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

등록 2005.07.03 18:28수정 2005.07.0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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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집을 나서기 전  먹구름은  아파트 옥상 가까이 까지 내려 와 있다.

집을 나서기 전 먹구름은 아파트 옥상 가까이 까지 내려 와 있다. ⓒ 한석종

오늘(7월3일) 아침 일찍 교회 1부 예배를 마치고 시골(담양)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았다. 교회를 나설 때부터 먹구름이 잔뜩 밀려오더니 광주 경계를 벗어나 담양으로 접어들자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물안개 핀 비 오는 날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국도를 달리며 스쳐가는 풍광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켰다. 아내는 빗방울이 세차게 들이치는데도 창문을 열고 연신 손을 흔들며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고 마침내 수채화 속의 한 부분이 되어갔다.

이렇게 희뿌연 안개 속을 해치며 아내와 함께 드라이브한 것이 얼마만이던가!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지나쳤던 사물들이 비 오는 날에는 구름이 지상 가까이에 밀려 내려와 시야가 좁아진 탓으로 더욱 더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3주 전 시골에 다녀갔을 때 갓 모내기한 여린 연초록의 벼들이 그 사이 몰라보게 훌쩍 자라 이젠 완연한 진초록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2~3주에 한 번꼴로 시골 어머니에게 다녀가곤 하는데 그럴 적마다 아내에게 늘 미안한 생각이 든다. 세 며느리가 있지만 두 형님들은 늘 바쁘기만 하고, 막내며느리인 아내는 이와 반대로 늘 한가(?)하기만 하다.

그러나 아내는 불평한마디 없이 오늘도 마트에 들러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는 반찬거리며 간식거리를 챙긴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마누라 하나는 잘 선택한 것이제" 무릎을 치며 내 자신이 참 대견(?)하기만 하다.


어머니는 어제도 아침 일찍 전화해서 일기예보에 내일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시골에 다니러 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리가 시골집에 도착하기 오래 전부터 마음은 벌써 대문 밖으로 향하고 계셨을 것이다.

어머니를 뵙고 돌아가는 길에 펼쳐진 들판은 올 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돌아가는 길에는 훨씬 더 고즈넉하고 풍요롭게 느껴진다. 그 이유가 뭘까? 잠깐 사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동안 어머니의 온기가 온전히 전해져 내 마음이 순해진 탓일 것이다.


막내며느리가 차려준 밥상을 어머니는 남기시는 법이 없다. 당신이 식욕이 없으실 때에도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우신다. 마치 밥 한 톨이라도 남기시면 다시는 며느리의 밥상을 못 받을 것 같기나 한 것처럼.

오늘은 평소 때보다 조금 일찍 시골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우리들의 모습이 조금씩 멀어져 점으로 점에서 빈 허공이 될 때까지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시리라.

고향마을 지척에 두고서도 그동안 쉬이 찾지 못했던 추월산을 끼고 휘돌아가는 담양호 주변을 드라이브하기로 마음먹었다. 모처럼 어머니와 아내 사이의 저울추가 아내에게 기울었다.

아내는 별일 다 있다며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담양호의 물안개 속에 잠겼다가 언뜻언뜻 드러내 마치 신기서린 듯한 신비감을 자아내는 호수의 모습에 연신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동안 미안한 마음이 한꺼번에 먹구름처럼 밀려와 세차게 비를 뿌리고 있었다.

a 고향마을 앞에 펼쳐진 한 폭의 수채화

고향마을 앞에 펼쳐진 한 폭의 수채화 ⓒ 한석종


a 언제나 풍요로운 고향 마을 어귀

언제나 풍요로운 고향 마을 어귀 ⓒ 한석종


a 물안개 핀 담양호,  수묵화속의 강태공이 세월을 낚고 있다.

물안개 핀 담양호, 수묵화속의 강태공이 세월을 낚고 있다. ⓒ 한석종


a 물안개 속에 언뜻언뜻 드러난 능선 사이 사이를 휘돌아 흐르는 담양호.

물안개 속에 언뜻언뜻 드러난 능선 사이 사이를 휘돌아 흐르는 담양호. ⓒ 한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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