상자를 국적 상실자는 제외한 국적 이탈자에 한정함으로써 매우 제한적이고 또한 이미 시행령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의미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이미 있는 것을 법제화하는 이상의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의 최재천 의원이 이법은 재외동포법이 아니라 '국민정서법'이라고 말한 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것은 이 법이 현실적 효과보다 병역 기피 특권층에 대한 국민적 정서에 호응하는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권리만 챙기고 의무는 교묘하게 회피하는 얌체 특권층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야 더 설명할 것도 없다. 잊혔다가도 큰 사건과 함께 특권층의 행태가 드러날 때면 허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부도를 내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도망간 사람은 알고 보면 외국에 많은 돈을 도피시켜 놓았고 또 그들 자식들은 여지없이 병역기피자이니 말이다.


최근에도 드러난 것처럼 그렇게 투철한 국가관을 부르짖던 고위 공직자들의 상당수가 정작 그들 자식, 손자들에 대해서는 교묘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케 한 사실은 또 얼마나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으며 배신감을 느끼게 했는가! 그래서 이들 얌체족들에게는 국민의 모든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정서는 어쩌면 매우 자연스럽다.

그런데 사실 얌체 특권층은 그것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수십억, 수백억 탈세를 하는 재벌들도 있고 부동산 투기로 수십 채의 집과 수만 평의 땅을 갖고서 가만히 앉아 엄청난 불로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특별히 병역 기피를 위한 국적 이탈에 대한 국민적 정서가 이와 다른 점은 바로 국가적 배신자에 대한 응징의 감정, 즉 국가주의, 애국주의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애국주의는 올림픽, 월드컵 등을 통해 고양되기 시작해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고 있다. 실제로 민족적 이해와 그다지 관계없는 프로 선수들이 국민적 영웅으로 되기도 하고, 황우석 박사 신드롬에서 보듯 국적과 관계없이 평가되어야 할 과학적 성과와 문제의식도 애국주의에 의해 굴절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바로 이런 분위기와 결합되어서 이 법이 발의되고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행령에 이미 되어 있는데도 이를 다시 법제화하는 등 병역 기피에 대한 응징만 과도하게 부각될 경우 병역제도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은 희석된 채 병역의무만 신성화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징집제 하에서의 비판적 성찰 없는 신성화된 병역의무는 국가주의와 연결되게 마련이다. GP총기 난사 사건을 통해 모처럼 형성된 군대개혁의 분위기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병역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 모병제가 된다면 이런 문제가 생길 여지조차도 없다.

실제로 이번 법안을 발의한 홍준표 의원은 병역제도나 군대 민주화에 대한 어떠한 법안을 발의한 적도 없으며 개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이번 재외동포법 개정안 발의는 인기를 의식하여 애국주의적 분위기에 편승한 행동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거기에다가 이미 그렇게 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한 채 "이렇게 되면(부결되면) 병역기피 어떻게 단죄하나"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인기를 의식한 얄팍한 국가주의적 선동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이번 법안은 인권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즉, 상당수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에 의해 국적이탈이 결정되는데 그에 따른 피해는 모두 본인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큰 문제가 없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동포로서 우리 민족의 품에 안아야 될 판에 설사 성장하여 그러고 싶어도 과거의 부모의 잘못된 판단에 의하여 외국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은 정말 민족적이지도 못하고 반인권적이다. 이는 지난 국적법 개정 전 대거 국적이탈 소동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가 높은 것에 편승하여 얌체 특권층에 대한 분노를 속된 말로 '한 놈만 뒈지게 패라'는 식으로 해결하자는 방식에 다름 아니다.

한 때 일본에 대해 국민적 분노가 높았을 때 친일 발언에 대해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온 적이 있었다. 분위기에 편승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정말이지 방향만 다를 뿐 발상은 국가보안법과 똑같다.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막는 반인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다. 이번 법안의 출발점도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이 법안은 홍준표 의원 자신도 인정하듯 적용 대상자가 이미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 급한 것도 아니다. 재발의를 하게 되면 여유를 가지고 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도 치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병역의 의무가 진실로 신성한 것이 되게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 복무나 군 민주화에 대한 계획들이 이와 함께 아니 이보다 앞서 발의되고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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