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겉표지한겨레신문사
이런 와중에 지난 2004년 9월에 한겨레신문사에서 펴낸 <살아있는 우리 신화>가 가뭄에 콩 나듯, 잡풀 속에 산삼 나듯, 소중하고 소중한 우리 신들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으니 그저 반가운 마음이 절로 든다.
책을 펼치면 먼저 심상찮은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신화 배경지도'가 그것인데, 얼핏 보면 고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의 옛날 모습을 연상시킨다. 나라 이름도 해동조선국이니 강남 천자국이니 서천국이니 하여 불교적인 색채도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겨 '세상이 처음 열리다'라는 '이야기 하나'에 들어가면 우리 민족도 당당히 독자적인 창세관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생겨난 작은 틈으로 신비한 기운이 솟았다로 시작되는 창세 신화는 다른 나라의 신화와 그 생성 구조가 참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흥미 있는 이야기는 그 다음에 전개되는데 바로 인간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다. 옛날 옛적에 미륵님이 금쟁반과 은쟁반을 들고 하늘에 축사하니 하늘에서 벌레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각각의 쟁반에 벌레 다섯마리가 떨어졌는데 이 벌레들이 자라나 금벌레는 남자가 되고 은벌레는 여자가 되어 각각 쌍을 맺어서 이 세상 사람들을 낳았다는 이야기. 참 흥미롭고 정감이 가는 이야기 아닌가?
이 책의 저자는 현재 건국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신동흔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이 땅의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민중들의 이야기를 민담집이나 설화집, 구비문학집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정겨운 그런 사람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른 나라의 신들과 달리 우리의 신들은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고 서술해 놓았다.
우리의 신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화려함도, 중국 신화의 기괴함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자연스러우면서도 친근함이 돋보이는 모습에서 인간적으로 정이 간다고 하였다. 책을 다 읽은 후 기자 역시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우리 신들은 그 이름부터가 참 정감이 간다. 호쾌한 저승의 용사인 '강림도령',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 '자청비', 애처롭기 그지없는 '궁상이 아내', 천지를 다스리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 '대별왕과 소별왕', 그리고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저승길도 마다않는 '당금애기'등등. 또 궤네깃또, 사마동이, 오늘이, 내일이라는 생경하면서도 신선한 이름은 또 어떤가? 천지왕에 대항하여 결코 굴복을 모르는 싸움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수명장자'의 호쾌한 도전 정신은 또 어떻고?
우리의 신들은 이제 귀환하여야 한다. 서양과 중국의 신들에게 밀려 구만리 지하 성벽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그들을 지상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오죽하면 이 책의 부제가 '우리 신들의 귀환을 위한 이야기 열두 마당'이겠는가?
살려내자, 우리의 영웅과 신들, 우리의 창조주들을 역사의 짚불더미에서 끄집어내자. 분명 우리의 신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며, 이국의 신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신화는 영원히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있는 한국 신화 - 흐린 영혼을 씻어주는 오래된 이야기
신동흔 지음,
한겨레출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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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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